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가 <씨네21>에 두번에 걸쳐 기고한 글(1101호 포커스 “‘한국영화산업 상생협력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 구성, 영화계의 미래를 위한 고민인가 소수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가”), 1102호 포커스 “영진위의 ‘조직개편안’ 졸속 추진과 ‘영화진흥사업 지원체계 개선안’의 ‘의혹’을 말한다”)에 대한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의회(이하 한독협) 사무국장과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이하 전략센터) 소장의 지난 1103호 반론에 대한 재반론이다.
먼저 필자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영화문화다양성소위원회위원 활동에 대해 밝힌다. 소위 위원 활동 중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여론조작 대필사건’과 밀실행정의 산물인 ‘영화진흥사업 개선안’(이하 개선안)이 드러난 지난 3월24일, 문제제기와 함께 사퇴서를 제출했다. ‘한국영화산업 상생협력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이하 라운드 테이블)에 대한 비판적 글은 전략센터의 제안 공문을 보고 부당성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라운드 테이블이 ‘구성되지 않았다’고 한독협이 주장해도, 라운드 테이블에 대한 필자의 문제의식이 모두 사라질 수는 없다. 또한 한독협의 문건공개 요구는 개선안 문건 의혹 자체보다 영진위 문서 유출을 강조하는 프레임 전환으로 보여진다. 한독협이 발표한 성명서에는 여론조작 문서대필 사건의 영진위 제보자를 끝까지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필자에게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전 기고문에서 ‘블랙리스트 영화인 행동’(이하 영화인 행동)의 합의 의혹과 라운드 테이블 구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개선안 의혹과 조직개편안의 졸속 및 강행처리 시도가 영진위의 단독 행위인지, 문화체육관광부의 개입은 있었는지, 관련된 영화인이 있었는지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그러므로 이전 기고문이 이지연 국장의 우려처럼 “영화인 행동을 이익단체로 둔갑시키고 근거 없는 의혹을 확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제기를 ‘문제화’하는 것은 건강한 토론을 방해할 뿐이다. 필자의 주장은 개선안 ‘의혹’에 대해 영화계가 함께 영진위에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으로, 한독협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것이 현재 유일한 해결책이다.
“남 탓하지 마시라!” 제하의 최현용 소장의 반박문은 필자의 논지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에 관한 사실 왜곡과 편협한 주장,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를 힐난하는 글이라 당혹스럽다. 라운드 테이블 쟁점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협의회’(이하 동반협) 이행협약서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 영화계 현실을 외면한 채 동반협의 성과를 왜곡하고, 객관적인 평가도 없이, 4년이란 시공간조차 뛰어넘어, 제협이나 감독조합이나 산업노조 등 핵심적인 영화단체를 배제한 논의 테이블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이 이전 글의 핵심이다. 기형적인 라운드 테이블의 추진은 영화계가 극장소유 대기업의 이익에 무력해지고, 영화계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위험한 방식이란 점을 다시 강조한다.
최현용 소장은 “단체와 단체의 논의”, “한 단체가 총회에서 정리된 사업의 추진”에 “월권적 태도를 버리시라”고 충고를 한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에서 라운드 테이블 참여 여부에 관한 공식 공론화 과정은 없었다. 하물며 “한 단체의 총회”라니? 사실과 다르고 이치에 맞지 않다. 또한 감독조합의 연출표준계약서가 잠시 중단된 것은 최 소장의 주장과 다르다. 감독조합에 확인 바란다. 그러므로 ‘진짜 월권’은 전략센터가 하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전략센터는 영화단체인가? 정치단체인가? 왜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단체 간담회에 전략센터를 참여시키는가? 전략센터가 라운드 테이블을 구성할 자격이 있는가? 전략센터는 구성원과 억측 많은 운영재원에 대한 의문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영화계는 이미 분열했다”고 말할 최소한의 자격이 있다. 아니면 영화계 분열의 주체는 전략센터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입장과 의견이 다른 것은 자연스럽다. 차이를 인정하고 영화계 공동의 의제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토론과 노력이 필요하다. 분열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토대 위에 한줌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영화계 공공의 선과 가치를 짓밟은 ‘진짜 폭력’이다. 필자 기고문의 본질적 주장은 민주적 공론화의 가치를 영화계에 세우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