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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기대작②]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 - 분리된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애니다운' 방식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7-08-14

<러빙 빈센트>는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반 고흐의 일생과 죽음에 관한 추측들은 이야기의 소재로 충분하다. 반 고흐의 작품들을 하나로 모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 법한 시도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을 반 고흐의 작법을 살려 유화로 제작한다는 건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 본래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 게 장편애니메이션의 운명이라고 하지만 모든 작화를 실제 유화로 구성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시도다. 하지만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은 결국 해냈다. 전세계에서 120여명이 넘는 화가가 선발되어 그려낸 6만5천장가량의 유화는 고흐 작품에 생명을 부여했다. 95분의 상영시간 동안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회화는 회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고픈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결국 그렇게까지 했을 때, 어떤 표현과 성취가 가능한지 증명하는 작품이다. 이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신기한 구경거리, 수작업의 독특한 결과물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건 형식과 의미가 일치한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기꺼이 날아와 2년에 걸친 지난한 작업을 함께한 이유는 간단하다. 제목 그대로 고흐에 대한 사랑을 그림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반 고흐와 <러빙 빈센트>의 관계도 그렇다. 6만점이 넘는 유화가 12프레임으로 움직이는 형식이야말로 반 고흐라는 예술가를 표현하는 데 최적의 방식이다. 반 고흐에 대한 더 나은 이야기, 더 재밌는 영화가 있을 수는 있어도 더 적절한 애니메이션은 없을 거라 확신한다. 2017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개막작으로 초청되어 한국을 방문한 <러빙 빈센트>의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을 만났다. 올 10월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 작품을 미리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천편일률 3D애니메이션이 극장가를 점령한 지금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이어야 하는 증거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에 관심 있는 팬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화제가 된 프로젝트다.

=10년 정도 회화를 공부했다. 애니메이션 작화나 편집 등에 관한 일을 받아 꾸준히 해왔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들이었다. 내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여러 시도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단편애니메이션이었다. 5편의 단편을 연출했고 그중 <리틀 포스트맨>은 세계 최초의 스테레오스코픽 페인팅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첫 장편인 <러빙 빈센트> 역시 회화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원래는 단편을 만들기 위해 투자처를 찾고 있다가 휴 웰치먼 프로듀서의 브레이크스루 필름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많은 화가 중 왜 반 고흐에 주목했나.

=기획 당시 런던에서 반 고흐의 편지와 관련된 전시가 있었는데 수많은 관람객을 보면서 고흐에 대한 관심을 새삼 실감했다. 사실 단편으로 찍으면 영화제 말고는 따로 소개할 기회를 얻기 힘든데 더 많은 관객과 만나는 걸 목표로 하고 싶었다. 몇 차례 테스트 후 수작업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하고 이를 다시 유화로 그리는 방식이다. 원화로는 1200장, 미세한 표정이나 몸짓까지 조금씩 바꿔 그린 그림까지 포함하면 대략 6만5천장의 유화가 사용되었다. 나 혼자 그린다고 계산해보니 85년쯤 걸리는 프로젝트였다. (웃음) 초반에 비공식 예고편을 만들어 공개했는데 그림에 참여하고 싶다는 지원자가 미국, 인도, 유럽 각지에서 4천명 넘게 모였다. 그중 120여명의 전문 화가들과 함께 유화를 그려나갔다.

-반 고흐를 다루고 싶어서 회화애니메이션이란 형식을 택한 건가 아니면 회화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위해 반 고흐를 선택한 건가.

=유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컨셉이 먼저였다. 예술 작품을 모으면 스토리텔링이 된다, 페인팅 자체가 스토리텔링을 할 것이란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거기에 딱 맞는 소재는 감히 반 고흐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고흐는 아주 개인적인 소재를 작품에 옮긴 화가다. 자기 주변의 것들, 단골 술집, 손에 익은 물건, 주변 인물들을 그렸다. 그걸 모아서 보면 고스란히 고흐의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처음 이런 상상을 한 건 28살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나이다. (웃음)

