“초반엔 시스템의 오류가 많았다. 사실 시스템의 오류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프로그램이 완벽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을 급하게 오픈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최유진 인디애니페스트 집행위원장 겸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
“초기에 제일 의아했던 건 2017년에 국고보조금을 받을지 안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신한은행으로부터 e나라도움 신용카드를 만들라는 홍보 전화를 먼저 받았다는 사실이다. e나라도움 시스템을 통해 지원금을 사용하려면 신한은행 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스템이 시행되기도 전에 은행에서 단체나 개인에게 홍보 전화를 돌렸다. 그건 곧 보조금 지원을 받은 단체나 개인의 명단을 신한은행이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장은경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사무국장)
“e나라도움 시스템이 시행된다 했을 때 이게 블랙리스트와도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화·예술계는 물론 시민사회 단체의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 같았다.”(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2014년 12월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e나라도움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이용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시스템 도입 배경에 문제제기 이어져
e나라도움은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이다. 국고보조금의 중복·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예산편성·교부·집행·정산 등의 전 과정을 전산화한 시스템이다. 올해 1월부터 국고보조금이 들어간 사업을 진행하는 모든 단체는 e나라도움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e나라도움에 대한 문제제기가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계속됐다.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불만이 제기된 건 창작자 개인과 소규모 단체의 경우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행 초기에 제기된 불만도 주로 시스템이 과도하게 복잡하다는 거였다. 온라인상에서 모든 증빙과 승인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IT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시스템 자체가 난공불락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영수증 하나를 첨부하더라도 그것을 스캔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장은경 미디액트 사무국장은 “천원을 쓰든 만원을 쓰든 e나라도움에 사용 내역을 등록해야 하는데, 이건 국가가 직장상사가 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각종 지원사업을 받는 단체나 개별 영화인들도 e나라도움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영진위의 2017년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지원사업, 독립장편·저예산영화제작지원사업 등의 결과가 9월에 발표됐는데, 해당 독립영화인들은 지원사업 약정 체결 시 영진위에서 e나라도움 시스템 이용 교육을 함께 받았다. 한 영화인은 “영진위 담당 직원도 아직 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e나라도움 시스템은 국고보조금 운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위해 구축되었지만 사전 교육이 필요할 만큼 보조금을 사용하는 창작자 입장에선 일정 수준의 숙지가 필요하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의 말처럼 “사용자 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관리자 중심의 시스템”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독립영화인들은 시스템의 오류나 복잡한 과정은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고, e나라도움 시스템 도입의 취지와 배경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조달청에서 e나라도움 시스템에 대한 사전연구용역, 설계용역, 실행용역을 시행했을 때도 일반용역이 아닌 긴급용역으로 공고가 떴다. 기획재정부에서 오랜 시간 준비한 사업이라면 일반용역이 뜨는 게 일반적이다. 시스템을 충분히 테스트하지 않은 상태에서 7월 전면 개통 전에 1월 우선 개통한 것도 의문이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을까.” 최유진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은 정권 교체가 사업에 미칠지도 모를 영향 때문에 서둘러 시스템을 개통한 게 아니었겠느냐고 조심스레 의문을 제기했다.
2014년 12월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e나라도움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이용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 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관리자 중심의 시스템
e나라도움 시스템이 국고보조금을 받은 단체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다양한 국고보조금 사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하니 시스템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프로그램의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 그렇다면 그 단순한 시스템으로 무엇을 감시할 수 있을까. e나라도움을 통해서 감시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다. 보조금의 중복지원과 사용내역을 상시적으로 확인하는 것.” 최유진 사무국장의 일갈이다. 김동현 집행위원장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다. “e나라도움은 문화예술단체에서 보조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세세하게 파악하기 위한 시스템 같다. 놀라웠던 건 동일한 사업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사업비 내역까지 조회 가능하고 나아가 자부담 내역까지 e나라도움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다. 왜 목적사업을 하는데 상근자들이 월급을 얼마 받는지, 회식비로 얼마를 썼는지 세세한 내역을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이같은 자금 흐름 파악은 이른바 좌파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관리’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이전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도 맥이 닿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2014년 12월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e나라도움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이용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영화인들은 e나라도움 시스템이 문화예술지원 정책에 관한 이전 정부의 철학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표준화라는 이름으로 각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보조금 사용을 관리하고,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강화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정수급과 이중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 자체가 문화·예술인들을 포함한 보조금 수급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상정하는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e나라도움을 통해 구축된 보조금 지원 내역과 평가 내역이 문화예술지원 사업의 또 다른 평가지표가 될 때 독립영화인들은 국고 지원에서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거미의 땅>(2016)을 만든 김동령 감독은 말했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국가의 ‘지원’이 국고보조금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e나라도움 시스템뿐 아니라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