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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영진위의 ‘조직개편안’ 졸속 추진과 ‘영화진흥사업 지원체계 개선안’의 ‘의혹’을 말한다

2017년 2월 7일 영화인 1052명 시국선언으로 시작된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행동’(이하 영화인행동)은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 사퇴와 영진위 사업 보이콧을 요구했다. 3월 13일로 예정된 영화인단체 간담회도 전격 취소되었다. 영화인행동과 위원장의 사퇴와 비상대책기구 설립 합의 논란이 빚어낸 결과다. 간담회 직전 위원회 내부에서 의견수렴 과정이라는 이유로 각 부서에 ‘영화진흥사업 지원체계 개선(안)’(이하 개선안)이 돌면서 뒤늦게 개선안이 영화계에 알려졌다. 이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부산국제영화제 여론조작 대필사건’이 밝혀진 다음날인 3월 24일, 충무로 KOFIC 라운지에서 영진위 제3차 임시위원회의가 열렸다. 주요 안건으로 ‘조직개편안’을 심의 의결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3월 30일 제4차 위원회의가 다시 열렸다. 두 차례 위원회의에도 불구하고 위원들의 반대로 개편안은 부결되었다.

개선안의 내용과 조직개편안 강행 소식을 접했을 때 최근 영화계에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업의 타당성은 물론이거니와 수립 과정도 의문이다. 두 사업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개선안 핵심사항은 영진위가 수행해온 주요 핵심 진흥사업을 영화단체 공모를 통한 ‘위탁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개편안의 골자는 ‘미래신사업개발팀’을 ‘미래신사업팀’으로, 신사업 개발 업무를 지원이나 수행 업무로 바꾼 것이다.

이번 개선안과 조직개편안에 눈에 띄는 문제점이 있다. 첫째, 위원장 퇴진운동과 대선 직후 예견되는 권력 교체기가 맞물린 부적절한 시기에 두 사업이 졸속 추진되었다. 둘째, 사업추진 과정의 상당 부분이 투명하지 않게 진행되었다. 영화계와 충분한 협의로 도출해야 할 주요 사안들이지만 시대착오적 밀실행정의 민낯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개선안은 깊이 우려된다. 과거 영화진흥공사 시절, 약 10곳의 영화단체와 나눠 먹기식으로 횡행했던 그때의 예산구조가 떠오른다. 다시금 과거의 나눠 먹기식 행태로 퇴행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번 핵심 위탁사업은 비용 규모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심사의 공정성·투명성·합리성이 엄격히 담보되어야 한다. 영화단체로의 위탁은 영화계와 영화인 사이의 갈등과 혼란, 분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영진위의 존립 기반 자체를 부정하고, 그 뿌리를 허무는 시도와 다름없는 이번 개선안은 영화계 전반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진위가 이런 개선안을 자체적으로 도출했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누구와 협의를 해 이런 사업안을 만들었는지 영진위는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는 개선안이 영진위 미래전략본부에서 작성·배포되었다는 사실 외에 그 실체와 사실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개선안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주변 정황을 면밀히 검토하고자 한다. 다음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합리적 추론에 근거한 내용임을 밝힌다.

01 4개의 핵심 위탁사업은 어떻게 편성되었을까?

언급했듯이 개선안의 핵심 사안은 영화단체로의 위탁사업이다. 이번 7개의 위탁사업 중 사업비 규모(17년 기준)나 성격 면에서 4개 핵심 사업은 ‘기획개발지원사업(8억5천만원)·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10억8천만원)·로케이션인센티브지원사업(예정사업 추정)·지역영화기획개발비 및 제작지원사업(4억원, 신규)’이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들 핵심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단체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하 PGK),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한국영상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영진위의 핵심 위탁사업의 결정과 각 단체간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02 영화인행동은 왜 개선안에 항의하지 않는가?

3월 20일경 필자는 소속 단체를 통해 개선안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와 관련하여 영진위에 민원 및 진상조사위원회 형태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에 영화인행동에선 논의하겠다고 답했지만, 직후에 열린 영화인행동 회의에서 개선안과 관련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한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회의에 참석한 다른 단체 회원은 당시 개선안의 존재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지금까지도 영화인행동이 영진위에 제기한 개선안과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항의하거나 민원을 넣거나 제안을 할 기미가 엿보이지 않는다. 필자로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03 영화계가 개선안에 대해 그토록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인행동은 블랙리스트 사건 의혹 진상규명과 위원장 퇴진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도종환 의원에 의해 여론조작 대필사건이 사실로 밝혀졌다. 영화계 내부의 파급이 클 수밖에 없는 개선안 비밀문건이 위원회 내부에서 추진됐다. 그동안 김세훈 위원장은 국회에서조차 자신에 대한 의혹이라고 전면 부정하였지만, 여론조작 대필사건의 비위사실이 드러난 만큼 위원장은 즉각 사퇴해야 하며 영화계는 사퇴 요구의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독협은 3월 28일에 여론조작 대필사건과 관련한 위원장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주목할 점은 PGK와 한독협이 중심이 된 영화인행동의 발표가 아니다. 영화인행동을 이끌던 한축인 PGK가 빠진 한독협의 단독 발표이다. 유독 개선안에 대해 영화인행동을 포함한 영화계의 침묵은 길고 무겁기만 하다. 여론조작 대필사건이 정치적 사안이라면 개선안은 영화정책 농단 행위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는 영화계의 태도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04 누구에 의한 ‘기안’이며 어떻게 ‘논의’된 개선안인가?

영화계 어느 단체도 개선안 문건이 영화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영진위 내부에서 ‘소수’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개선안의 내용과 공표 시기·형식적 의견수렴 과정·급속한 내부결재 진행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영화계와 논의해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진위가 스스로 존립 기반에 반하는 개선안을 만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몰랐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개선안은 문체부-영진위-영화계 공동작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영진위 단독으로 진행되었다고 해도 큰 문제다. 영진위 노조는 3월 16일 성명서에서 밀실행정을 규탄하고 개선안의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만약 소수 영화인과의 논의가 이뤄졌다면 이 사안은 매우 ‘심각’하다. 사실이라면, 이것은 영화 정책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독점하려는 시도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극복해야 할 구시대적 방식이자 폐단이다. 정책 농단에 가까운 이런 행위들은 영화계 공공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위험하다. 최근 영화인행동과 위원장의 합의 의혹, 상호협의 없이 구성되기 어려운 개선안과 조직개편안 강행 시도는 몇몇 영화계 인사와 정책 관계자의 공조 ‘의혹’을 단순 의혹만으로 그치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원장이 합의 논란, 개선안 의혹, 직제 개편안 강행 추진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몇몇 영화계 소수 인사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위원장은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계의 영진위 보이콧이라는 정치행위 이면에 정책 농단이 지속되다니 아이러니하다. 영화 정책의 근간을 흔들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소수 영화인들의 자성과 영화계를 위한 김세훈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