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끝난 뒤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서울 종로경찰서로부터 출석하라는 소환장을 받았다. 자유개척청년단이라는 단체가 그를 내란선동죄로 고소한 것이다. 주진우 기자가 쓴 기사나 한 말의 어떤 부분이 내란을 선동했는지, 또 실제로 내란이 있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으나 그가 쓴 기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나 보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책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저수지를 찾아라>를 냈다. 에리카 김으로부터 건네받은 BBK 메모 특종을 시작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을 제기한 특종 등 10년 넘게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주변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이명박 전문 기자로서, 최근의 싱가포르와 캐나다로 추정되고 있는 이명박의 비자금 저수지 취재를 중간 정리한 책이다. 오후 1시에 약속된 이 인터뷰가 “일곱 번째 약속”이라는 그에게 물었다. 대체 ‘가카’(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그토록 애정(?)을 쏟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판사 김진동)는 8월 25일 오후 2시30분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편집자)을 앞두고 단독으로 내보낸 <시사IN> 517호 기사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파장이 크다. 각 언론사 간부들이 장충기 전 차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처음 입수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삼성이 이 정도로 언론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앙망하다’는 송강 정철이 임금에 대한 충절을 드러내기 위해 쓴 <사미인곡> 같은 가사에서나 볼 법한 단어이지 않나.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제외하면 삼성 뇌물 재판을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없다. 아예 삼성을 편들어 보도하는 언론도 많다. 삼성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붕괴시킨 적폐 중의 적폐라 할 수 있는데 언론의 삼성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 것을 보고 같은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웠다.
-이 기사는 이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증거인데도, 언론 대부분이 이 문제를 후속 보도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삼성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운 게 많고 자유롭지 않아서 외면하고 싶은 거겠지. 특히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가 이 기사가 화제가 됐음에도 노출시키지 않는 건 굉장히 큰 문제라고 본다(네이버는 8월24일 주진우 기자의 기사 '삼성 장충기 문자' 전문을 공개합니다를 8월10일 목요일 오전11시28분에서 오후1시30분까지 노출했음을 알려왔다).
-이 기사가 이번 재판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 기대하나.
=‘장충기 문자 메시지’는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수첩,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진술,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의 휴대전화와 함께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더해졌다. 재판이 삼성에 유리하다고 보도하는 언론이 많았는데 이 문자 메시지가 공개된 뒤로 삼성 편들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 기사는 공정한 재판이 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출간한 책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저수지를 찾아라>의 반응이 좋다. 이명박 전 대통령쪽 반응은 없나.
=이명박쪽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하도 이명박 주변을 쫓아다녀서 ‘또 뭘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 생각이다. 이명박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여전히 메인 스트림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진실과 그들의 악행이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오랜 시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많은 애정을 쏟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점점 나아지다가 이명박 정권이 그걸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오로지 경쟁과 출세 그리고 돈 위주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본다. 그가 국가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했다는 점에서 공분했고, 그게 ‘이명박교’의 신도가 되는데 영향을 끼쳤다.
-비자금 저수지를 찾는 과정이 꽤 험난하더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외교행낭과 농협이 날려버린 210억원의 배후가 중요한 단서 같은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의 주변 사람들이 대거 금융권으로 갔다. 해외 자원을 사겠다며 적게는 몇 백억원부터 많게는 몇 천억원에 이르는 돈을 투자했다. 알고 보니 투자를 받은 회사는 껍데기고, 그 돈을 받은 사람들은 다 사라졌다. 그런데 은행과 금융감독원은 그 돈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국세청이나 검찰이 조사와 수사를 하면 단서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안이다. 수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들은 덮으려고만 했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농협이 담보도, 보증도 없이 정체불명의 회사에 210억원이나 투자한 뒤 그 돈이 사라지자 찾지 않으려고 한 사건은 금융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상하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 않나(<시사IN> 464호 기사 ‘농협이 날려버린 210억원의 배후는?’을 참조할 것).
=일반인이 농협에서 100만원을 대출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서류가 필요한가. 농협이 210억원을 대출해준 회사의 대표는 청년 실업가이고, 그 친구가 회사를 세운 다음날 농협으로부터 210억원이 들어왔다. 담보도, 보증도 없이. 그 돈이 어디로 날아갔는데 아무도 찾지 않았다? 농협을 법적 자문한 한 변호사가 돈을 열심히 추적해보니 그곳에 수조원 규모의 비자금 저수지가 있더라. 이 저수지에서 돈을 찾자고 농협에 얘기하니 농협은 그를 해고했다. 여기서 큰 단서를 얻었다. 농협이 검찰에 고소만 하면 그 돈을 찾을 수 있다. 그 돈은 이명박(이나 그와 엮인 주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세금이자 내 돈이니까.
