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쓸쓸한, 그래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영화들도 있다. 그러나 그 쓸쓸함의 정체가 단지 소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속은 기분도 든다. 반면 영화에 다 쏟아놓지 못한 또 다른 쓸쓸함이 엔딩타이틀에까지 어른거린다면, 우울한 동조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번주 독립영화극장(KBS2TV 금요일 새벽 1시15분) 두편은 여성 감독이 여성을 주인공 삼아 담백하게 드러낸 일기장 같은 영화들이다. <go West…>(홍윤정/ 35mm/ 컬러/ 21분/ 2001)에는 두편의 영화가 있는데, 쓸쓸한 이사준비와 남자선배와의 이별을 동시에 맞는 이야기 하나와 유부남을 사랑하는 어느 여성의 이별을 다룬 시나리오 이야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비록 주인공에 의해 쓰인 시나리오지만 그녀의 과거 혹은 미래의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go West…>의 전략은 그 두 이미지들을 뒤섞어서 관객에게 던지는 것이리라, 아마도. 감독 홍상수 냄새가 옅게 배어 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관계의 절면을 보여준다.
<생>(조은령/ 35mm/ 컬러/ 19분/ 1999)은 무능한 남편과 사랑스런 아이를 끼고 사는 미용실 주인 이야기다. 생활에 찌들려 웃음을 잃어버린 한 여자는 혼자서 하염없이 설거지를 할 뿐이다. 혹시 이 영화가 “결혼하지 마라, 특히 여자는”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은 삶에 관한 얘기라기보다 ‘상실’에 관한 영화다. 좀 다르지만, 둘 다 잠언만큼은 남긴다. 사랑하면 아프다! 내가 보기에, 여자들은 사랑이 끝나기가 무섭게 냉큼 사랑 바깥에서 서성거리는 모양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yhi6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