-유화를 애니메이팅한다는 것 자체가 고난도의 프로젝트다. 클레이나 퍼펫 등의 스톱모션애니메이션도 노동집약적인 수작업 과정으로 유명한데 그에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반 고흐의 테크닉은 유화의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 실제 캔버스에 그렸고 여러 번 덧칠하는 테크닉도 가능한 한 재현하려 노력했다. 붓칠이 약동하고 색이 살아나는 순간들을 옮기고 싶었다. 말 그대로 작품에 숨을 불어넣는 게 목표였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물론 엄청나게 피곤한 작업이다. 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투입된 화가들 역시 작품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함께해줬다. 고도의 노동 산물인 동시에 열정의 결과물인 셈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100% 유화 페인팅 장편애니메이션은 <러빙 빈센트>가 처음이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반 고흐의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반 고흐의 새로운 일면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러빙 빈센트>

-회화가 움직이는 작업을 일정 부분 CG로 구현할 수도 있었을 거다. 실제로 그런 기법들을 동원한 광고 영상도 있다. 100% 수작업으로만 표현 가능한 영역이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둘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열의 문제는 아니다. 비교할 필요도 없고 비교할 능력도 없다. 처음부터 효율과 경제성을 고려한 접근은 아니었다. 다른 예술가라면 몰라도 반 고흐의 생을 표현하는 이번 영화에서는 사랑을 담아 한장 한장 그려나가는 방식이 필요했다고 믿는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실제 반 고흐의 작품을 보러 가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가령 크리스토퍼 놀란의 아날로그는 감독이 목표한 비전을 구현하는 최적의 방식 중 하나다. 이게 최선인가. 감독이 고려할 건 그것뿐이다. 좋아하는 작품 중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2008)을 예로 들어보자. 같은 이야기를 실사영화로 옮겼다면 전혀 달랐을 것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핸드 컬러링의 고유 색감으로 채색되었을 때라야 빛을 발한다. 목적과 내용, 형식이 부합할 때 힘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러빙 빈센트>의 유화도 대체 불가능한 형식이었다.

-워낙 형식이 눈에 띄는 작품이라 100% 유화라는 사실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형식만큼이나 반 고흐의 죽음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스토리도 이색적이다.

=왜 반 고흐의 일대기를 그리지 않고 주변 인물의 플래시백으로 재구성 했는지를 묻는다면 반 고흐가 그렇게 그렸기 때문이다. 반 고흐가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가 죽기 3, 4년 전이었다. 아를르와 오베르 지방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많았기에 시기적인 제한이 있었다. 오베르에서의 마지막 6주를 스토리의 중심으로 삼은 건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연에 가깝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그림이 제작된 시기는 상대적으로 좁아 미스터리 구조를 취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여러 캐릭터의 입을 빌려 마지막 6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관객과 함께 상상한다.

전세계에서 모인 120여명의 화가들이 무려 2년간 반 고흐의 유화를 그렸다.

-영화에서는 반 고흐의 수많은 그림을 사용했다. 물론 모두 소중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좀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그림을 꼽는다면.

=그림만 이야기해도 오늘 밤새 떠들 자신이 있다. (웃음) <밤의 카페테라스>(1888)를 좋아한다. 고흐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순수한 그림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1889)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어서 사랑한다. 그 그림을 본 날 지금의 남편에게 청혼을 받았다(감독은 프로젝트 중 만난 휴 웰치먼 프로듀서와 2010년 결혼했다). 영화 속 모든 프레임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아직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서로 다른 그림들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거였다. 분리된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작업이야말로 그림이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애니메이션다운 작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다. 그림에 특히 공이 많이 들어간 건 물론이고 카메라의 움직임과 동기화하여 빛을 표현한 연출이 만족스럽다.

-회화에서 출발해 애니메이션으로 끝났다. 양쪽을 다뤄본 입장에서 각각의 매력은 뭔가? 당신에게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회화는 예술가가 혼자서 작업을 하니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창조적인 역량이 온전히 반영되는 개인적인, 그리고 순수한 작업이다. 영화는 정반대다. 감독과 결과물 사이에 많은 것들이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과 조율하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순적이지만 협업이야말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으며 작업 중에도 끊임없이 생각지 못했던 요소와 에너지를 발견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열이나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형식들이 결합하며 일어나는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감독이 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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