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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국정교과서>와 <버블 패밀리>, 이한빛 PD의 죽음과 박찬욱 감독의 소감
주성철 2017-05-05

올해 전주도 풍성했다. <씨네21>은 공식 데일리 외에 영상 작업도 더했다. 늘 그렇듯 지속적인 ‘좋아요’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이번호 특집에서 언급되지 않은 두 작품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천안함 프로젝트>(2013)에 이은 백승우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국정교과서>는 ‘우리는 왜 21세기에 국정교과서를 강요받고 있는가’라는 질문 아래, 수구세력의 역사 쿠데타라 할 수 있는 국정교과서를 중심에 두고 최근의 탄핵까지 세월호 이후 3년의 시간을 면밀하게 담고 있다. 2010년에 천안함 사건이 있었고 그로부터 시작한 <천안함 프로젝트>는 2013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에 이어 개봉까지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시점상 그로부터 시작한다 할 수 있는 <국정교과서>도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말하자면 천안함 이전 극영화를 준비하던 백승우 감독은 무려 지난 8년 동안 숨 가쁘게 정치다큐멘터리에만 매달려왔다. 그가 이제 어떤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올지 지켜보고 싶다.

<버블 패밀리>는 88올림픽을 시작으로 IMF를 거쳐 잠실 롯데월드가 지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동산에 관한 한 매번 지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슬픈 초상이다. 마민지 감독 가족의 사연이 중산층의 신화가 붕괴되어가는 과정과 맞물린다. 지난해 #영화계_내_성폭력 6번째 ‘여성 독립영화 감독’ 대담에 김동명, 김보라, 조세영 감독과 함께했던 마민지 감독의 첫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당시 그녀는 대담에서 ‘남성들만 있는 공간에 들어가 젊은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고민을 토로했다. 혼자 작업할 때 계속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정에 더해, 젊은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은 언제나 ‘감독’이 아닌 ‘아가씨’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어쩌면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의 작품들 중에 <버블 패밀리>처럼 사적인 다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전주에서 수많은 영화계 지망생들을 만나는 가운데 이한빛 PD의 사망 소식이 겹쳐져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사실 한 영화 끝나고 다음 영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말하자면 영화 작업 자체가 지속 가능한 고용이 쉽지 않기에 영화 연출부 혹은 장편 데뷔를 꿈꾸다 방송국 드라마 제작현장으로 가는 젊은 친구들을 많이 봤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어쨌건 다들 바쁜 가운데 틈틈이 시나리오도 쓰고 영화도 챙겨보며 살고 있었다. 이주현 기자가 쓴 기사에서 언급되듯,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이한빛 PD의 죽음과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넘어 ‘내 작품’이라는 하나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미래의 감독들이었다.

그나마 우울한 기분을 달래준 것은 올해 백상예술대상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성별, 성정체성, 성적 지향, 이런 것 가지고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할 때였다. 그는 지난해 말 <씨네21> ‘올해의 감독’으로 뽑혔을 때도 “최근 영화계 성차별을 포함한 여성 혐오의 현실에 대해 남성으로서, 감독으로서, 비교적 고참 감독으로서, 그리고 제작자로서 사과한다. 이런 현실에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성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잡지 인터뷰에 앞서 청룡영화상에서 혹시 상을 받게되면 말하려고 준비했던 것이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 지면을 빌렸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수상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제때 준비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5월 9일 꼭 투표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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