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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컴, 투게더> 신동일 감독

신동일 감독이 8년 만에 4번째 장편 <컴, 투게더>로 돌아왔다. 공동체 대신 개개인의 상황에 집중한 가족영화이자 현대인들의 세대별 고투 관찰기다. <방문자>(2005), <나의 친구 그의 아내>(2008), <반두비>(2009) 등 ‘관계 3부작’ 이후 첫 작품이며 직접 쓴 시나리오 대신 기존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몇 가지 변화에도 불구하고 뭐라 단정할 수 없는 ‘신동일스러움’은 여전하다. 세상과 특정인에 대해 예리한 칼날을 세우는 대신 그 칼끝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듯한 성찰이 어린 이번 작품처럼, 감독은 질문에 답을 할 때마다 눈을 꼭 감은 채 기억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반두비> 이후 8년 만의 장편이다. 작업 기간이 길어진 건 전작에서 상영등급을 둘러싼 고충을 겪은 탓인가.

=고등학생이 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가 <반두비>였는데 그것이 좌절되면서 사실 트라우마가 오래가더라. 고등학교 선생님 중에 수업시간에 튼 분도 있다는 말에 위안 삼았다. <컴, 투게더>를 만들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 문제의 소지가 될 장면이 있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15세 관람가가 나왔다.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작품을 만들기로 한 건 2013년 11월 4일이다. 동아리 후배가 공모용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부탁했는데 마침 약속이 펑크나서 그 자리에서 읽어내려갔다.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은 뒤 이걸로 다음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후 개봉까지 오는 데 3년6개월이 걸렸다. 시나리오를 쓴 친구는 20년 후배다. 수업과제를 위해 나를 인터뷰하면서 인간적인 교류를 쌓게 됐다. 시나리오에서 좋았던 건 인물의 평범성이라고 할까?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아등바등 사는 모습이 대다수의 삶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2년여의 각색 작업을 거쳤는데 주인공이 셋인 데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멀티 플롯이라 형상화가 까다로웠다. 각색 과정에서 캐릭터의 평범함을 보강하기 위해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던 윗집 남자 캐릭터를 추가했고, 보조 역할에 머물던 한나(채빈)의 친구 유경을 <반두비>의 민서(백진희) 같은 인물로 대폭 보강했다.

-이혜은 배우와는 20년 만의 재회라고. 미영 역에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혜은은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미영은 이기적이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20년 연기 공력으로 극한 감정 상태도 충분히 표현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캐스팅했다. 되게 지적인 사람이라서 설명을 안 해도 주인공의 상황을 정서적으로 이해했다. 미영은 직장 내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이 다른데, 직장에서는 철저한 커리어우먼이라면 집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집에서의 일상적인 연기 톤도 좋아한다.

-술 취한 친구 아영을 데리러 갔던 한나가 결국 그녀를 길가에 버려둔 채 떠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인간은 영웅적인 모습과 비열한 살인 방조자의 모습을 함께 지닌 모순적인 존재다. 갓 20살인 한나에게 가혹하더라도 위험에 빠지게 하고 싶었다. 인간에게 병존하는 정의로움과 비겁함 중 어느 하나만 선택했다면 갈증을 느꼈을 것 같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부메랑 같은 상황이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한다. 이번에는 <반두비>에서 민서가 사장 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TV를 통해 깔깔대면서 보던 범구(임형국)가 딸에게 ‘씨팔’이라는 욕을 듣고 흥분하는 장면이 그랬다.

=저작권 문제로 내 영화에서 여러 장면을 삽입해서 들어봤는데 <반두비>의 그 장면이 배우들의 연기와 매치가 잘되더라. “저딴 쓰레기를 아빠라고”라는 <반두비>의 대사가 범구에게 매치되기도 하고, 묘한 밸런스가 있었다. 범구의 행동은 내가 속한 세대에 대한 자기반성의 의미이기도 하고,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가혹할진 몰라도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행위인 거다. 스스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가장 수치스러운 경계를 넘어선 참회를 하는 문제의 장면이 나온다. 가혹한 면이 있고 불편할 수 있는 장면이긴 한데 응당 그런 처벌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페르소나 같은 인물이라고 언급한 김재록 배우가 처음으로 극중 죽음을 맞는다.

