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악의 악당에서 세계 최악의 비밀요원으로 거듭난 그루(스티브 카렐)는 레트로 악당 발타자르 브래트(트레이 파커)를 잡지 못한 책임을 지고 악당퇴치연맹에서 해고된다.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던 그루에게 어느 날 쌍둥이 동생 드루가 도움을 청하며 찾아온다. 그루는 자신이 역사상 최고의 악당 가문의 후예였음을 알게 되고 동생은 그루에게 악당이 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루시(크리스틴 위그)와 사랑스러운 세딸에게 푹 빠진 그루는 다시 악당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악당 발타자르를 물리쳐 요원으로 복귀하기 위해 동생을 잠시 속이기로 한다. <미니언즈>로 잠시 외도를 했던 <슈퍼배드>의 세 번째 시리즈다. 어떻게든 전작의 설정들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지만 이쯤 되면 악당의 의미는 무색해지고 이야기 또한 헐거워지기 마련이다. <슈퍼배드3>도 이러한 단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루는 더이상 악당이 아닌 정도가 아니다. 발라자르를 체포해 유능한 악당퇴치요원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악당 보스를 모시고 싶은 미니언들은 그런 그루에게 실망한 채 떠난다. ‘마음이 착한 악당’이란 1편의 아이러니한 매력은 오간 데 없으니 사실 ‘슈퍼배드’라는 설정은 그저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일루미네이션 작품의 본질은 슬랩스틱 코미디에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설정상의 한계를 메우려는 듯 슬랩스틱의 무한 연쇄를 선보인다. 맥락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과도한 몸 개그를 즐길 수 있느냐가 영화의 호불호를 가르는 지점이다. 문제는 80년대 향수에 빠진 악당 발타자르처럼 <슈퍼배드3>의 개그들은 시대를 잘못 찾아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거다. 그루와 드루, 마고와 에디스와 아그네스 세 자매, 미니언들의 에피소드가 기계적으로 붙어 있는데 메인 서사인 그루와 드루 파트가 가장 매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난감하다. 결국 견디기 힘들 즈음 미니언들이 등장하여 영화를 구출하길 반복한다. 미니언들은 여전히 작품을 떠받치는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이 영화는 <미니언즈>가 아니다. 극중 드루의 대사를 빌리자면 “유니콘(탄탄한 서사)을 원했는데 염소(단순한 슬랩스틱)를 얻은” 영화다. 만약 아그네스처럼 염소에도 기뻐하는 순수한 아이들이라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