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공산주의는 둘 다 세계화에 대한 응답이었다.” 예일대학교 사학과 교수인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은 정치 질서가 위태로운 21세기 초, 20세기로부터 배우는 교훈 20가지를 담고 있다. 20가지의 교훈과 그 설명을 짧고 묵직하게 담아냈는데, 특히 나치즘이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켰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현재의 서구 사회를 진단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전한다.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폭정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지 않는다는 단언으로 시작한 뒤 첫 번째 교훈으로 ‘미리 복종하지 말라’를 꺼낸다. ‘예측 복종’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1938년 초,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겠다고 위협하고 오스트리아 총리가 그에 굴복한 뒤 벌어졌다. 오스트리아 나치는 유대인들을 붙잡아 거리에 새겨진 독립국 오스트리아의 상징을 지우게 했다. 나치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유대인 재산 목록을 가지고 있던 나치는 물론 보통 사람들도 절도에 가담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그 유명한 전기 충격 실험 역시 ‘예측 복종’의 한 예라고 이 책은 설명하는데, “밀그램은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의 새로운 규칙을 놀랍도록 잘 받아들인다는 걸 파악했다. 새로운 권위자로부터 그렇게 하라고 지시받기만 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놀라울 만큼 기꺼이 타인들을 해하고 죽일 용의가 있었다.” 밀그램의 실험은 1961년에 있었는데, 이 시기는 예루살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맡은 역할에 대한 재판을 받던 때였다. 밀그램의 말. “나는 너무도 많은 복종을 목격했기에 독일까지 가서 실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첫 번째 교훈과 연계해봐야 할 것이 ‘직업윤리를 명심하라’다. “재판 없는 처형은 없다는 규범을 법률가들이 따랐다면, 동의 없는 수술은 없다는 규정을 의사들이 받아들였다면, 노예 노동 금지를 기업가들이 지지했다면, 살인과 관련된 서류 작업의 처리를 관료들이 거부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역사적 비극은 비단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뿐은 아니다.
가짜 뉴스의 시대에 명심해야 할 것은 ‘직접 조사하라’다. 그 앞 ‘진실을 믿어라’와 맥락이 닿는데, 진실은 네 가지 방식으로 소멸한다는 빅토르 클렘퍼러 같은 전체주의 평자들의 말을 소개한다. 1. 검증 가능한 현실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 날조와 거짓말을 사실인 양 제시한다. 2. 샤머니즘적 주문. 경쟁자들에게 정형화된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끊임없는 반복에 의존한다. 3. 마술적 사고. 공공연히 모순을 끌어안는다. 세금을 덜 걷고 국가 채무를 없애고, 사회 정책에 드는 돈을 늘리겠다는 트럼프의 약속. 4. 부적절한 믿음.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내가 당신들의 대변자다” 같은 말. 이런 네 가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직접 조사하라’는 교훈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믿을 만한 인쇄매체들을 지키는 법에 대한 글이다. 인쇄 매체를 구독해 탐사보도를 지원하고, 긴 기사를 더 많이 읽고,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하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과 나눈 이야기에 책임을 지라고. “우리는 배관공이나 정비사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뉴스는 공짜로 보기를 원한다. (중략) 왜 우리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고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려고 하는가? 대가를 지불해야만 얻는 것이 있다.”
<폭정>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다. 분단국가에 살면서 안보위기에 대한 말을 선거철마다 듣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가장 지적인 나치였던 법률 이론가 카를 슈미트는 파시즘 거버넌스의 본질을 명료한 언어로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규칙을 파괴하는 방법은 ‘예외’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예외를 받아들이고 나면 영구적인 비상사태가 온다. 시민들은 진짜 자유와 가짜 안전을 맞바꾼다. 자유를 대가로 치러야만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하는 자들은 자유도 안전도 줄 생각이 없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선거철에 특히 자주 보이는 단어, 표현, 그리고 주장에 대한 독법과 그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료하고 단호하게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