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엔 영웅이 살고 있다. 주로 텔레비전과 스크린 속 인물들이 그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생활 가까운 곳에도 영웅들이 있다. 곁에 두고 거울처럼 자꾸 비춰보는 작은 영웅들. 또래일 때가 많다. 스위드는 마을 청소년들에게 그런 존재다. 타고난 운동 재능, 정직한 말투, 온화한 미소와 황금빛 머리카락. 미국 청년의 이상형이라고 해도 좋다.
네이선의 유년 시절은 스위드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스위드의 동생 제리와 동갑내기였던 네이선은 제리를 만나기 위해 스위드의 집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아주 가끔씩 스위드를 마주치기도 했지만 네이선은 스위드가 자신을 기억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네이선은 야구장에서 우연히 스위드 가족을 만나는데, 놀랍게도 스위드는 네이선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물론 ‘스킵’이라는 애칭까지 쓴다. 얼마 후, 스위드는 네이선에게 편지 한통을 보낸다.
통찰은 대상에 대한 지긋한 관찰에서 나온다. 이 글의 화자이자 극중에선 작가로 등장하는 네이선 주커먼은 필립 로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작가의 문학적 자아다. 이 소설은 스위드라는 인물과 그 가족에 대한 네이선의 관찰과 묘사로 전개된다. 더불어 베트남전쟁을 비롯한 근현대 미국의 사회상, 뉴어크라는 지역의 특색 같은 배경들이 담긴다. 작가 필립 로스는 특수한 배경, 소수의 인물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보편적인 깨달음들을 길어올린다. “공격성은 사람을 닦아주고 치유해준다”, “그는 줄곧 밖에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있어”, “형은 너무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그때까지는 그런 질문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거야” 같은 미묘한 깨달음을 던져주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에 앞서 발간돼 미국 3부작을 이루는 이 작품은 작가 필립 로스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완 맥그리거가 연출과 연기까지 맡은 영화로 개봉을 앞둔 작품, <아메리칸 패스토럴>의 원작 소설이다.
영웅과 비극
우리는 우리의 피상성, 우리의 천박함과 싸워야 한다. 그래야 비현실적인 기대 없이, 편견이나 희망이나 오만이라는 무거운 짐 없이, 최대한 탱크와 닮지 않은 모습으로, 대포도 기관총도 15센티미터 두께의 강철판도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는 탱크의 무한궤도로 상대의 텃밭을 깔아뭉개는 대신 우리 자신의 발가락 열개로 겁을 주지 않고 다가가며, 동등한 사람으로서, 흔히 말하듯 인간 대 인간으로서 열린 마음으로 덤벼든다. 그래도 늘 상대를 엉뚱하게 오해하고 만다. 차라리 탱크의 뇌를 갖는 편이 나을 것이다. (중략) 일반적으로 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사실은 이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착각일 뿐이며, 오해가 빚어낸 놀라운 소극일 뿐이다.(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