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나도 올해는 힘내야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있는 법이니. 일본은 요사이 어떤가요? 또 이상한 이즘이 유행하고 있습니까? 일본의 유행 변화는 참으로 조릿대 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감각입니다.” 여행을 떠나와, 두고 온 것들을 막연하게 근심하는 감각이란 정말 근사하지 아니한가. 돌아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듯싶어지고 심지어는 나 자신이 정말 달라진 기분이 되기도 한다.
한껏 감상에 젖은 문장을 쓴 이는 하야시 후미코다.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 원작인 <뜬구름>을 썼고, 또한 나루세 미키오가 동명의 영화로 만든 <방랑기>는 그녀의 히트작이다. 1930년 펴낸 <방랑기>는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도쿄에 상경해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살았던 자신의 삶을 녹여낸 작품이었다. 근대 일본 여성의 가난과 순탄치 못한 연애, 도시에서의 삶을 그 누구보다 치열한 방식으로 살아내고 글로 옮겨 적은 작가다. 그녀의 <삼등여행기>가 이번에 출간되었다. 앞선 인용은, 런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하야시 후미코가 쓴 글 일부다.
1931년 도쿄에서 출발한 하야시 후미코는 시모노세키항을 거쳐 부산, 서울을 거쳐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향했다. 여행기는 러시아에서부터 시작한다. 식민지였던 조선을 지나며 (비용을 정리한 부분을 보면 초고속으로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지만 쓰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보고 싶은 것으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특징은 이 책의 다른 부분에도 묻어 있다. “런던의 일부 평화주의자는 대장 나라 일본이라고 낙인찍고 있건만, 청일전쟁부터 이노우에 암살까지가 일본을 점점 대장 나라로 만드는 듯합니다. 싫증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삼등여행기>의 힘이기도 하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하야시 후미코보다 빠르고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본 1930년대 초의 하얼빈과 파리, 런던은 보지 못할 테니까. 무엇이든 허기진 눈으로 바라보며 그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하야시 후미코의 발걸음을 따라 길을 나선다. 힘껏 누리는 것들은 모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 와중에 신경 쓰이는 것은 돈 들 일이다. 숙소의 붉은 꽃무늬 벽지가 신경 쓰이는 와중에 하는 생각은, “여기서 병이라도 걸려 무일푼이라도 되는 날엔 그야말로 비참하겠지요”.
매일 남은 돈을 세고, 쓸 돈을 센다. 눈앞의 것을 즐기는 기분과 거기에 드는 비용을 버거워하는 기분이 교차해 마음을 괴롭힌다. 가난을 호소하는 사람을 만나면 한달에 얼마로 사는지 묻기도 하고, 그것을 일본 돈으로 계산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얻어낸 순간들을 소중하게 마음에 담는다. 마음에 드는 것들 사이에 있는다. 그 기록을 남긴다. <삼등여행기>를 읽는 즐거움이다.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나는 고향이 없다.” <방랑기>에 이렇게 적을 만큼 여행이 소중했던 하야시 후미코에게, 아마도 바라는 삶, 삶의 이상이 여행은 아니었을까. 할 수 있는 한 멀리 떠나기 위해 노력하기. 귀국해서는 또 원고를 쓰고 또 여행을 떠나기.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식으로 살고 있지만, 하야시 후미코의 경우는 훨씬 더 절박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삼등여행기>의 옮긴이의 말에 그 사연이 적혀 있으니 궁금한 분은 참고하시길. 하지만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매일 돈을 따져가며 원하는 것을 조금씩 얻어가고, 가능한 한 충만하게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삼등여행기>의 행간에서 잘 읽힌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혹은 그녀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본 이라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고 외치는 하야시 후미코의 문장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슬픔을 경험하리라.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욕심껏 말해보기야말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 집이 아닌 곳에서만 바랄 수 있는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