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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이란의 여성전사,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
2002-04-12

숨겨진 절반의 세상을 말하라

영화를 만든다는 건 때로 생명을 거는 일이다.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에겐 그렇다. 이란 현대사의 그늘을 증언한 작품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그녀에게 영화 만들기란, 생사를 건 투쟁이다. 그 엄중한 진실을 우린 받아들일 수 있을까. 4월5일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녀를 만나는 일은 설레고 두려운 일이다. 편집자

우리의 영화 동지 타흐미네 밀라니가 이란 정부에 의해 체포됐다는 소식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영화감독에게 이런 폭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란에서도 전례 없던 일이다. 우리는 밀라니 감독을 지지하고 그와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영화인들의 연대선언문).

지난 가을, 인터넷에 연대선언문이라는 것이 떠돌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여성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구명운동에는 모두 1500명의 영화인이 서명을 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시스,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리 안, 마이크 리, 페이 더너웨이, 스파이크 리, 두산 마카베예프, 크리스 마르케 등이 이 선언문에 기꺼이 이름을 올렸다. 이란의 여성감독 타흐미네 밀라니의 수난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타흐미네 밀라니는 지난해 <숨겨진 반쪽>이라는 영화를 내놓았다. 판사의 아내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중년여성이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좌익운동에 참여했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테헤란의 극장가에서 한달가량 상영됐다. 그런데 이란의 종교지도자가 이끄는 사법부에서 뒤늦게 이 영화를 문제삼았다. “예술을 반혁명적인 도구로 남용했다”며 그들은 크게 분노했다. 타흐미네 밀라니는 체포됐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2주 뒤, 하타미 대통령의 중재로 타흐미네 밀라니는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고소는 취하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죄로, 그녀는 죽음의 문턱까지 떠밀렸고,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몸이다.

타흐미네 밀라니의 해외나들이가 허용되고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서울여성영화제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밀라니 감독은 그런 기적이 가능했던 데는 ‘국제여론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나온 뒤로 한동안은 해외영화제의 초청에 화답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종교홍보성의 차관이 직접 보증을 서줌으로써 해외의 문화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인의 커뮤니티는 한 가족과 같다. 별 관계없는 외국의 일이라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공감하고 기꺼이 도와준다. 그들의 지지와 공감대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들은 내 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강력하고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라의 단체와 영화인들로부터 답지하는 성원의 메시지 때문일까. 타흐미네 밀라니에게선 ‘생사의 기로에 선 투사’ 같지 않은 여유와 낙천성이 흘러넘쳤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듯했다. 밀라니 감독은 이미 차기작의 구상을 끝냈고, 현재 스탭과 배우를 꾸리고 있는 중이라며, 되뇌었다. “난 걱정 안 한다.”

혁명의 그늘을 돌아보다

이란혁명을 이끌어내며 왕정을 전복시키고 이란에 신정일치의 이슬람공화국을 건설한 호메이니가 등장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신정일치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이희수 외 지음 <이슬람>).

타흐미네 밀라니 사건을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그 핵심이 24년 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을 탄생시킨 이슬람혁명이다. 열여덟에 혁명을 겪은 밀라니 감독은 동세대 젊은이들이 죽거나 투옥되거나 추방되는 걸 목격했다. “이슬람혁명 1년 뒤에 문화혁명이 일어났는데, 휴교령이 떨어졌던 4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직도 금기시돼 있다.” <숨겨진 반쪽>은 바로 그 ‘침묵의 룰’을 깨뜨린 첫 영화다. 밀라니 감독은 이란영화 사상 단 한번도 언급된 적 없는 이슬람혁명의 그늘을, 한 중년여성의 회고를 통해 들춰냈다. 게다가 좌익운동권 출신의 여주인공을 ‘인격적으로 묘사’했다. 불온하게도. 그 결과, ‘본보기로’ 도마 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적처럼, 타흐미네 밀라니의 시각이 반혁명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밀라니 감독은 혁명 이후 이란여성들을 이슬람 문화의 가치와 전통의 상징으로 추어올리면서 빚은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통찰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여성들이 이슬람혁명의 수혜자였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다. “혁명 이후 여성들이 보호받는 분위기가 되면서, 여성의 교육수준이 매우 향상됐다. 요즘 대입시험 응시자의 63%가 여성이라면, 믿겠는가.” 그렇지만 이란의 ‘숨겨진 반쪽’에 해당하는 혁명의 그늘을 돌아보지 않는 한, 현재도 미래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만큼은 양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숨겨진 반쪽>이 이란의 보수파로부터 매질을 당하는 이유는 또 있다. 여주인공이 결혼 전에 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다는 설정이 남성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남편이 부인의 과거를 이해한다는 게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 밀라니 감독의 설명. “하타미 정권의 슬로건이 문명간의 대화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대화의 연습은 가정에서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란남자들에게 여자, 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한 것이 언짢았던 모양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그렇듯 녹록지가 않았다.

"나도 남편도 페미니스트"

밖으로 드러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안 된다. 즉 가슴을 가리는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와 형제, 자식,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코란 24장 31절).

