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시집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은 아침달무늬 시선집 시리즈 첫 책이다. 겨울의 언어들이 유독 많이 실린 책인데, 그 단어들이 숨막히는 여름밤에 따끔하게 와 꽂힌다. “(전략) 올해는 여전히 올해로 남을 것 같다고 내년이 되어도 여전히 더 남은 것이 있을 것 같다고 또 며칠은 봄의 근처로 조금씩 움직여 나갈 것이다.”
<마흔 두 개의 초록>의 이 마지막을 읽다가 그렇게 조금씩 흔들어 여기까지 온 또 한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 코너를 돌면 가을이 오고 분명 겨울도. 그리고 다시 봄이, 여름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 <겨울 숲에서>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눈이 내린 겨울 숲을 상상한다. 안인지 밖인지 몰라서 나는 길을 잃는다.”
덧붙여 아침달 시선집의 판권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은 성 정체성, 젠더, 나이, 신체, 사회적 지위, 국적과 인종을 이유로 한 폭력을 거부합니다. 이 책의 출간과 유통 과정에서 이와 같은 폭력이 인지된다면 반드시 책임 있는 대처를 하겠습니다.” ‘문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시가 끝난 뒤의 마지막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확인한다. 이 모든 것이, 지금 한국 시의 중요한 일부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