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걸 몰랐을까.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뻔한 미래였으니까. 강자는 언제나 약자를 이겨왔다. 그들의 다른 이름은 승자였고, 약자는 패자였다. 번번이 그래왔다. 꾸준히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싸움은 왜 반복되는가. 왜 이어지는가. 왜 멈추지 않는가. 강자는 이김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데, 약자는 짐의 역사에서 왜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강자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약자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강자가 골라 빼앗은 그것이, 약자에겐 고를 수 없는, 둘도 없는 무엇이었다. 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싸운 게 아니라, 지건 말건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실낱같은 희망마저 없었겠는가. 그렇지는 않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구호는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저들도 탐욕을 멈추고 말 거라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구호, 허나 세상물정 모르는 그 외침. 강자는 질길 수 있었다. 약자는 질길 수 없었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그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이 장면은 슬프다.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참담하다. 헤아릴 수 없는 체포와 투옥, 이간질과 모욕, 폭탄처럼 투하된 벌금을 감내하면서도 강정마을 주민과 지킴이들이 막고자 했던 건 군사기지였다. 지키고 싶었던 건 마을공동체의 오랜 터전이자 천혜의 해안습지대, 구럼비였다. 10년에 이르는 긴 싸움의 끝자락에 이 장면이 놓여 있다. 2016년 2월 해군기지 준공식이 열리던 날, 꽉 닫힌 기지 철문 너머를 망연자실 바라보는 이들의 심경을 헤아릴 수 있는가. 이 모습은 765KV 초고압송전탑이 끝내 들어서던 날의 밀양 할매 뒷모습을, 고향땅 너른 들녘을 쓸어엎고 초대형 미군기지가 세워지는 걸 바라보는 대추리 늙은 농부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질 수밖에 없다 해도 그냥 질 수는 없었던, 선택지가 없기에 싸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처절한 저항과 상처들. 이런 식의 싸움이, 아니 이런 식의 폭력이 우리 앞에 얼마나 더 놓인 걸까. 우리는 얼마나 더 보아야 할까. 얼마나 더 눈감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