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 뤽 베송 감독 - 자, 지금은 28세기다 상상력을 동원해봐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7-08-31

<스타워즈>와 <제5원소> <아바타>의 공통점은? 프랑스에서 탄생한 SF 그래픽노블을 이야기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1967년 프랑스 만화잡지 <필로트>에 첫 등장한 <발레리안>은 방대한 세계관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다채로운 외계 생명체, 활력 넘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10살이었던 뤽 베송 또한 <발레리안>의 열렬한 팬이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언젠가 반드시 이 작품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했던 그의 소망은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로 구현됐다. 뤽 베송의 수많은 전작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제작비(약 2399억원)로 완성된 이 영화는 뤽 베송의 모험가적 기질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다. 최근 전세계를 돌며 <발레리안>의 프로모션에 한창인 뤽 베송이 한국을 찾았다. 그와의 인터뷰와 기자간담회에서 오갔던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이 작품은 프랑스 그래픽노블 <발레리안>을 원작으로 한다. 23권 분량의 수많은 이야기 중 <천개 행성의 도시>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먼저 원작에서 묘사된 우주 정거장 알파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고 영화로 구현하고 싶었다. 동시에 나는 알파라는 공간이 의미하는 바도 마음에 들었다. 8천여종의 각기 다른 외계 생명체들이 인간과 공존한다는 것,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는 것, 이곳에서 각자의 문화와 지식을 공유한다는 아이디어 말이다. 또 <천개 행성의 도시> 에피소드는 전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다시 발현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함께일 때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 우리가 지금 현재 잃어가고 있는 이 가치에 대해 다시금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에 맞춰 대사 없이 수많은 종족들이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맺어온 장면을 한눈에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가 무척 아름답더라.

=고맙다. 3~4년 전에 처음 이 오프닝 시퀀스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Space Oddity>가 나왔고 문득 이 영화의 오프닝 신을 장식하기에 완벽한 노래라는 생각을 했다. 이 곡의 템포에 맞춰 이미지를 구상했다. 영화는 1975년 미국과 소련의 우주인들이 서로 악수를 나누는 유명한 역사적인 장면으로 시작해 외계인들과 교류하기 시작하고 어느덧 8천여종의 서로 다른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의 상징성을 사랑한다.

-당신은 원작 그래픽노블의 굉장한 팬이었는데, 특히 원작의 이것만큼은 꼭 영화로 구현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내용이 있나.

=나는 발레리안과 로렐린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컨셉을 사랑했다. 그들이 특별한 능력이나 지성, 슈퍼파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말이다.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다소 맹한 부분도 있고 농담 따먹기를 즐기며 약간 허세가 있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또 둘 사이의 관계에서 로렐린이 우위에 있다. 현실 세계에서 여자가 집안을 통치하듯이 말이다. 나는 28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 보편성을 불어넣고 싶었다.

-<제5원소>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였던 장 클로드 메지에르가 <발레리안>의 원화를 그렸는데,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메지에르와 원작의 이야기를 쓴 피에르 크리스탱. 나는 이분들을 이 영화의 전반적인 제작 과정에 관여하게 했다. 시나리오를 보여드리고, 현장에 모시고, 500여석 규모의 시사회에 오직 두분만 초대해 영화를 볼 수 있게 했다. 80살 가까이 된 이분들이 영화를 본 뒤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발레리안> 시리즈가 영화화되는 순간을 50년 가까이 기다렸기 때문이다. 지난 50여년간 수많은 SF영화들이 <발레리안>의 아이디어를 훔쳤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다른 작품에 빼앗기면서 정작 <발레리안> 시리즈가 영화화되지 않았다는 점에 두 원작자는 슬퍼하고 있었다. 나로선 그분들이 진작에 받아야 마땅했던 인정을 받게 해드리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 영광이고 기쁘다.

-데인 드한이 발레리안을, 카라 델러빈이 로렐린을 연기한다. 이들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내가 10살 때부터 알아온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는 훤히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캐스팅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부분은 많은 배우들을 만나보는 것뿐이었고 그중에서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금방 알아본다고 믿었다. 실제로 데인 드한은 만난 지 불과 몇분 만에 발레리안이 될 것을 알아봤다. 카라는 이전 출연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테스트가 필요했다. 실제로 많은 걸 시키고 또 시켜서 나중에는 거의 고문 수준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그녀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그녀는 많은 것을 가진 배우였다.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은 둘이 함께할 때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였다. 두 사람을 미팅 자리에 불렀는데 20년 전 당시 11살이던 <레옹>의 내털리 포트먼장 르노가 같이 방에 들어설 때처럼 둘은 비슷한 사람이고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속임수로 되는 게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진주족(뮐족)은 어떻게 영화화했나. 참고했던 캐릭터나 대상이 있다면.

=진주족은 오리지널 <발레리안과 로렐린>에 포함되어 있는 캐릭터였다. 이들은 1972년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원작 말고 다른 자료는 보지 않았다. 다만 진주족의 룩을 고민하며 바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은 있다. 진주족의 겉모습은 성별의 분간이 어려운 ‘안드로진’ (양성성을 갖춘 존재)의 느낌으로 디자인했고, 접촉하면 색이 변하는 그들의 피부는 몸의 색을 주변 환경에 따라 바꾸는 문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밖에 수많은 외계 종족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구현하는 데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도 궁금하다.

=나는 전세계를 돌며 여러 디자이너들과 만났고 구체적으로 12명에게 “자, 28세기다. 상상력을 동원해봐”라고 도전장을 던졌다. 그들은 꼬박 1년 동안 그렇게 아무 대본 없이 작업을 했고 1년 후 6천개에 이르는 생전 본 적 없는 온갖 황당한 그림들을 만들어냈다. 생명체며 우주선이며 시스템 등 말이다. 알파를 예로 들면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연도별로 정리한 600페이지에 달하는 참고서를 작성해서 배우들이 필요할 때 언제나 참고할 수 있게끔 했다. 또 생명체별로 5페이지에 달하는 설명서를 만들어서 그 생명체는 무엇을 먹고, 특기는 무엇이고, 번식은 어떻게 하는지 등 상세한 묘사를 통해 현실성을 부여했다. 이렇게 2년 동안 영화에는 대부분 나오지도 않는 부분들을 맹렬하게 생산했다. 영화에 나오지 않더라도 이렇게 자체적인 세계관이 확고해야 속임수 없이도 뭐든지 마음대로 보여줄 수 있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최근 할리우드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그런데 당신은 <제5원소> <니키타> <레옹> <루시> 등을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선보여왔다. 후대의 여전사들은 당신의 영화에 얼마간 빚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여성 캐릭터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내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그저 따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일부를 가져다가 복제하는 거지. 그건 연출자로서 좋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자들만을 위해 좋은 배역을 쓰는 건 아니지만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왔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여자들과 그들의 존엄성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녀들의 머리에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강인함이 있다. 그건 남자들의 특기인 근육의 힘을 배제한 강인함이다. 여자들의 방식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영화에도 자연스레 반영한다. 남자가 안 돌아와서 훌쩍거리는 그런 약한 여자가 아닌 강한 여자들에 대한 존경심 말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