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영화동반성장협약(이하 동반협) 이행 모니터링 보고서라는 문건을 보면 “HHI지수가 1,800이 넘으면 과점, 4,000이 넘으면 독점”이라면서 그 기준으로 국내 배급 시장과 국내 “한국영화” 배급시장의 독과점 현황을 평가하며 독과점 상황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런 엉터리가 없다. HHI는 특정 시장의 독과점 정도를 평가하는 지수인데 4,000이라는 숫자를 넘어야 독점이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족보도 없다. 이런 기준으로 한국 시장을 평가하니 독과점 상황이 아니라는 결론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니 동반협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HHI지수란 시장의 집중도, 즉 과점의 정도를 산술적으로 평가하려는 지수이다. 1982년에 미국연방검찰이 집중도가 높은 시장에서의 기업결합을 제한하려는 취지로 개발하였다. 계산하기는 매우 쉽다. 상위 업체들의 점유율을 제곱하여 더하는 것이다. 한국의 이동통신시장처럼 어림잡아 SK 50: KT 30: LG 20이 삼분하는 시장의 HHI는 2,500 + 900 + 400 = 3,100이다. 이와 비슷한 분야가 한국 극장산업이다. CJ와 롯데가 40%, 30%를 점유하고 있어 이미 그 자체로 2,500을 넘고 연도에 따라 3,000을 넘는다. 미국연방검찰은 1,800초과는 “고도 집중”으로 판단하다가 2010년에는 기준치를 조금 완화하였지만(2,500) 새로운 기준하에서도 한국의 영화상영 시장은 고도집중 상태이고 “한국영화” 배급 시장 역시 경계선 위에 있다. 유럽연합(EU) 기준(2,000)으로 보면 둘 다 명백히 독과점이다. 독일이나 일본은 우선 하나의 업체라도 35%가 넘으면 과점의 우려가 있다고 본다. 주요 국가들의 어느 기준으로 봐도 우리나라 영화상영 시장은 엄청난 독과점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링 보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영화별 HHI지수를 계산하는 데 엄청난 노동과 지면을 할애한다. 독과점은 의사결정의 집중을 의미하며 공정거래규제 목적의 HHI는 결정주체별로 영향력을 합산해야 되는 거지 제품별로 합산하는 관행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필자가 보기에 동반협이 이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고 “동반성장”이 되고있다고 자평한다면 그건 코미디다.
사실 이때만 해도 실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이하 전략센터)의 최근 행보를 보면 실수였는지 걱정스럽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대기업들이 영화배급업과 상영업을 겸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이하 안도법안). 그런데 전략센터는 “최근 계열사 밀어주기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CJ와 롯데가 받은 시정명령조치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패소당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배급-상영 분리의 산업적 근거가 법원으로부터 부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국회교육문화상임위원회에서 박용수 전문위원이 영비법 개정안을 검토한 결과 헌법상의 재산권, 직업의 선택 자유 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한·미 FTA 위배… 를 들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라며 이를 “사법부와 입법부의 공식적인 의견들”로 치부하며 결국 안도법안에 반대한다.
우선 전문위원 1인의 의견이 “입법부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법원판결이 내려진 계열사 영화 밀어주기는 안도법안이 핵심으로 보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CJ와 롯데가 상대방 계열사 영화나 해외 블록버스터들을 밀어줘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안도법안이 해결하고자 하는 핵심 문제는, CJ와 롯데가 합산하여 70%의 스크린을 통제하는 동시에 한국영화의 40~60%를 배급하는 ‘동시과점적 수직계열화’ 구조로서 우리가 의미 있는 비교대상으로 삼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현상이다. CJ와 롯데는 이 구조를 이용하여 영화상영계약에 있어서 무료초대권발행, 가상프린트비용, 차별적 부율, 교차상영 등 각종 약탈적인 조건들을 비계열사 배급사들에 강요하고 결국은 투자배급계약을 함에 있어 금융비용 요구, 공동제작지분 요구 등으로 비계열사 제작사까지 고사시키고 있다. 특히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CJ와 롯데가 위 사안들에 있어서 담합하여 ‘약탈적인 조항들을 업계표준’이라며 들이밀면 비계열사 배급사들이나 비계열사 제작사들은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개봉 기회를 보장받으려면 CJ나 롯데에 잘못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박용수 위원이 안도법안 반대이유로 든 한·미 FTA는 규제 반대자들에 의해 엄청나게 자주 오인되고 있다. FTA든 WTO 협약이든 무역협정의 목적은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도나 결과가 해외 기업들을 향하거나 집중되지 않는 한 협정위반 상황은 없다. 안도법안은 의도나 결과에 있어서 해외 기업들을 향하고 있지 않다. 해외 기업들이 CJ나 롯데처럼 상영과 배급을 동시에 과점적으로 한다 해도 그들 기업들이 영향을 받겠지만 현재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역진조항에 대한 박용수 위원의 언급은 무시해도 좋다.
투자자-국가간 소송 계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더욱더 무시해도 좋다. 모든 규제는 기업활동을 제한하며 당연히 그 기업 투자자에게 손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규제는 ISD(투자자-국가소송제) 소송에 “계류”될 수 있다. 하지만 계류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규제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우리나라 규제 반대자들이 자주 내세우는데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대주의에 가깝다.
박용수 위원은 다른 산업에도 수직계열화가 있는데 왜 영화만 차별하는가 반문한다. 그러나 실제로 한 산업의 생산단계와 바로 다음 생산단계에서 2개 업체의 합산점유율이 60~70%가 넘는 업계가 어디 있는가. 영화산업이 특수하기 때문에 특수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박용수 위원은 미국 파라마운트판결의 산업환경과 우리나라의 산업환경은 다르다며 파라마운트식의 해법을 거부한다. 실제로 다르다. 한국의 독과점 상황이 훨씬 더 심하다. 현재의 한국은 모두 배급 시장(한국영화 기준), 상영 시장 각각 HHI가 2,400, 2,900 정도인데 1940년대 미국의 경우 배급 시장과 상영 시장 각각 HHI가 1,000을 간신히 넘었다. 또 미국의 1940년대 상황과 비교하여 한국이 훨씬 열악한 부분은 바로 최대 메이저들이 노골적인 “담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940년대 미국의 메이저들은 치열하게 상호 경쟁했다.
박용수 위원 의견서에서 그래도 봐줄 만한 것은 대기업에만 특정 행위, 즉 배급상영 겸영을 완전히 금하는 것의 헌법적 문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논의하면 될 일이다. 미국도 파라마운트판결 이후에 부분적으로 배급상영을 허용하고 있다. 단 우리나라처럼 ‘메이저’상영관이 ‘메이저’ 배급까지 하는 것은 막으려고 한다. 그럼 우리도 그런 수준에서 논의를 하면 될 일이다. 전략센터가 박용수 위원의 의견 내용을 따져보지도 않고 배급상영복합체에 대한 어떠한 구조적 규제도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고등법원판결도 잘 읽어보고 ‘사법부의 공식적 의견’ 운운할 일이다. “최근 1년간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고객 가운데 94.4%는 극장에 가기 전에 미리 볼 영화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특정 영화에 대한 상영 회차를 많이 배정함에 따라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판사가 얼마나 영화계의 현실에 무감각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예약 자체도 상영시간, 장소, 횟수에 영향을 받는다는 상식을 망각한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