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아이피>에서 김명민은 형사 채이도를 연기한다. 이도는 어떻게든 범인을 잡는 게 중요한 인물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폭력쯤은 용인될 수 있다고 믿는 형사. 그런 이도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사건의 담당 형사가 된다. 살인범이 북에서 온 VIP라는 것을 알게 된 이도는 국정원의 VIP 빼돌리기에 맞서 끝까지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박훈정 감독이 펼쳐놓은 폭력의 세계에서 김명민은 전에 없이 거친 인물이 된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김명민표 억척스런 연기는 변함없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브이아이피> 홍보석상에서 자처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더라.
=어쩌다보니 진중한 역할을 맡아서 이미지가 고착됐는데, 그 때문에 사람들이 괜히 예의 갖춰 대해주니까 나로선 나쁠 게 없다. (웃음) 원래 성격이 외향적인 편이다.
-<브이아이피>는 어떤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나.
=이도는 영화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 인물이다. 재혁(장동건)과 광일(이종석)과 대범(박희순)을 두루 만나는 데다, 가장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연기하는 재미가 컸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분명했다. 나는 ‘반드시 잡으려는 자’로서의 몫을 제대로 소화하면 됐다. 감독님도 특별히 설정하려고 하지 말라더라. 감독님이 주문한 건 ‘와서 놀아라’, 그게 전부였다.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게 어쩌면 가장 어려운 요구이기도 했을 것 같은데. 게다가 메소드 연기를 즐기는 배우로서 놀 듯이 연기하는 방식이 어색하진 않았나.
=하지 말라는 건 욕심 부리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메소드 연기라 할지라도 현장에는 50 정도만 채워간다. 나머지 50은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100을 채워 가면 감독님의 디렉션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진다. 현장에서 상대 배우, 스탭들과 호흡을 맞춰가면서 캐릭터는 구체화되고 생명력을 얻게 된다. 단지 <브이아이피> 촬영 전 고민했던 건 기존의 형사 캐릭터와 어떻게 달리 갈 것인가 하는 거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거친 형사라고 하면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설경구)이 바로 떠오르지 않나. ‘강철중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 되는데, 설경구 선배와 어떻게 다르게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기의 완급을 조절했다.
-강철중 얘기를 했지만 형사만큼 흔한 영화 속 직업군도 없다.
=기존의 형사 캐릭터들이 떠오르지 않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처음엔 감독님이 미국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에서 매튜 매커너헤이가 연기한 냉소적이고 사회성 없는 형사 얘기를 했는데 그렇게 다운되어 있는 느낌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방향을 바꿨다. 이도에게도 왜 우울한 사연이 없겠냐마는 우울하기보다 까칠한 인물이 맞을 것 같았다. 또 강철중이 거칠긴 해도 인간적인 형사라면 이도는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을 과신하는 비인간적인 캐릭터에 가깝다.
-박훈정 감독과는 맛집 코드가 잘 맞았다던데.
=우리는 맛집 프렌드다. (웃음) 촬영 들어가고선 작품 얘기보다 맛집 얘기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부산의 단골 물회집도 소개해드렸는데, 감독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해서 8일간 물회를 먹은적도 있다.
-최근 들어 다작을 하고 있다. <브이아이피> 이후 사극 <물괴>의 촬영을 끝냈고 곧 <조선명탐정3> 촬영에 들어간다.
=몸은 피곤해도 현장에 있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선명탐정> 시리즈 같은 경우는 캐릭터의 틀이 다 잡혀 있고, 스탭들과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터라 현장에 가는 게 꼭 명절날 친지들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이번에도 신나게 놀다 오려고 한다. (웃음)
-앞으로는 또 어떤 마음으로 달릴 계획인가.
=언제나 그랬듯이 주관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가면 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동료 배우들이 함께 연기하고 싶어 하는 배우, 동료 배우들이 인정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