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스 페어’라는 록페스티벌이 있었다. 1997년부터 99년까지, 여성 뮤지션들이 무대에 섰다. 제목의 ‘릴리스’는 누구일까. 홀로코스트 증언문학의 상징인 이탈리아 프리모 레비의 단편집 <릴리트>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최초의 여자. 아담의 첫 번째 부인. 단편 <릴리트>는 릴리트와 관련된 비공식적인 신화를 언급한다. <창세기> 1장27절.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신이 아담을 만들고, 그에게서 갈빗대를 빼내 여자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혹시 두 여자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하와가 아닌 릴리트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유대인 수용소, 25번째 생일을 같은 날 맞은 두 남자가 비를 긋다 역시 비를 피하는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로부터 릴리트의 신화가 다시 이야기된다. 릴리트는 구전과 비전으로 전해지는 인물인데, 그중 하나는 이런 사연이다. 신은 진흙을 빚어 하나의 형상, 골렘(유대신화에 등장하는 사람의 형상, 히브리어로 ‘태아’)을 만들었다. 하나의 얼굴에 두개의 등, 이미 남녀가 결합형태였던 것. 이후 그들은 둘로 나뉘었는데 다시 결합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아담은 릴리트가 땅에 눕기를 바랐다. 릴리트는 아래 눕기를 거부했다. 아담은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 또한 남자였고, 아담의 편을 들어준다. 릴리트는 반항했고, 두 남자가 고집을 꺾지 않자 악마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릴리트>에서는 릴리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같은 결론이다. 릴리트를 죽여야 한다. 구원자는 릴리트를 죽이는 자일 것이다.
세상의 악을 여성의 형태로 상상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용소의 젊은 남자들이, 젊은 여자를 보고 죽여야 할 릴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끝에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프리모 레비는 이 이야기를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전한다. 유대인이야말로 릴리트가 아니었을까. 타락과 반항, 탄압과 유랑의 상징. 유대인은 비유적으로 릴리트의 처지에 놓인다면, 여성은 릴리트 그 자체다.
과거를 망각의 영역으로 쓸어내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곳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될 것이다. <릴리트>의 ‘가까운 과거’에서 만날 수 있는 유대인 수용소 이야기는 수용소의 사람들 하나하나를 호명하는 작업이 되고,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명이 된다. 하지만 릴리스는, 인류의 기원 때부터의 오해로부터 한 발짝이라도 더 미래를 향해 나아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