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다’는 말이 유일한 구원인 때가 있다.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흑인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장을 탈출해 밤새 달리고 있다면, 주황색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사람들이 자신의 부재를 알아차렸다는 경계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떠나온 곳의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고 완전히 잊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재산’의 손실을 잊는 법은 없다. 노예로 태어나고 자라 자유를 위해 도망친다는 일의 어려움은 거기에 있다. 심지어 자신이 누군가의 재산이라는 데 완전하게 길들어, 애초에 그 바깥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꿈꾸지도 못한다. 노예로 나고 자란 코라는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재산을 지켜주는 재능으로 명성을 쌓은 리지웨이가 그녀를 뒤쫓는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1800년대,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에 남부 노예들이 자유민으로 살 수 있도록 탈출을 도왔던 점조직을 일컫는 말에서 따온 제목으로, 실제 철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콜슨 화이트헤드는 그 ‘철도’가 정말 존재했다면, 이라는 가설을 세워 코라와 시저를 비롯한 흑인 노예들을 그곳으로 보낸다. 노예로서의 현실을 그리는 대목들은 잔인하고 자극적이지만,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인간으로 대우받는다는 게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코라를 묘사할 때 울림을 준다. 코라는 시내를 다니는 법을 배운다. 씻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준다. 면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서는, 목화가 이런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배운다. 그리고 새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리지웨이 앞에서도 코라는 ‘새로운’ 자신일 수 있을까. 2016년 전미도서상과 2017년 퓰리처상을 포함해 미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석권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조만간 영화로 만날 것이 확실해 보이는 마성의 ‘이야기’다. 이런 소설을 영화로 안 만들면 뭘 만든단 말인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간절한 상상
글
이다혜
2017-09-18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 은행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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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간절한 상상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