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달에 이르는 ‘박근혜퇴진 광화문 캠핑촌’의 험난했던 농성투쟁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결의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블랙리스트 비정규직 노동자/해고노동자와 함께 도모한 일이었고, 장기농성에 ‘단련된’ 노동자들이 아니었다면 단 며칠을 버티기 힘든 투쟁이었다. 단련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 말은 틀렸다. 겪어보니 그것은 단련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뎃잠은, 심신을 흔들어대고 바스라뜨릴 뿐 단단하게 하지 않는다.
몇년 전부터 거리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연대쉼터를 짓자며 뜨겁게 벌였던 ‘꿀잠’ 운동은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행동 와중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집짓기 운동의 일꾼 모두가 겨울 광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근혜씨가 큰집에서 쉬기 시작함과 동시에 누군가들은 작은집을 짓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한뎃잠 자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가, 인권운동가, 종교인, 법조인, 학생 등 숱한 이들이 ‘노가다’ 일꾼으로 뛰어들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범벅이 되고, 근육통에 시달리기를 마다지 않았다. 단지 해고노동자들의 꿀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노동의 꿀잠이야말로 이 세계의 꿀잠과 연결되어 있다는 각성의 실천이었다.
낡은 다세대주택을 거리농성 노동자들이 씻고, 자고, 빨래하고, 의료 및 법률 지원을 받고, 문화활동을 벌일 수 있는 ‘연대쉼터’로 바꾸는 대공사가 봄-여름을 거쳐 이 가을의 문턱에 마무리되었다. 쉴 틈 없는 강행군이었다.
공사 막바지, 전시·공연장으로 쓸 지하공간은 지독한 페인트 냄새로 역겨웠다. 잠시 쉬자는 간곡한 청을 마다하고 미친 듯 붓질하던 해고노동자 임재춘은 말했다. “응, 이건 분노의 뼁끼칠이야. 지금은 멈출 수 없어.”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였다. 그가 일했던 콜트콜텍 공장은 창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