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연애소설이 아니고 실존 인물의 내면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은 소련 당국의 탄압과 검열 속에서 무수한 걸작을 남긴 천재 음악가 쇼스타코비치다.
<시대의 소음>은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에서 분기점이라 할 만한 세 순간을 다룬다. 1936년, 그가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스탈린 앞에서 연주한 후 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부르주아들의 비뚤어진 취향을 만족시킨다’라는 악평이 실린다. 이후 그는 연주를 금지당하고 그를 도운 투하쳅스키 대원수마저 쿠데타 음모 주동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한다. 이제 그는 언제든 끌려가서 심문당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밤마다 옷을 차려입고 여행 가방을 싸놓고 잠을 청하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1948년, 그는 프로코피에프와 하차투리안 등과 함께 당국으로부터 또 비판당하는데 이듬해 미국을 방문하여 스탈린식 예술관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1960년, 드디어 스탈린이 세상을 떠나고 시대가 바뀌었으나 여전히 그는 권력층의 압력에 짓눌린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당’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포기하고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다. 솔제니친과 체호프를 비판하는 서한에도 서명하고 만다.
사실 혁명의 시작부터 그는 시대와 불화했다. 혁명가들 앞에서 그는 형식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다. 그의 음악은 ‘시끄러운 불협화음’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당국은 조금이라도 그가 엇나간다 싶으면 어김없이 찾아와 그의 내면을 조였다. 이 시대적 소음들을 들으며 그는 죽음 대신 예술을 택한다. 시대의 압력을 우회하여 ‘아이러니’ 기법으로 창작을 이어나간다. 줄리언 반스는 이런 그의 의식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간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그가 품었을 법한 생각 및 감정과 하나 되어 흐르는 문장들은 귀를 불편하게 긁는, 그러면서도 그 정교함 때문에 계속 들을 수밖에 없는 잿빛 음악 같다.
소음과 예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는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이 핏속에 무릎까지 빠진 독재자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냈지만, 그래도 조금은 순진한 데가 있었다. 그의 괴물들에게는 의심, 나쁜 꿈, 양심의 가책, 죄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죽인 자들의 유령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실제 공포 아래서는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이 뭐란 말인가? 나쁜 꿈 따위가 뭣인가? 다 감상주의, 헛된 낙관주의, 세상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기보다는 우리가 바랐던 대로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불과했다. 나무를 쪼개어 파편이 튀게 만든 자들, 빅 하우스의 책상에 앉아 벨로모리를 태우는 자들, 명령서에 서명을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서류철을 닫으며 한 생명을 끝내버리는 자들. 그들 중 악몽을 꾸거나 죽은 자의 유령이 일어나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본 자가 과연 몇이나 되었겠는가.(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