=김재록씨와는 <너마저>라는 5컷짜리 영화 인생 첫 단편을 비롯해 1993년부터 24년간 6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그의 죽음은 나의 세대의 실패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지만, 결코 죽은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떨어진 흔적이 있는데 윗집 남자라는 증거도 없고, 떨어진 누군가가 죽었다는 증거도 없다. 주인공의 착각일 수도 있고 명확하게 드러낸 건 아니다. 다음 영화에도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사라진 것, 잠시 부재한 거라 말하고 싶다.

-작품에서 누군가 죽는 경우가 많다. 죽음이 직접 등장하지 않더라도 암시되거나 서사를 추동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죽음이 추동 요인이긴 했던 것 같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근원에서 들끓는 죽음 충동, 타나토스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작품은 주인공들 모두 죽을 뻔한 사람들 같다. 스스로 경멸하기도 하고,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극한 상황에서도 끝끝내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한다. 스스로 미하엘 하네케보다 켄 로치에 가까운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냉기보다 삶의 온기를 느끼고, 지성으론 비관해도 의지만큼은 낙관해야 한다 여겼다. 작업기간이 길어지면서 될 듯 될 듯 안 되는 상황을 겪다 보니 체념한 것도 있고 여유가 생긴 것도 있다.

-<컴, 투게더>에는 인물들의 행동을 연결하면서 장면을 잇는 편집이 자주 등장한다.

=김보람 촬영감독이 아이디어를 냈다. 화이트보드에서 베란다 걸레질로 넘어가는 연결은 그 친구 아이디어다. <철원기행>(2014) 촬영이 좋아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전작보다 다이내믹한 흐름이 생긴 것 같다. 물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장현성홍소희의 손가락을 빠는 것과 박희순이 새로 만든 치킨 소스를 빠는 것으로 넘어가는 짓궂은 시각의 연결이 있긴 했는데 그건 카메라가 픽스된 상태였다면, 이번에는 인물이 움직이거나 카메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박진감과 스피드가 생겼다.

-대학에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 누군가 추락한 흔적 등 유독 떨어지는 것과 관련한 말과 행위가 두드러진다. 비의 낙하 운동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비로소 추락이 긍정적인 의미를 얻게 되는 것 같았다.

=범구가 실직 후 거실에서 무료하게 지내잖나. 그가 베란다에서 화분을 떨어뜨리는데 자신의 행위를 지각하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이다. 그러다가 윗집 남자가 추락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 뒤, 높이감도 느끼고 공포를 느낀다. 마지막 비 내리는 장면에서는 각자 자신이 겪었던 지옥 같은 일주일을 뒤돌아보면서 다시금 시작하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 사실 비가 내리는 것은 다른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상징하는데, 다만 그들의 달라진 태도가 전달됐으면 했다. 마지막 컷을 딸의 얼굴에서 끝내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보내는 응원의 마음을 담았다. 비는 따끔따끔하고 고통스럽지만 꿋꿋하게 맞섰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표현했다.

-가족을 다루면서도 가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영화와 거리를 둔다.

=일본에 <도쿄 소나타>, 미국에 <아이스 스톰>, 대만에 <하나 그리고 둘>이 있다면 한국에는 <컴, 투게더>가 있다는 나름의 의지가 있었다. <도쿄 소나타>는 레퍼런스로 삼기도 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이스 스톰>이나 <하나 그리고 둘>을 떠올렸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한 울타리 내의 가족이 각자 고군분투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관계 3부작 이후 첫 작품인데, 새롭게 정한 키워드가 있나.

=상처받기 쉬운 개인의 나약함이 전작보다 더 드러나는 것 같다. 스스로 보듬으면서 유대나 연대를 확장해가는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키워드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포기하거나 부족해도 괜찮다는 것으로 주제가 형성되더라. 스스로 집착과 강박을 내려놓는 경험을 한 것이 인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투영된 것 같다. 좀더 내밀하게 들어가면 자본주의 사회와 관계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묻고 싶었다. 경쟁이 내면화된 절망적인 상황 속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대안을 찾고 싶었다.

-<반두비>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다른 작품을 차기작으로 언급했는데.

=아직 결실을 못 본 상태다. 그 작품을 준비하면서 <컴, 투게더>와 함께 대안으로 쓰던 두 작품을 포함해 총 3편의 시나리오가 남아 있다. 일단 개봉을 마무리한 뒤 본격적으로 준비하려 한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 같아 구체적인 언급을 하기는 그렇고(웃음) 묵묵히 작품을 만들고 나서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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