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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세계, 드라마로 뻗어나가다
송경원 2017-07-10

<데미지 컨트롤>부터 <런어웨이즈>까지, 마블의 세계를 떠받치는 드라마들

part 1. 누가 우리더러 배경이래?

하늘을 나는 히어로들도 결국 땅을 디디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유지되는 건 이름 모를 무수한 시민들이 이야기들을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히어로영화 한편에서는 배경처럼 스쳐지나갈지 모르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이들이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_떡밥 회수 전담 공무원들

“대테러 국토안보 전략 집행국(Strategic Homeland Intervention, Enforcement and Logistics Division)의 콜슨 요원입니다.” “이름이 참 기네요.” “알아요. 곧 바꿀 겁니다.” 이름 자체가 마블 히어로 무비 특유의 농담에 가깝다. <아이언맨>(2008)에 처음 등장한 S.H.I.E.L.D(통칭 쉴드)는 ‘어벤져스’ 영웅들을 이어주고 관리하는 특수기관으로 일반에 공개하기 힘든 초능력과 외계인들에 관한 사건을 전담한다.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어벤져스>(2012)에서 장렬히 사망하며 극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성공한 덕후 콜슨 요원(클라크 그레그)의 귀환으로 문을 연다. 히어로간의 파워 격차도 크고 개성도 강한 어벤져스 멤버들을 한편의 거대한 밑그림 아래 모으는 건 전적으로 쉴드의 공이라 해도 무방하다. 특히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영화가 시간상 담지 못한 자잘한 내용들을 후일담처럼 소개하며 MCU의 설정상 구멍들을 하나씩 메워가는 영리한 방식을 취한다. 영화는 드라마 덕에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고, 드라마는 영화 덕에 인기를 보장받는 윈-윈 게임인 셈이다.

<데미지 컨트롤>_저건 다 누가 고쳐?

<스파이더맨: 홈커밍> 예고편 중.

어벤져스는 문제아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할 잠재적인 위협으로도 볼 수 있다. 외계종족 치타우리의 침공을 막아내긴 했지만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 데는 어벤져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특별한 힘을 가진 히어로들에 대한 소시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어벤져스> 1편 이후 MCU의 주요 테마 중 하나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복수자 제모 남작을 탄생시켰고 급기야 어벤져스가 두팀으로 나뉘어 대결하기에 이른다. 소시민 입장에서는 별을 헤아리는 망원경보다 수도관의 고장난 부분을 먼저 살피는 일상 수준의 시선도 필요하다. 어벤져스가 신나게 때려부순 도시는 누가 수리하는 걸까. 멋진 연설 한 두 마디로 뚝딱 해결될 일은 아니다. 도시의 수복을 담당하는 존재들이 바로 ‘데미지 컨트롤’이다. 쉴드의 하청업체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업무를 맡은 회사라고 할 수 있는데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는 외계문명이 남기고 간 기술들을 관리하면서 얻는 수익으로 도시 재건에 투자한다는 설정. 1988년 마블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데미지 컨트롤은 현재 드라마로 기획 제작 중이다.

<에이전트 카터>_에이전트계의 레전드, 쉴드의 기원

<에이전트 카터>는 어벤져스 팬들을 위한 디저트 같은 추가 단편영상 <마블 원샷>(2015) 중 한편으로 등장한 뒤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까지 제작된 경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무렵 쉴드의 초창기 설립 과정을 중심으로 에이전트 카터의 활약상을 그린다. <퍼스트 어벤져>(2011)에서 미숙한 캡틴 아메리카를 ‘사람 만들어준’ 전직 군인 페기 카터(헤일리 앳웰)는 캡틴 아메리카 실종 뒤 은밀히 현장 요원으로 일하다 결국 쉴드의 창설 멤버가 된다. MCU의 뼈대라고 해도 좋을 드라마를 담당하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 식구답게 묵직하고 진지하며 단단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물론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도미닉 쿠퍼)가 등장하는 만큼 능글맞은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극히 인간다운(?) 레벨의 액션들이 오히려 슈퍼히어로의 현란한 전투보다 훨씬 박진감 넘친다. 특히 웬만한 남성 요원들보다 월등히 뛰어남에도 여성이란 이유로 무시받던 페기 카터가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는 모습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어벤져스의 우아함을 담당하는 시대물이라 할 만하다. 토니 스타크와 티격태격하는 인공지능 자비스의 모델이 된 인간 에드윈 자비스(제임스 다시)를 확인할 수 있는 건 보너스.

part 2. 히어로는 그룹이지

고독한 히어로는 이제 옛말이다. 단독 히어로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도 결국 나중에 팀으로 모였을 때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복수자, 수호자, 탈주자 등 각양각색 컨셉으로 뭉친 히어로 팀들을 소개한다.

