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인기를 끄는 주제다. 여자의 뇌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의 뇌는 누드에 약하다는 수준으로 쓰여진 국가 수준 학교성교육표준안은 아직도 폐기되지 않았고, 한국의 최상층 남성 엘리트들은 여전히 수렵채집시대의 남자 뇌, 여자 뇌에 집착한다. 사실 뇌의 성차를 주제로 나온 논문들은 성차보다 개체 차가 더 중요한 변수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매체는 이렇게 보도한다. “이런저런 차이들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은 수준이다”라는 내용에서 마지막을 빼고 “이런저런 차이가 발견!”이라는 제목을 다는 식이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이 주관한 초등교사 연수의 강의 자료에는, 남녀의 특성이 우뇌와 좌뇌를 연결시키는 뇌량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독일의 신경생물학자 마르틴 코르테의 주장이 일부만 잘려서 실렸다. 그는 결론에서 성별간 차이보다는 개인별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며 부모의 성차별적 편견이 아이의 잠재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자료에는 뇌에도 성차가 있다는 내용만 언급되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악의적 편집과 왜곡에 있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뇌과학 중 성차에 집중하는 연구들은 그 자체로 뉴로섹시즘, 즉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융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성차별주의를 양산한다. 실험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언은 여자 뇌는 ‘공감하는 뇌’이고 남자 뇌는 ‘체계화하는 뇌’라는 주장(Empathizing-Systemizing theory)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비록 모든 여자가 공감하는 뇌를 가진 것은 아니고 모든 남자가 체계화하는 뇌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결론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드물었다. 많은 사람들은 체계화하는 뇌는 곧 도구를 발명하고 역사를 주도하는 능력으로서 남자의 뇌이고, 공감하는 뇌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능력에 특화된 여자의 뇌라는 ‘과학적’ 설명이 제공되었다며 열광했다. 그렇다면 뇌의 성차는 차이의 원인일까, 차별의 결과일까.
많은 뇌과학자들은 사회문화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뇌는 계속 변화한다는 걸 밝혀냈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의 뇌가 30% 이상 축소되어 있었다는 연구 결과, 언어폭력에 노출된 고등학생의 뇌량과 해마가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는 실험 결과, 폭력이 중단되고 차별이 개선되었을 때 뇌의 크기와 기능은 다시 복원되었다는 연구 등이 있다. ‘뇌에도 성차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성차별주의가 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뇌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는 이들도 많다. 오히려 나는 반대의 경우에 관심이 있다. 요즘 나는 일부 한국 남성 엘리트들의 뇌가 성차별주의로 인해 손상된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중이다. 손상이 영구화된다면 그야말로 국가적 손실이 야기될 터이니 조속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