-비자금을 찾기 위해 해외에 나갈 때마다 국정원 요원이 미행하거나 외교부에 출입국 기록이 보고됐다고 들었는데 취재가 두렵진 않았나.
=이명박의 주변이 돈으로 엮인 이권 동맹 관계인데, 혈맹만큼 끈끈해 쉽지 않았다.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감시했고, 트럭이 일방적으로 내 차를 향해 돌진해왔으며, 정체불명의 차가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가고 있는 가족을 향해 달려들어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폐차 지경이 됐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다음날 집에서 나오는데 다리가 떨렸고 무서웠다. 동시에 그들이 경계하는 걸 보니 제대로 취재하는 게 맞구나 싶었다. 취재를 하다가 소송을 당할 수도 있고, (팩트) 증명을 못해서 감옥에 갈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최악은 아니니 조금만 더 하자고 생각하며 취재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 겁에 대한 임계점이 높다고 생각하진 않나.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위험이 생겨도 굴하지 않고 가려고 한다. 회사나 사장이 아닌 국민들에게 월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보다 국민들에게 더 잘 보이고 싶다. 장충기한테 문자를 안 보내고, 국민들에게 진실을 하나라도 더 알리는 게 기자로서 맞는 행동이다.
-캐나다와 케이맨제도 취재는 다큐멘터리 <저수지 게임>(감독 최진성,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기획·제작한 프로젝트 부 세편 중 한편.-편집자)으로도 제작돼 개봉(9월 7일)을 앞두고 있는데.
=이명박의 비자금을 찾아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울 확률은 낮다. 이명박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공분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면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더 효과적이지 않나 싶었다.
-이 책의 영화화 판권이 영화 제작사에 팔렸다고도 들었는데 누가 사갔나.
=영화사 집. 좋은 감독이 와서 하겠다고. 누가 내 역할을 연기했으면 좋겠냐고? 나와 안 닮아도 좋으니 가장 잘생긴 배우가. (웃음)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이명박의 비자금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나.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 비자금 조사는 국세청이나 검찰이 하면 된다. 기자인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권한도 많고, 쉽게 빨리 잘할 수 있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기 전까지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마이크로 떠드는 게 내 임무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 뒤에는 무슨 기사를 쓰고 싶나.
=내 기사로 이명박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고, 사법 처리를 받으면 기자 그만하고 싶다.
-정치할 생각은 없나.
=전혀. ‘책이 나왔으니 한권 사주십시오’ 이걸 못한다. 그러니 ‘한표 부탁드립니다’는 절대 못한다. 공공재로서 20년 가까이 살아왔으니 나중에 음지에서 놀고먹는 걸 보더라도 이해해달라.
-그래서 기자 그만두면 뭘 하고 싶나.
=아니,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냐. (웃음) 17년째 여름휴가 한번 못 갔다.
-여권에는 누구보다 많은 스탬프가 찍혀 있는데. (웃음)
=이명박이라는 숙제 때문에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보름 전에 어머니 생신이라 간만에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 갔다. 그런데 이명박 제보를 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와 미루면 안 되니까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왔다. 가족들이 잘 이해해줘서 여기까지 왔지만 사실 이해 못하는 게 훨씬 많다. 집에서도 많이 쫓겨났다. 사회가 어느 정도 잘 돌아가면 취재하고 글 쓰는 일 말고 다른 일 하고 싶다. 돈을 많이 벌면 이명박과 달리 가치 있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이런 얘기 나누니까 좋으네. (웃음)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저수지를 찾아라>
주진우 지음 / 푸른숲 펴냄
<주기자>가 많은 팬들을 낳은 ‘인간’ 주진우를, <주기자의 사법활극>이 ‘피소송인’ 주진우를 다룬 책이라면 이 책은 주진우가 어떤 기자인지 잘 보여준다. 주진우 기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명박 재산 찾기 프로젝트를 “처절한 실패연대기”라고 얘기했지만, ‘맨땅에 헤딩’에 가까운 그의 취재가 아니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지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승환과 MC메타가 책 출간에 맞춰 발표한 곡 <돈의 신>은 “쓸데없는 ‘고퀄’을 자랑한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