<디펜더스>_우리 동네 영웅들

마블의 TV시리즈 <디펜더스>의 전략은 정확히 <어벤져스>의 성공사례를 따른다. 솔로히어로영화들의 성공을 밑그림으로 하나의 연결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디펜더스’는 이름 그대로 악당으로부터 뉴욕을 지키기 위해 팀을 이뤘다.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아이언 피스트. 이 네 히어로의 특징을 꼽으라면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닌 건 아니라는 점이다. 지구는 커녕 미국의 한주를 커버하기도 벅찬 이들의 소박한 목표는 자신들의 동네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대사를 빌리면 “땅을 기어다니는” 영웅들인 셈이다. 물론 아이언 피스트의 경우엔 좀더 거대한 적을 상대로 하고, 이를 중심으로 4인의 히어로가 연합할 수밖에 없는 명분이 생길 예정이다. 스파이더맨 같은 ‘친절한 우리의 이웃’은 아니지만 근육과 주먹을 기반으로 한 이들의 한정적이고도 생생한 능력이 친밀함을 더하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제일 유명한 ‘데어 데블’로 문을 열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제시카 존스’와 ‘루크 케이지’를 소개한 후 <디펜더스>와 직접 연계될 ‘아이언 피스트’를 배치한 전략도 흥미롭다. <마블 디펜더스>는 8부작으로 2017년 8월 공개된다.

<인휴먼즈>_오지랖 넓은 로열패밀리

마블의 세계관에는 다양한 종족이 등장한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에 여러 차례 언급된 인휴먼은 크리족(<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등장)의 실험으로 인해 인간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들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독자적인 문명을 구축해 지구 상공의 도시(드라마상에서는 달) 아틸란에 거주하고 있다. 인휴먼의 왕 블랙볼트는 작은 목소리로도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고, 통제가 까다로운 능력 탓에 평상시엔 거의 침묵하고 있다. 통치 스타일 역시 은둔과 침묵에 가까운데 인휴먼이 지구로 진출해야 한다고 믿는 동생 막시무스의 반란으로 왕족들과 함께 지구로 도피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쿠데타를 해결하는 것도 벅찰 텐데 지구에 떨어진 블랙볼트와 그의 아내 메두사, 아내의 동생 크리스털 등은 팀을 꾸려 지구인들의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성실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9월 <ABC> 드라마로 방영될 <인휴먼즈>는 특이하게 1, 2화를 극장에서 먼저 상영할 계획이다. 드라마로는 드물게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 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공개된 예고편의 예상 밖 퀄리티(?) 탓에 벌써부터 팬들 사이에서 걱정이 가득하지만 설사 망작일지언정 뚜껑을 열어 직접 확인하는 게 팬으로서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런어웨이즈>_10대를 위한 맞춤형 히어로, 또는 가출 청소년 드라마

스파이더맨을 15살 소년으로 되돌린 건 10대와 영웅 사이에 의외로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둘다 자신의 한계와 재능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정체성의 문제로 번민하며, 진통 끝에 성장한다. 마블 코믹스의 10대 담당 히어로를 대표하는 그룹이 다름 아닌 <런어웨이즈>다. 애초에 영화화를 시도했던 프로젝트였지만 이야기의 스케일과 상황을 고려하여 드라마로 선회했다. 등장인물이 적지 않은 만큼 드라마 포맷에 좀더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코믹스는 자신들의 부모가 빌런임을 안 아이들이 가출해서 결성한 히어로팀이란 설정인데, 출발이 독특한 만큼 드라마에서 어디까지 각색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부모로부터 각기 다른 능력을 물려받았고 아직 미숙하다는 점도 포인트 중 하나다. 아버지 세대에 저항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실로 히어로에 어울리는 발칙한 10대의 전형이랄 수 있다. 마블 공식 홈페이지와 뉴스를 통해 공개된 캐스팅을 보면 풋풋하고 매력 넘치는 신세대 배우들이 대거 기용됐다. 마블의 ‘이중에 하나는 네가 좋아하는 게 있겠지’라는 태도의 문어발식 확장 전략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런어웨이즈의 탈주가 단순한 일탈에 머물까, 아니면 진정한 히어로로의 입문으로 이어져 마블의 세계관을 한층 확장시킬까. 훈훈한 비주얼들은 일단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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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니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