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됐던 원작 <프리스트>의 형민우 작가가 웹툰 <삼별초>를 세상에 내놨다. 8월 16일 다음웹툰 플랫폼에 공개된 17회 분량의 시즌1이다. 만화는 고려 무신정권하의 특수부대로 알려진 삼별초와 삼별초 내에서도 몽골의 병사였다가 고려로 돌아오게 된 신의군에 주목한다. <삼별초>의 주인공인 ‘나’는 몽골의 대륙원정대의 선두에 선 바투 부대의 케식텐을 아버지로 둔 이다. 고려 삼별초를 웹툰으로 끌어오면서 형민우 작가는 삼별초 내부가 아닌 몽골의 시선으로 삼별초를 보는 방식을 택했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삼별초>의 세계관이 짙게 배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삼별초>는 CJ E&M 웹툰사업파트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제작과 투자에 뛰어든 작품이기도 하다. 향후 웹툰의 활용도 궁금증을 낳는 부분이다. 출판 만화로 시작해 자신만의 입지를 다져온 형민우 작가에게 웹툰 세계의 경험에 대해서도 물었다.
-<삼별초> 첫회 공개 이후 댓글이 2천여개가 넘게 달리며 반응이 뜨거운 걸로 안다.
=댓글 이벤트가 진행돼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염세주의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댓글 반응을 크게 믿지 않으려 한다. (웃음) 어쩌면 칭찬보다도 내 작품을 잘 아는 분들이 하는 쓴소리에 더 민감하다. 그분들 말에 흔들릴 수도 있을 정도인데 그게 무서워 작품을 할 때만큼은 인터넷을 끊는다.
-‘삼별초’ 아이템은 꽤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했다. CJ E&M과는 2012년에 <삼별초> 계약을 마무리하고 4년 이상 작품 준비에 매진해왔다.
=고등학교 국사책에 짧게 소개된, 고려시대 몽골에 항쟁했던 삼별초 에피소드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작위적이긴 해도 드라마틱하지 않나. 마지막 남은 특수부대와 같은 이미지인데 어릴 때부터 그런 소재에 끌렸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넣어둔 소재였고 시간을 두고 생각을 거듭했다. ‘국뽕’ 이미지를 걷어내 단행본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간 연재에 대한 부담이 커 웹툰을 피해왔다. <고스트 페이스>가 온라인으로 발표된 적이 있지만 너무 실험적이었다. 온라인에서 내가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잘 몰라 움츠러든 면도 있다. 그때 CJ E&M에서 제안을 해왔다. 내년 초에 완결을 목표하는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작업을 같이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 얼결에 시작했다.
-웹툰으로 먼저 공개된 시즌1은 올해 12월 초쯤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이후 내년 가을쯤 <삼별초> 시즌2가 나오고 또 단행본이 나온다.
=<삼별초>는 웹툰을 위해 만든 만화는 아니다. 그래서 분리해 웹툰용으로 만들었다. 나 스스로가 웹툰을 많이 보지 않아온 터라 웹툰이 어떻게 흘러가야 좋은지 개념이 없다. 그 점에서 오는 이질감이 내게 좋은 영향을 줄 거라 믿는다. 웹툰으로 공개된 만큼 긴장감도 크다. 과거의 출판 만화시장과 확연히 다른 시장이라 많이 배우는 중이다.
-예를 들면 어떤 긴장인가.
=댓글. 못 보겠다. 보면 안 된다. 독자들의 얘기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편이라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에 수정이 가해질 정도다. 여러 요인에 휘둘리는 나 같은 사람은 차라리 독자 반응과 거리를 둬야 한다. 한번도 <삼별초> 관련 댓글을 본 적이 없다.
-<삼별초>는 몽골인 ‘나’의 시선으로 삼별초, 신의군 그리고 ‘나’와 서사적으로 긴밀히 얽혀 있는 고려인 신의군 전사 ‘바라이’라는 캐릭터를 그린다. 이런 화자의 위치가 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되는데.
=역사를 좋아하지만 깊이 알지는 못하기에 고려인의 정서를 섣불리 대변할 수 없었다. 내가 고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면 나 빼고는 공감을 안 할 것 같더라. 몽골 입장에서 말하면 몽골인들 빼고는 공감하지 않을까. 고려가 낯설게 그려져야만 더 멋져 보일 것 같았다. 대체로 삼별초 하면 민초 아니면 전사 이미지다. 아예 객관화하면 어떨까 싶어 몽골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플롯의 구성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최재성)의 그것을 많이 가져왔다.
-시즌2에서는 ‘나’와 고려 땅에서 재회한 바라이 사이의 서사가 핵심이 될 것 같다.
=바라이의 행적의 틀은 칭기즈칸의 테무친의 서사 구조에서 가져왔다. 둘 다 살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누군가는 재수가 좋아 제국을 건설했고 누구는 제주도까지 가서 살게 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두 사람의 차이는 뭐였을까. 시즌2에서는 그런 질문을 하게 되지 않겠나.
