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빵과 장미
김혜리 2017-05-03

※<극장판 또봇: 로봇군단의 습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뒤죽박죽>

배우 티모시 스폴을 돌아보는 행사를 준비하느라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들을 복습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마이크 리 영화 최다 캐스팅 배우인 레슬리 맨빌의 위용에 압도당했다. <세상의 모든 계절>(2010)의 처절하게 외로운 메리 역으로 비로소 해외 관객의 머리에 이름을 새겼지만 그전에도, 후에도 맨빌의 연기는 예외없이 경탄스럽다. <비밀과 거짓말>의 사회복지사, <전부 아니면 무>의 슈퍼마켓 계산원, <미스터 터너>의 19세기 여성 과학자, <뒤죽박죽>의 극작가 부인 등 천차만별 비중과 성격의 역할 속에서 맨빌은 동일 배우임을 알아보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 스펙트럼이 외모의 굉장한 변형이나 기발한 매너의 발명 없이 완성된다. 조용히 눈부신 배우다.

04/22

토요일의 언론 시사회는 오랜만이고, 다같이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며 시작한 영화는 평생 처음이다. 오늘의 영화는 <극장판 또봇: 로봇군단의 습격>(이하 <로봇군단의 습격>)이다. 2015년 <바이클론즈> 기획 기사를 위한 인터뷰에서 이달, 고동우 감독으로부터 제작 소식을 접한 이래 <또봇>의 팬으로서 고대해온 애니메이션 제작사 레트로봇의 첫 극장용 장편이다. 예상대로 객석에는 초대받은 어린이 관객이 함께했다. 하지만 극장 안에 출렁이는 설렘의 출처는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요! 한번 봤는데도 떨리네요.” “두리 역 성우님은 무대인사 안 오셨나 봐?” “님은 두리 같은 타입 좋아하세요?” “휴지 준비하셔야 돼요.” 소곤대는 이야기의 내용과 개성 만점의 차림새로 보아 레트로봇의 애니메이터로 짐작되는 어른들도 최초 관객 반응을 앞두고 흥분을 억누르고 있었다. 상영 전 무대 인사에 나선 이달 감독의 소감은 평범하지만 묵직했다. “컴퓨터로 예쁜 그림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픽사의 <토이 스토리>가 같은 도구로 스토리를 짓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보고 결심한 후 여기까지 오는 데에 20년이 걸렸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재미있으셨다면…”이라고 감독의 말이 이어졌을 때 내가 예상한 부탁은 “입소문 많이 내주십시오”였지만 이달 감독은 “레트로봇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세요”라고 인사를 맺었다. 다른 염려 어린 당부도 있었다. “어린이 여러분, 영화를 보다 나쁜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좋은 사람들이 패배하는 장면이 있더라도 울거나 극장을 뛰쳐 나가지 말고 꼭 끝까지 기다려주세요.” 어린이는 아니지만 인생의 교훈으로도 손색없는 말씀이라고 내심 깊이 끄덕이며 <로봇군단의 습격>을 영접했다.

<로봇군단의 습격>은 슈퍼히어로영화의 서사 공식을 대체로 따르는 모험담이지만, TV판 <또봇>과 <바이클론즈>를 통해 확립된 레트로봇의 미덕인 한국의 지역성, 제작진의 철학을 담은 메시지도 포기하지 않았다. 극장판의 배경은 로봇공학자 차도운(하룡이)과 권리모(신경선)에게 연구 기금을 제안한 재단이 자리한 제주도. 밤낮없이 바쁜 아빠와 그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출장길에 따라나선 차하나와 차두리 그리고 권세모(장하영)는, 재단 미팅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아빠들을 서운해하다가 음모를 감지하고 또봇X, Y, Z와 함께 구출작전에 나선다. 아빠를 구하는 미션은 <또봇> 1기의 재연인 셈이다. 여기에 <또봇> 17기에 소개된 태권 또봇K의 전사(前史), 즉 기원 스토리가 겹친다. 두 가족이 제주에서 머무는 숙소가 바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국 관장(안효민)의 집이고, 떠들썩한 관장의 내성적인 아들 수호(윤민영)가 K의 파일럿으로서 숙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로봇군단의 습격>이 관객에게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명제는 효율 지상주의다. 쓸모와 능률을 숭배하는, 재단 이사장의 아들 설모리가 의지와 감정을 삭제한 사람의 뇌를 (16핀 케이블로 연결해서) 로봇(MM 레이버)의 CPU로 사용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도운과 리모를 납치하면서 제주도는 휴머니티의 정의(!)를 둘러싼 싸움터가 된다(아무래도 모리라는 이름은, 노동을 ‘몰이’한다는 의미의 작명이 아닌가 싶다). <또봇>과 <바이클론즈>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김미혜 작가가 제기하는 현재적인 문제는 성인들도 멈추어 생각하게 만든다. 도입부에 제시되는 설모리의 논리는 일부 솔깃한 구석이 있다. 또봇이 막은 대형 전철사고를 보며 그는 “로봇이 해결해주는 바람에 책임 소재가 흐지부지해지고 개인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지고 있다. 또봇을 지원할 돈으로 각자 주 120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웨어러블(wearable) 기계 장치를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원인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말은 옳되 복지는 국민을 나태하고 경쟁력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오만과 무지는 위험하다. 수습되지 못한 재난이 교통사고 당사자 책임이라는 말도 얼핏 떠오른다. 물론 효율 극대화의 드라이브에는 천장이 없다. MM 레이버의 일 효율이 설모리가 목표하는 주 140시간에 달하려면 로봇이 인간을 돕는 경지에서는 불가능하고 거꾸로 사람이 로봇의 부품이 돼야 한다. 능률 수치를 좌우하는 스피드와 힘은 로봇에 속하고 인간에 속한 본능적 반사와 섬세함은 단지 속도를 더욱 높이고 문제 해결 과정을 매끄럽게 하는 데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악역 설모리도 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 없다”고 타이르는 아버지 이사장에게 그가 던지는 반박은 자못 예리하다. “젊었을 때는 바쁘다고 나다니며 내게도 노력만 강조하더니 나이 먹었다고 딴소리를 해요?”

