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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조합, <비밀의 숲>의 성공이 남긴 것
임수연 2017-08-09

모든 것은 이미 설계되어 있었다

“<비밀의 숲> 봤어?” 최근 몇주 사이 <씨네21> 기획취재팀에서는 때아닌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었다. 식사 때마다 종종 화제에 오르던 <비밀의 숲> 때문에 아직 시청 전인 사람은 스포일러를 피하랴, 이미 푹 빠진 사람은 출연배우의 새 소식을 전하랴 이야기꽃을 피운 것이 이곳만의 사정은 아닐 터. 지난 두달간 <비밀의 숲>에 열광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이 주는 신선한 재미에, 치밀한 각본에,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무수한 미덕에 주목했다. 뒤로 갈수록 완성도가 떨어지던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에 빠지지 않았고, 검경을 다룬 이전 드라마의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았으며, 자기 역할이 분명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또한 <비밀의 숲>에는 이른바 스타 작가와 스타 PD가 없다. 높은 제작비가 들어갔다거나 촬영기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다. <비밀의 숲>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 제작 시스템에 집중한 기획을 준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수연 작가, 연출을 맡은 안길호 PD와 나눈 서면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비밀의 숲>은 그저 등장인물들이 자기 일만 열심히 해도 진일보한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 수작이다. 감정이 없는 황시목(조승우)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검사로서 냉정한 추리를 할 수 있고, 갑자기 타인에 대한 사심 때문에 발목을 잡힌다거나 하는 트랩에도 빠지지 않는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한여진(배두나)의 특성은 사건의 겉모습 너머에 있는 인간의 감정을 파악해 보다 면밀한 수사를 가능케 하는 데 일조한다.

여성 캐릭터들이 호평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앞서 언급한 한여진뿐만 아니라 수습 검사 영은수(신혜선)는 2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검사가 된 여성이 드라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그는 뇌물수수 혐의로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내려온 아버지 영일재(이호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차장 검사 이창준(유재명)과 같은 서부지검에서 일하며 그를 주시하고, 시청자들에게 ‘또라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저돌적으로 진실을 파헤치려 나선다. 때문에 <비밀의 숲>은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갈등의 해결을 지연시키는 ‘민폐’ 캐릭터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에 이수연 작가는 “그간의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정말 그렇게 민폐를 끼친 걸까. 어쩌면 여성이 나오는 순간 저건 민폐이고 의존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봐서 그런 건 아닐까. 요즘의 나는 이런 여성을 본 적이 없다”고 반문했다.

그 결과 검찰 내부 비리에서 촉발되는 검사 조직을 다루겠다는 거시적인 목표는 다양한 욕망을 가진 인간들에 의해 보다 밀도 있게 완성될 수 있었다. <비밀의 숲>이 그리는 한국 사회가 흥미진진한 것은 단순히 뻔한 선악 구도를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각자의 이유를 안고 이기적으로, 때로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이 얽히고설킨 ‘숲’의 구조와 묘사가 충분히 납득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각자의 직업에 걸맞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드라마는 풍부해진다.

주어진 기획에 적합한 스탭을 구성하다

“누구 하나 유명한 사람이 없는데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다.” <비밀의 숲>을 공동 제작한 스튜디오 드래곤의 소재현 프로듀서가 꼽은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공교롭게도 작품과 꼭 닮았다. 그저 “각 파트의 인력들이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개발 단계부터 회의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비밀의 숲>의 대본이 처음 구상된 것은 3년 전이다. 당시 입봉도 하지 않았던 이수연 작가의 기획안과 초고를 바탕으로 제작사가 개발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소재현 프로듀서는 “문장력도 뛰어나고 글이 매우 좋았지만 내용이 다소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원석 같은 작가의 글을 잘 구현해낼 수 있는 판을 짜주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처음 대본을 쓸 때 검경쪽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어서 혼자 법학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하고 취재를 했던 이수연 작가는 제작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대본을 발전시켰다. 편성 확정 이후에는 연출팀이 피드백을 주고 보조 작가들이 협력하며 지금의 대본이 완성됐다. 베테랑 배우들 역시 대본을 보다 풍부하게 발전시킨 핵심 참여자다. 이수연 작가는 “글을 쓸 때 주인공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주된 서사가 무엇인가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배두나씨가 ‘캐릭터가 특정 취미나 버릇을 갖고 있으면 역할이 훨씬 풍부해진다’고 얘기해줬다”고. 한여진이 만화를 좋아하는 설정은 여기에서 나왔다.