-삼별초에 대한 사전 조사는 어느 정도 진행했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작업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도 있었을 텐데.
=고증만 명확하다면야 자료의 양이 많아도 재밌게 조사할 의향이 있었다. 그런데 정보가 혼재돼 있고 자료를 보면 볼수록 ‘국뽕’ 아니면 민초들의 이야기로만 흘렀다. 그러다보니 내가 애초에 그리고자 하는 바가 사라지기도 했다. 정보의 양을 최대한 간추려 <삼별초> 초반 내레이션으로 처리했다. 소재에 짓눌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채색 없는 그림이다. 무엇보다 육중한 갑옷의 질감 표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색을 쓰지 않고 선으로만 표현했다. 서양 만화와 달리 내 만화에는 음영이 거의 없다. 음영이 많으면 그림에 무게감이 생기기는 하나 지루해질 수 있다. 정지 화면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 과한 육중함을 줄이기 위해 선으로 갑옷의 질감 표현에 집중했다. 애초엔 색칠을 다 할 생각이었으나 내 역량의 한계더라. 내가 그렇게 색을 잘 칠하는 작가도 아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지 독자도 재밌게 보겠다고 생각했다.
-펜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
=주변에서 하도 태블릿 모니터를 사야 한다고, 없어서 안 하는 것과 있는데 안 하는 건 다르다고 해서 그 비싼 장비를 다 장만했다. 되게 좋더라. 화판으로 쓰기에! (일동 웃음) 농담이 아니다. 이제껏 내가 쓴 모든 화판 중 최고다. 정전기가 적당히 있어서 여름철에 모니터를 켜두면 그 열기로 습기가 없어진다. 개인 작업을 할 때 야금야금 쓰는데 역시 펜만 한 재미가 없다. 게다가 내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데 전원을 켤 때마다 매번 고장이라도 날까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직 시즌의 절반이 남았지만 <삼별초>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바의 핵심을 귀띔해줄 수 있을까.
=국가니, 전쟁이니, 조국이니 하며 대의명분을 말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사람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나라에 있기에 그 나라 사람인 게 아니다. 그 사람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곳이 어떤 나라가 된다. 사람이 있는 곳이 곧 국가다. 사람이 먼저다. 영원불멸할 줄 알았던 제국중에도 영원한 게 있던가. 그렇다고 <삼별초>가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만화는 재밌어야 하니까. 육중한 갑옷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거기서 나오는 정서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게 먼저다. 그 뒤에 차마 평소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내 개똥철학을 작품을 빌려 전할 수 있는 거다.
-스스로를 염세주의자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삼별초>의 세계에도 그런 가치관이 개입된 부분이 있을지 궁금하다.
=지난 정권 10년간을 살다보니 사람으로서 이게 할 짓인가 싶은 일들을 너무 많이 봤다. 염세적인 생각이 더 강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익숙해져버린 시대다. 처음엔 <삼별초>를 <300: 제국의 부활>(2014)의 스파르타와 같은 이미지로 갈까 생각해봤지만 염세적인 내 생각이 조금씩 더 들어가면서 삼별초와 내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끝낸 부분도 있다. 신의군은 일종의 ‘귀순용사’로 그들의 생존 의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내 질문이 있기도 하다. 신의군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생존을 위해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자신의 최대치를 보여줬던 게 아니었을까. 신의군을 이 만화에서 가장 극악한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다. 작품에까지 내 염세적 생각을 내세울 생각은 없지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프리스트>로 경험한 결과, <삼별초>가 향후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지는 데 대한 기대와 우려가 있을 것 같다.
=<프리스트>의 영화화를 지켜보며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건 아니라는 걸 재확인했고 자성했다. ‘내가 하면 되는구나’라는 착각의 시기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만화의 습속에는 영화 연출적 방식이 있을 수 있으나 최종 영상물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전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작가의 몫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프리스트> 완결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프리스트>가 영화화로 화제가 되면서 ‘이제 <프리스트>는 내 작품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쳐 있었다. 지금은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다른 연재를 하려면 먼저 <프리스트>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를 내년 초쯤 끝내고 <삼별초> 시즌2에 집중했다가 내년 말부터는 <프리스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다. 지금으로서는 다른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웹툰 <삼별초>
웹툰 <삼별초>는 한국 만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한 <프리스트> 형민우 작가의 신작이자, 출판 만화 시대 인기 작가의 웹툰 복귀작으로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연재를 시작한 느낌은 어떨까. “앉아서 열심히 그리면 하루면 완성할 컷인데 앉아서 열심히 안 한다. 아이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또 아이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한장 완성까지 사나흘 정도 걸렸다. 그런데 한 페이지 완성하면 스스로가 대견해 또 사흘을 쉰다. 아, 그 시절도 다 지나갔다. 이제 연재가 시작됐으니! (웃음)” 그처럼 형민우 작가가 작업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탈탈 털어 완성해낸 컷들이다. 우여와 곡절의 시간 속에서 꿋꿋하게 탄생한 <삼별초>의 이 세밀한 선들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