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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황금종려상 받은 <더 스퀘어>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 “영화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화정 2017-06-05

기쁨에 겨운 원초적 세리머니였다. 43살의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호명된 후 뤼미에르 대극장 시상대에서 (마치 영화 속 행위예술가를 닮은) 격한 춤으로 화답했다. <더 스퀘어>는 미술관 아트디렉터 크리스티앙(클라에스 방)이 홍보매니저의 잘못된 홍보로 내리막길을 걷는 과정을 좇는 영화다. 전작 <포스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2014)과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멀쩡한 이들의 내면에 담긴 위선과 허영을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로 꽉꽉 채워낸 블랙코미디다. ‘눈사태’ 하나로 가식적 속내를 담아낸 전작에서 확장해 이번엔 좀더 다양하고 자극적인 요소들이 크리스티앙을 옭아매는 요소로 작용한다. 원 나이트 스탠드, 소매치기, 그리고 난데없는 원숭이의 등장까지. 이보다 더 웃길 수도, 이상할 수도, 신랄할 수도 없는 영화. 상영 내내 웃음소리가 극장 안을 떠나지 않았다.

코미디 장르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도 이례적인 데다 43살의 젊은 감독의 수상, 스웨덴으로서는 <최선의 의도>(감독 빌 어거스트, 1992) 이후 오랜만의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의미도 더해졌다. “전작만큼 효율적이지 않은 구성”, “긴 러닝타임” 등으로 프레스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과 달리 심사위원들은 “현대미술 큐레이터의 좌충우돌의 삶에 정치적 메시지를 녹여낸 작품. 세련된 은유와 비유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라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142분의 긴 러닝타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자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해리 포터>도 2시간30분인데 잘 보지 않나. 영화가 살아 있길 바란다면 전달하는 다양한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그의 말을 전한다.

-‘눈사태’로 스키리조트에 간 가족에게 닥친 위기(남편의 위선을 꼬집음)를 그린 전작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그러한 위선, 허영 같은 요소들이 너무 많지 않나.

=전작은 매우 분명하고 특정한 구성이 정해져 있어서 처음부터 그것에만 집중하면 됐으나 이번 영화는 그에 비해 여러 다양한 층(layers)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많은 겹겹의 층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약간 겁이 나기도 했고, 이것들이 한목소리로 영화 전체를 단단하게 결속시킬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편집과정의 75% 수준에 이르자 너무 행복했다. ‘아, 이게 제대로 이뤄지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 만족한다.

-영화 속 전시 <더 스퀘어>는 어떻게 구상한 건가.

=2014년 스웨덴 남부에 자리한 미술관 반달로럼에서 실제 있었던 전시다. 전시는 간단한 선택을 통해 사회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미술관 방문객은 두 가지 선택의 문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결정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믿는다’, ‘나는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다’ 중에서 미술관 방문객은 두 가지 문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다른 사람을 믿는다’를 택하지만 이후 그들이 핸드폰과 지갑을 두고 갔을 때 상황은 달라진다. 이 충돌을 통해 원칙에 따라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다양한 구성, 레이어들을 통한 비주얼적인 구현이 뛰어난 영화다. 현대 미술관에서 보이는 극단적으로 선명한 흰색, 크리스티앙이 색색의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장면, 원숭이로 분한 행위예술가가 고상한 식사 자리에서 난장을 벌이는 장면, 계단 부감숏에서 보이는 우물 형상 등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비주얼 작업에 많은 고민과 시간을 할애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스펙터클함을 통해 이미지들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고 연상의 힘을 가질 수 있게 하려 했다. 흰색의 경우,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데, ‘In the white cube’라는 게 있다. 어떤 방에 들어서면 사방이 거울이라는 것과 같은. 미술관 가면 흔히 보게 되는 그런 방이다. 나는 이런 게 그 예술작품을 더욱더 진부하게 만든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런 세계를 공격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질문하고 의문을 품어보고 싶었다. 미술관뿐 아니라 바깥세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언가를 너무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은 우리 개인의 삶이나 영화 영역 등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떠한 의미를 가지려고 하는 것인지, 관습적인 걸 뛰어넘으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어떤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하는 건지. 그런 걸 생각해보고 그런 관점을 공격해볼 필요가 있다.

-크리스티앙과 원 나이트 스탠드를 하는 여성의 집에 아무렇지 않게 기거하는 원숭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 중 하나였다.

=영화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방에서 원숭이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원숭이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원숭이를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원숭이를 보면서 나 자신을 투영한다고나 할까. 내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에게서 문화적인 측면을 벗겨내면 본능과 욕구만이 남은 상태랄까. 나는 인류가 원숭이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숭이를 등장시켰다. 영화에 등장한 원숭이는 ‘티뷔’라는 이름을 가진 프랑스계 원숭이다. 평화를 존중하는 온순한 종이 반 섞여 있으며, 티뷔를 섭외해서 베를린에서 하루 동안 촬영했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크리스티앙의 행동이 시종 예측 불가다.

=일상적인 레벨부터 극단적인 레벨까지 아울러서 보고자 했다.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는 늘 스스로 내면의 대화를 한다.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한다. 인간이 다 그런 것 같다. 특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상황을 보게 되면 무척 예민해진다. 나는 인물을 설정할 때 ‘이 인물은 이렇게 행동할 거야, 왜냐하면 이런 성향의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인물이 이렇게 행동했다, 그 이유는?’ 하고 묻는다면, ‘그는 그저 사람이니까’라고 말할 거다. 그의 현재 상황, 그를 둘러싼 상황이 이렇게 설정되어 있어서 어떤 행동이 나오게 한다.

-잘나가고 잘생긴 남자가 무너지는 과정을 배우 클라에스 방이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그를 캐스팅한 이유는.

=캐스팅 때 클라에스에게 <더 스퀘어>에 대한 스피치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의 스피치에서 이 한 문장이 정말 강한 인상을 주었다. “나의 아버지가 방금 사망했는데 나와 대화를 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와 30분간 대화해줄 수 있나?” 테스트 촬영에서 그 장면을 보고 전율로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모든 장면에서 100% 솔직하게 연기할 줄 안다. 어쩌면 그래서 그에게 이번 촬영이 무척 고되었을 거다. 심지어 그가 나락에 떨어져 기자회견을 여는 장면을 보면, 배우이고 연기를 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실제 그런 것처럼 솔직하게 표현한다.

-휴머니즘적 측면도 보이는 작품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영화를 정치영화로 봐야 하나.

=영화를 만들면서 노력했던 것은 좌파니 우파니 정치적인 논쟁에서 벗어나보자는 거였다. 당신이 정치인으로 스스로 포지셔닝하고 싶다면, (사실상 논쟁보다는)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더 스퀘어>의 의미는, 그 게임에서 발을 빼라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논쟁을 하게 될수록 무척 피곤해진다. 결국은 좌파든 우파든 간에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것은 파워에 대한 싸움이다. 그래서 결국 <더 스퀘어>는 정치적이어도 종교적이어도 안 된다. 발을 빼고 봐야 한다. 그게 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더 스퀘어> 본연의 컨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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