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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타] 현장이 정말 재밌다 - <석조저택 살인사건> 고수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으로 모든 걸 상실한 남자 이석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에 휩싸인 석진은 이름도 직업도 처지도 전혀 다른 최승만으로 위장해 연인을 죽인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선다. 오직 그것만이 그를 살아가게 한다. 고수가 석진과 승만 두 이름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된 사연 많고 미스터리한 인물을 연기한다. 고수의 반듯한 얼굴 너머에서 우수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의뭉과 회한 서린 그의 또 다른 얼굴을 확인할 시간이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어떤 면에 끌렸나.

=<이와 손톱>이라는 원제를 보는 순간 궁금증이 마구 생겼다. ‘필사적으로 처절하게, 온힘을 다해서’라는 의미더라. 무엇을 향한 처절함일지 의문을 갖고 시나리오를 읽어가는데 이야기의 구성이며 분위기가 기존에 받아 본 시나리오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 작품을 꼭 하고 싶어졌다.

-신분을 숨기고 연인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석진의 상황이 굉장히 극적이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표현해야 할 것도, 표현해보고 싶은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1인2역까지는 아니지만 석진은 변장, 위장을 통해 전혀 다른 인물인 양 산다. 나로서도 이런 시도는 처음이라 만들어가는 재미가 꽤 컸다. 석진이 마술사다 보니 마술을 직접 배우는 건 기본이었다. 무엇보다도 석진과 승만이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저마다 해내고 싶은 인생의 목표가 뚜렷이 있었다. 석진에서 승만으로의 비약적인 변신이 아니라 각각의 목표를 위해 처절하게 움직인 끝에 이르게 되는 변화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석진을 움직이게 하는 건 순정에 가까운 사랑과 증오 어린 복수심이다. 격차가 큰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세심한 연기가 관건이었을 것이다.

=고아로 자라 여기저기 팔려가고 외롭게 떠돌이 생활을 하던 석진 앞에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봄과 같은 사랑이 하연(임화영)이다. 이들의 사랑이 미처 꽃을 피우지도 못한 것이니 석진의 충격이 얼마나 크겠나. 석진에게서 사랑뿐 아니라 모든 걸 앗아간 것과 같다. 석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심리적 변화 과정을 촘촘히 그려가려 했다.

-그간 과묵하고 고독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순애보적 사랑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을 많이 해왔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표현해내 관객으로 하여금 그런 낯선 감정에 공감하게 만드는 게 배우의 일이 아닐까. 그뿐이다. 나 역시 밝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웃음) 요즘 들어서는 밝은 가족극이나 스포츠영화를 해봐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도 역시 감정의 깊이로 치자면 멜로가 최고가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위대하다. 연기 안에서 계속해서 그 감정을 그려가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범위나 깊이는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다.

-진지하고 차분한 기존의 이미지를 확 깨뜨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나.

=하하. 내가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면? 아, 근데 내가 코미디를 할 수 있을까? 하게 될까? 예전부터 내가 말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보고 ‘깬다’고 말한다. 어딘가 내가 좀 다른 구석이 있나 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인데 그런 반응이 싫어 과묵해졌다. 기회가 된다면 내 안의 다른 면들을 연기로 펼쳐내보고 싶다.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1999) 같은 영화나 로드무비를 굉장히 좋아한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순수하고 무모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에 마음이 간다. 반사회적이기보다는 탈현실적이고 탈사회적인 인물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인터뷰를 보신 감독님들 중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다면 연락달라. 맨날 내가 슈트 입고 마네킹처럼 있는 모습만 보여드린 것 같다.(웃음)

-언젠가 인터뷰에서 ‘남들이 원하는 정답에 맞춰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배우로서의 소신이자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다.

=타협한다는 게 무섭다. 약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감독과 배우는 결국 작품으로 그 자신의 인품이며 생각이 드러나는 법이잖나. 그래서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하고 싶다. 작품 앞에서는 솔직해지려 한다. 나 자신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건데 가볍게 말할 수가 없다. 내 성격상 그렇다.

-최근 <남한산성>(감독 황동혁) 촬영을 마쳤다. 올해 또 다른 작품 계획이 있나.

=<남한산성>에서는 대장장이 날쇠 역으로 상헌(김윤석)의 부탁을 받고 격서를 전하는, 민심을 반영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언제나 그렇듯 뭘 하든 최선을! 올해도 나름 기대하는 바는 있지만 말을 해버리면 김이 샐 수 있으니 작품으로 보여드려야지. 요즘 현장이 정말 재밌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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