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재미있는 영화를 마냥 즐길 수 없고, 위트 있는 농담을 들어도 마음껏 웃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병’이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당혹스러움과 불편함의 감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VOL.2>의 드랙스가 멘티스에게 “너같이 비쩍 마른 몸매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 여성 관객은 이게 그저 할리우드영화 속 지질한 마초 캐릭터의 섣부른 착각이라 생각하며 웃어넘겨야 하는 걸까?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신작 에세이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이 에세이집은 18년차 영화주간지 기자이자 예리한 감각의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그러나 그 이전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해온 글쟁이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다. 왜 수사물 장르의 미드 속 남자주인공을 각성시키는 건 여성 캐릭터의 죽음인 건지, 소설 <무진기행> 속 희중은 무진을 떠나는데 왜 인숙은 떠나지 못하는 건지, 뉴스를 진행하는 여성 앵커들은 왜 안경을 끼지 않는 건지, 이 책에 실린 스물네편의 글은 여성으로서의 저자가 “읽은 것과 경험한 것, 배운 것, 느낀 것 사이”의 이해할 수 없는 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에세이와 강의록, 대중문화와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유와 회고담은 동세대 여성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해야 함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