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년 동안 대기업의 배급과 상영 분리 문제에 미온적이었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입장을 바꾼 것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겠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의 말대로 문체부가 6월 30일 서울 통의동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열린 ‘영화산업 독과점 개선 방안’ 간담회에서 상영과 배급의 겸업을 금지하고, 특정 영화가 과도하게 상영되는 비중을 제한하는 등의 한국 영화산업 독과점 규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배급·상영 겸업 금지, 스크린 독과점 제한, 독립·예술영화를 일정 일수 이상 의무 상영하는 마이너리티 쿼터제 등 영화산업의 여러 문제 해결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주목을 모으는 부분이 배급과 상영의 겸업 금지다. CJ는 최근 제작사 JK필름을 인수·합병해 제작과 배급(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상영(CJ CGV)을 모두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롯데는 배급(롯데엔터테인먼트)과 상영(롯데시네마)을 겸업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한국 영화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수직계열화에 따른 양극화 문제, 스크린 독과점,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자사 계열사 영화 쏠림 현상과 극장 마케팅 지원, 원청(CJ·롯데)과 하청(제작사)의 불공정한 거래 등 여러 문제가 불거졌고,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급과 상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과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스크린 독과점과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막고 독립영화를 진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영비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것도 영화산업의 공정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문체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이영아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적절한 시점에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어 수직계열화에 따른 양극화 문제에 대한 영화계 여러 구성원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라며 “이미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된 까닭에 법적·제도적 규제, 자율적 규제,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적 지원 등 가능한 한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배급과 상영 분리에 대해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황재현 CJ CGV 홍보팀장은 “CGV는 스크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자사 계열사 영화를 밀어주기 한 적이 없다”며 “극장의 개선책이 필요하다면 적극 마련하겠다. 다만 배급과 상영 분리 문제는 좀더 논의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윤인호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이 적극적인 대형화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무조건적 영화 배급 및 상영 겸업 금지는 한국 영화산업의 위축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영화계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청취해 궁극적으로 한국 영화산업의 양적·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롯데시네마 강동영 홍보팀장은 “아직은 어떤 입장이 없다.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는 6월 1일 ‘영화산업에 대한 시장 분석 용역’ 연구를 미래산업전략연구소에 의뢰한 상태다. 현재 영화시장을 연구, 점검해 수직계열화에 따른 피해 사례가 있었는지, 원청과 하청 사이에서 불공정한 거래가 있었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영비법 개정안 상정 및 표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행정명령이나 제재 조치가 먼저 이루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