타흐미네 밀라니는 히잡이나 차도르를 걸치지 않은 맨머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베일을 쓰지 않은 이슬람 여성의 모습이 낯설어 특별한 소신이 있는 것인지를 물으니, “베일을 쓰고 벗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선택이다. 지금 여기는 공공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베일을 벗어들고 담배를 입에 문 이 이슬람 여성의 이미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버지가 허용하지 않으면 딸은 대학에 갈 수 없고, 남편이 허용하지 않으면 부인은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이란사회지만, 타흐미네 밀라니가 나고 자란 환경은 특수했다. 밀라니 감독은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불평등과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인 탓에 오빠가 갖는 건 뭐든 똑같이 갖고 누리며 살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 덕에 일주일에 두세번씩 극장 나들이를 했고, 일찍부터 이태리와 미국 등 서구의 영화들을 접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계획은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고, 과학기술대학에 건축 전공으로 진학하면서 감독의 꿈은 한발 정도 유보됐다.

타흐미네 밀라니가 끝내 영화의 꿈을 접지 못한 것은 사회에 대한 남다른 관심 때문이었다. “똑똑한 친구들이 어린 나이에 강제로 결혼을 하면서, 자기 재능을 묻고 불행하게 사는 걸 보고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이런 문제제기를 하고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는 수단이 영화라고 믿었다.” 혁명의 여파로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영화의 꿈은 우연찮게 다시 열렸다. 타흐미네 밀라니는 영화 현장에서 시나리오 리서치 작업과 현장 세팅 등을 도우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됐다. 스크립터, 조감독, 시나리오 작가로 경험을 쌓았고, 89년 <이혼의 자식들>로 파지르영화제에서 최우수데뷔작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탄식의 전설>(91), <두 여인>(96) 등 이후 작품들의 감독으로 또 작가로 이란 안팎에서 명성을 높여갔다.

네번째 작품 <카카두>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무하마드 닉빈은 밀라니 감독의 남편이다. 두 사람은 10년 전 건축회사의 사장과 직원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고, 부부가 됐다(<두 여인>에 등장하는 금슬 좋은 건축가 부부의 이야기는 실제 이들의 이야기다). 이란의 이름난 건축가이자 밀라니 영화의 프로듀서인 남편 닉빈은 ‘힘이 센 아내의 강요로’ <숨겨진 반쪽>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아내의 작품에 아이디어를 보태고, 제작결정을 돕는 것이 영화동료로서 맡은 남편의 일. 뿐만 아니다. 그는 감기 걸린 아내를 위해 인터뷰 도중에 약을 구해다 주고, 아내가 사진 촬영하는 동안 가방을 들어주며, ‘외조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우리 남편도 페미니스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침묵을 깨라

이건 내가 아니에요. 내가 꿈꾸고 바라던 내 모습이 아니에요. 당신은 끊임없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길 강요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난 당신의 아내나 아이들의 엄마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라구요. 제발 그걸 받아들여요(<두 여인>의 대사).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 등이 보여준 기존의 이란영화는 시에 가까웠다. “이란영화가 그저 조그맣고 깨끗한 샘인 줄 알았다가 문득 그 밑에 망망대해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부산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비유가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 거기에 비하면, 타흐미네 밀라니의 영화는 장편소설이고, 그 자체로 파도치는 바다이며, 들끓는 용광로다.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이 있거나 사회에 유익한 논쟁거리가 있을 때 카메라를 들게 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타흐미네 밀라니의 영화는 이란여성들의 삶을 다루되, 그들의 추락과 회귀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풀어간다. 그들 삶의 고비에는 어김없이 ‘남성중심적인 시스템’이 버티고 있다. <두 여인>의 여주인공은 전도유망한 건축가 지망생이었지만, 광적인 스토커와 체면을 중시하는 아버지와 의심 많은 남편 때문에 불행의 늪에 빠진다. 그러나 밀라니의 분신들은 무기력한 체제 순응자들이 아니다. <숨겨진 반쪽>에는 남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편협하고 몰인정한 판단으로 더 이상의 희생양을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감독은 “침묵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소신을 ‘직설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바로 이 대목이 타흐미네 밀라니 영화의 특수성이다. 한 평자는 그와 같은 밀라니의 영화적인 태도에 대해 “밀라니는 자신의 메시지를 우화적인 표현으로 포장하지 않고, 또 자신의 영화작업에 대해 가감없이 얘기하는 편이라, 그보다 더 잘 알려진 동세대 감독들에 비해 훨씬 더 큰 위험을 감수해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밀라니의 영화는 그런 이유로 대중과 평단에서 격렬한 찬반논쟁을 일으켜왔는데, 특히 <두 여인>은 이란영화로서는 드물게 흥행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성공한 케이스로 인정받고 있다.

타흐미네 밀라니는 “난 페미니스트지만, 슈퍼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란사회의 평등을 구현하는 측면에서 여성의 편에 서는 것이다. 하나의 인간으로, 인격체로 마주 보고 얘기하자는 것이다.” 이란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가 분열하고, 충돌하는 것을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 “이란여성들은 강하다. 어떤 장애도 뛰어넘을 힘이 있다고 믿는다.” 카메라를 든 이 여성전사의 마지막 한마디에 그 자신의 전투력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글 박은영 cinepark@hani.co.kr·사진 정진환 ▶ 카메라를 든 이란의 여성전사,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

▶ 이란의 여성감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