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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윤식당> 윤여정, 나영석 PD와의 대화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7-04-19

꿈같은 이야기가 슬로 라이프 예능이 되다

윤여정(왼쪽). 나영석(오른쪽).

사장 윤여정을 비롯해 정유미, 이서진, 신구. 나영석 PD는 이들을 이끌고, 사람들이 이들을 유명 배우가 아닌 그저 ‘불고기’라는 한국 음식을 하는 초보 식당 운영자로 여길 수 있는 발리의 외딴섬으로 향했다. 손님이 많아도, 없어도 늘 전전긍긍하는 ‘유사가족’이 꾸리는 tvN <윤식당>은 동시간대 최고인 시청률 11.3%를 기록하며 프로그램만큼은 (영업실적 상관없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일단 나영석 PD는 영화 <카모메 식당>이 제시한 슬로 라이프를 그리고 발리로 갔지만, 영업 시작 이후 생활이 된 ‘윤 사장’의 경영 마인드가 더해지면서 윤식당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나영석 PD는 편집하느라 지금 제일 바쁜 시기를 보내는 중. 지난 2월 발리의 롬복섬에서 돌아온 후 배우 윤여정과 나영석 PD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2013년 <꽃보다 누나>(이하 <꽃누나>)에서부터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을 천천히 풀어본다.

-프로그램 타이틀도 <윤식당>, 섬에서 오픈한 식당도 ‘윤식당’이에요. 왜 윤식당이었나요. 요리라는 서브 재료가 있는데 요리 잘하는 사람은 한명도 구성원으로 참여하지 않았어요.

=윤여정_ 나한테 그러더라고. <카모메 식당> 같은 걸 한번 해보고 싶다고.

=나영석_ <카모메 식당> 보면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낯선 곳에 가서 식당 하면서 서로 기대고 살잖아요. 요리를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거기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니까. 젊은 친구들이 가면 재밌을 수 있지만 애초 컨셉이 달랐던 거죠.

윤여정_ 그래 차승원 이런 친구들이 가야지. (웃음)

나영석_ 거기도 젊지 않아요. (웃음) 은퇴한 어느 가족이 퇴직금 3억원 들고 해외에 가서, 다들 서툴지만 기대서 사는 느낌으로 가면 좋겠다. ‘꽃할배’들(<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 출연배우들)은 함께 지내보니 부엌을 무서워하시고, 아예 하실 만한 분이 없으시고. 선생님으로 가야겠다 싶더라고요. 핵심은 ‘윤여정’이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나 지금 미국 가면 한달 있다 올 거야” 하셨죠. 일단 잠깐 만나봬요, 했는데 그때까지 정해진게 ‘식당’밖에 없었어요. “사장 하면 좋은 거니 일단 하는 걸로 하세요. 다녀오실 동안 저희가 발전시켜놓을 게요” 한 거예요. 요리를 잘할 필요는 없다고 봤어요. 선생님은 약 40년 전에 요리를 하셨었고, <삼시세끼> 때도 몇번 모셔서 보니, 깍두기도 담가주시고 만둣국도 끓여주시고 그랬는데, 잘하시지는 못하시지만 그 정도면 무리는 없다고 봤어요. 물론 요리를 해야 한다는 걸 아시고는 엄청 안 한다고 하셨지만요. (웃음)

윤여정_ 나는 누구 꾐에 참 잘 빠지는 거 같아. 이 사람들이 좋은 게, 안 된다는 거 막 해달라고 하지도 않고, 스케줄 억지로 맞추지도 않고 그런 스타일들이야. 그러고 미국에 있는데 그 사이에 캐스팅 기사가 먼저 나갔지.

나영석_ 처음엔 선생님이랑 친한 조합을, 요리도 잘하는 이를 떠올려봤는데, 그렇게 되면 선생님은 요리도 할 필요가 없게 되니 직접 일할 수 있게, 캐스팅 조합을 다르게 가야겠다 한거죠. 그러면서 유미씨가 들어왔죠. 그런데 기사가 먼저 난 거예요. 그때 전화드려서 “선생님 맞아요. 이렇게 가는 거” 했어요.

윤여정_ 그때까지 난 누구랑 가는지도 몰랐고.

나영석_ 그때 듣고 기분 좋아하셨어요.