그런가 하면 두 아빠가 일하러 간 사이 국 관장을 따라 서울 소년들이 제주 풍물을 숨가쁘게 관광하는 시퀀스는, 휴식마저 효율적으로 완수해야 성이 차는 조바심을 스케치함으로써 피로사회를 반성하는 메인 주제를 받쳐준다. 요컨대 한줄도 허투루 쓰지 않은 대사와 깔끔한 스토리, 팬에게 익숙한 캐릭터의 보존, 웃음과 의미의 적당한 배합이 <로봇군단의 습격>의 장점이다. 거기에 비해 제주라는 배경의 변화를 제외하면 큰 스크린을 장악하는 독창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신은 부족하다. 전철 사고 시퀀스나 기억의 방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장면도 과거 영화들의 아이디어 안에 머문다.

이 영화에서 열쇠 대사를 한줄 고르라면 아무래도 “아빠는 로봇보다 못해요!”일 것이다. 가족 드라마의 측면에서 보면 <로봇군단의 습격>은 집 밖에서 일하느라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이입한 이야기다. <인터스텔라> 개봉 당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를 찍느라 1년에 몇달도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본인이 자녀에게 느끼는 감정을 담았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로봇군단의 습격>도 작업량 과중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종사하는 부모로서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시간에 아빠가 하는 일도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자녀들에게 보내는 두 감독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다만 여성 캐릭터가 약하다는 <또봇>의 단점은 극장판도 극복하지 못했다. 원래 편부 가정에서 생활하는 하나, 두리, 세모에다 수호의 엄마까지 출장 중으로 설정됐고 재단 이사장도 남성이라 설모리의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 인물의 명맥을 유지했던 TV판의 딩요와 오 순경은 이 이야기에서 설 자리가 없다. 대신 구조자로 등장하는 제주도 아가씨가 유일한 개성과 액션을 갖춘 여성 캐릭터다. 아쉬운 나머지 또봇W 기종인 나의 경차와 같이 엔진오일이나 한잔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난 취재에서 같은 맥락의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변신로봇 완구의 주요 소비자가 남자 어린이라는 사실이 이 불균형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들은 바 있다. 물론 나는 훌륭한 한국 스토리텔러들이 만드는 <또봇> 시리즈가 극장에서도 거듭되며 완구로부터 재정적 자립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로 젠더에 대한 관점도 보완되는 날을 상상한다.

<런던 프라이드>

좋아요

이중의 절정

‘광산과 변태’(Pits and Perverts). 1984년 영국의 성소수자와 파업 광업 노동자들은, 두 집단의 연대를 비웃은 신문의 이 헤드라인을 곧바로 후원 모금 콘서트 제목으로 전유해버린다. <런던 프라이드>는, 콘서트의 밤 웨일스 광산촌 노조 대변인(패디 콘시딘)이 무대에서 “때가 오면 우리도 당신들의 배지를 가슴에 달 것입니다”라고 LGBT 커뮤니티에 결연한 연대를 선포하는 순간, 청중 가운데 막 성년이 된 게이 청년 조(조지 매케이)가 그날 만난 남자와 나누는 첫 키스를 겹쳐 보여준다. 앞서 광산촌의 여성 노동자들이 “우리는 빵을 위해, 동시에 장미를 위해 투쟁한다”는 가사의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과 짝을 이루는 대목으로 볼 수도 있다. 생존과 행복추구는 공히 기본권이며, 더불어 어깨를 겯고 행진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