현재 SBS플러스 소속인 안길호 PD는 아침 드라마 <내 사위의 여자>(2016) 등 일일드라마와 많은 B팀 연출 경험을 통해 쌓은 임기응변 능력과 탄탄한 기본기 때문에 <비밀의 숲>의 연출자로 낙찰됐다. 여기에 <미생>(2014), <시그널>(2016)로 이어지는 CJ E&M의 간판 드라마의 주요 스탭들이 합류했다. <미생> <시그널>의 김나영 편집기사, 김준석 음악감독, <미생>의 유재규 조명감독이 그들이다. 촬영을 맡은 장종경 촬영감독은 <미생> B팀 카메라 담당 당시 눈여겨본 제작자에게 미리 발굴된 케이스였다. 스타 연출자와 작가의 존재감보다는 주어진 기획에 적합한 최상의 스탭 조합을 구상한 이 시스템은 드라마 연출자를 공채로 선발하는 지상파와, 기획과 제작진 구성을 총괄하는 제작자가 방송사에 소속된 CJ E&M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구성된 <비밀의 숲>팀은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어딘가를 지향한다. 안길호 PD는 “요즘 드라마에서도 영화적인 미장센이나 촬영기법을 도입하는 등 상향평준화되었기 때문에 영화 출신, 드라마 출신이라는 경계선이 사실 모호해졌다. 스탭 중 일부는 영화에서 출발한 분들도 있지만, 이미 드라마 현장의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영화에서는 쓰이지만 방송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고, 방송에서도 적용 가능한 장비가 도입되는 일이 가능하다. 가령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에서 호박색을 담아내기 위해 활용하기도 했던 앰버 필터(Amber filter)가 <비밀의 숲>을 찍을 때 쓰였고, 이는 드라마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었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영화’였다. 영화계에서 중요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조승우, 배두나 외에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역시 “영화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을 뽑는 것이 목표”(소재현 프로듀서)였다고 한다. 서동재 역의 이준혁은 <신과 함께>(2016)를 촬영하고 있었고 유재명, 신혜선은 나란히 <하루>(2017)에서 중요한 역을 맡았다. 특히 유재명은 “<하루>에서 맡은 캐릭터의 존재감도 그렇고 영화판에서 앞으로 잘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접한 것”(소재현 프로듀서)이 캐스팅에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박경완 역의 장성범, 강진섭 역의 윤경호는 <군함도>(2017)에 먼저 캐스팅된 배우였다.

사전 제작보다 중요했던 효율적인 촬영 시간

작가, 배우, 감독, 스탭진 각자가 가진 능력이 만나 발휘하는 시너지 효과는 효율성 측면에서도 적용된다. 최근 많은 사전 제작 드라마가 중국 동시 방영 등 산업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것과 달리 <비밀의 숲>은 처음부터 사전 제작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전 제작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3월이 될 수도 있었던 편성이 6월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5~6개월의 긴 촬영 기간을 거치는 다른 사전 제작 드라마와 비교할 때 촬영 기간도 3개월로 짧았다. 이것은 결국 ‘생방 촬영’이 되고 마는 다른 드라마와 수치만 놓고 보면 비슷한 페이스다. 다만 <비밀의 숲>은 대본을 8부까지 탈고한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이후 대본도 빠르게 완성돼 현장으로 전달됐다. 4부 단위로 묶어 촬영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안길호 PD는 “촬영 시간은 결국 예산으로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전 제작이라고 해서 마냥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본이 미리 나와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콘티 작업과 촬영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또한 사전 제작 시스템에서 좀더 잘 찍을 수 있는 장면은 아무래도 CG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신”이라고 설명했다. 박무성(엄효섭) 집과 같은 세트 촬영에서 원래 창밖 풍경은 그림을 붙여 만드는 경우가 많다. <비밀의 숲>은 영화 현장처럼 크로마키를 댄 후 CG 작업을 진행했다. 후반작업이 많이 필요한 장면을 먼저 찍는 유연함 역시 촬영 현장에서 발휘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총 83회차 동안 새벽 2시까지 촬영한 적이 딱 두번 있었다는 것은, 현장 전반의 효율적인 분위기를 짐작게 한다.

막강한 리더의 지휘가 아닌 모두의 협업이 유효했다

소재현 프로듀서는 <비밀의 숲>을 만든 스탭들이 5년 후, 10년 후까지 염두에 두며 모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에게 끌려가는 드라마 현장도 있다. 물론 그런 현장에서도 잘되는 작품이 나온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것 같다.” <비밀의 숲>의 성공은 적절한 인력 구성과 시스템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것은 재능 있는 신인의 첫 작품에 눈을 돌려야 할 이유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올해는 <비밀의 숲> 외에도 <터널>(2017)과 <쌈, 마이웨이>(2017) 등 유독 신인 작가의 인상적인 드라마가 많았다. 이중 감독과 작가에게 모두 입봉작이었던 <터널>은 다년간 장르 드라마를 만들어온 OCN이 육성한 인력들의 성과다. 드라마와 영화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최근의 경향은 단지 영상의 퀄리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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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