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기(양익준)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제주에서 사는 시인이다. 그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투박스럽게밖에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내(전혜진)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무기력한 정자’를 가진 택기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도넛 가게가 생기고 택기는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정가람)에게 특별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수년 전, 제주에 홀로 이주한 김양희 감독은 자신의 외롭지만 행복한 제주에서의 일상과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 시인의 이야기를 엮어 자신의 장편 데뷔작을 만들었다. 느리게 진행되는 영화는 택기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까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시인이 읽어 내려가는 시의 구절들로 가득하다. 이 느슨한 진행에 리듬감을 주는 것은 여리고 순수한 남편에 비해 억세고 ‘세속적’인 아내가 던지는 직선적인 대사와 도발적인 행동이다.
배가 불룩 나온 수줍은 시인 역에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라니, 연출자의 캐스팅 용단이 놀랍지만 능청스러운 그의 연기가 무모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시와 풍광의 아름다운 결들을 살려내기 위해 애쓴 노력에 비하면, 소년과 마주한 택기의 감정의 일렁임을 담아내는 방식은 서툴게만 보인다. 특히 택기를 대하는 소년의 모습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뒤섞이면서 관객조차 파악하기 힘들게 들쑥날쑥하다. 소년을 감정적 절벽에 내몰기 위한 사건과 설정들도 지나치게 인위적이어서 공감대를 끌어내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