윤여정_ 그 전화 받았을 때 마침 술을 마시고 있었거든. 그래서 기분이 좋더라고. (웃음)

나영석_ 이런 프로그램은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서로에 대한 호감이 있어야 작업을 하지. 서로 좋게 만나도 등 돌리는 게 이런 프로그램이에요. 서로 부대끼면서 살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저는 선생님과 오래 봐왔고. 서진이 형과 선생님도 작업을 했어요. 유미씨는 잘 몰랐지만 지난해 선생님 50주년 파티 때 와서 선생님 옆자리에 있는 걸 보니 친하지는 않아도 서로 호감은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림이 딱 그려졌어요. 이렇게 엮어서 가면 되겠다. 신구 선생님께는 이 프로그램 이름이 윤식당이라 같이 들어오시면 주인공이 바뀔 수 있으니 이틀만 늦게 들어오세요 하고 말씀을 드린 거죠.

-방송 반응과 별개로 냉정하게 윤여정 선생님만 보죠. (웃음) 방송 나가고 “윰블리만 떴지, 난 ‘봉두난발’로 나왔어” 하셨어요. (웃음) 머리고 옷이고 신경 쓸 새 없이 말 그대로 일만 하시던데요.

나영석_ 이분도 어쩔 수 없이 개발과 산업화를 거친 세대시구나 했죠. (웃음) 먹고사는 데 대한 집착이 정말 크시더라고요. 인형 눈알 박기를 해야 하면 당장 오늘 100개는 하실 분이더라고요.

윤여정_ 산업화까지는 너무 나간 거고. (웃음) 내 성격이 뭘 해야 한다, 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안 보여. 내가 우리 둘째 아들 어릴 때 숙제 안 한다고 야단쳤더니 옆에 있던 성우 송도순이 “언니는 숙제 해갔어?” 하더라고. 난 숙제 안 해간 적 없어. 공부는 못할 수 있지. 숙제는 해가야 하는거 아니야.

나영석_ 원래 ‘아유 오늘은 장사가 안 됐지만, 뭐 어떠니. 서진아 남은 불고기 먹으면서 수영이나 하자꾸나’ 이런 풍경 정도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선생님의 숙제 정신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제가 아는 선생님은 투덜대면서도 할 건 한다, 이런 캐릭터였는데 너무 몰입을 해서, 장사 안 되면 큰일날 것처럼 그러시니까.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풀려도 되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현장에서는 이 부분을 스토리로 풀 수 있을까 확신이 없죠. 그런데 예능에서는 그런 걸 캐릭터라고 하거든요. 어떤 사람의 유독 도드라진 부분. 그 부분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리얼하게 다가갔구나 싶어요. 현실은 그런 거잖아요. 오픈을 했는데 손님이 안 오면 신경 쓰이고, 내가 만든 음식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초조하고. <카모메 식당>은 손님이 안 와도 주인이 얼마나 위엄 있는지 몰라요. 선생님처럼 “아우 손님이 안 와, 어떡해” 이러지 않는다고요. 선생님 성격이 그러시니 우리가 그렇게 틀을 잡아가는 거죠. 선생님한테 고마운 지점도 그 부분이고요. 이분은 하는 동안 ‘내가 이렇게 보여야지’ 하고 따지고 그런게 없으세요. 일이 끝나고 나면 그제야 머리고 장갑이고 보이시는 거지.

윤여정.

-‘꽃보다’ 시리즈 때 해외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로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는 위생 문제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아요. (웃음)

윤여정_ 정말 이 자리에서 그 고무장갑 계속 갈아 끼는 거라고 좀 밝혀졌으면 좋겠어. (웃음) 내가 지문이 거의 없어. 과학자한테 물어보니까 늙어서 피부가 얇아지고 기름기가 빠져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 맨손으로 일을 다 하고 그러면 터지고 그래서 장갑을 낀 건데. 내 친구들이 방송보고 ‘장갑을 좀 벗지. 뭘 잠깐을 못 참아서 그러냐’고 엄청 핀잔을 주더라고.

나영석_ 딴 건 몰라도 선생님이 위생은 정말 예민하시잖아요.

윤여정_ 나영석이 언젠가 죽기 전에 또 하자면 모르겠지만, 이번에 결심했어. 나는 예능을 안 나가기로. 내가 등이 굽었다는 걸 알거든. 그래서 연기할 때는 슛하면 똑바로 펴거든. 그런데 이번엔 정신을 잃었어. 불고기를 해야 하는데 눈은 안 보이고, 그러니 등은 점점 굽지, 머리는 흘러내리지. 연기는 ‘연기가 안 좋으셨습니다’ 하면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잘하게 노력하는 건데. 그런데 이건 내가 나가잖아 내가. 숨길 수가 없는 거야. 이번에 아주 예능은 끝냈어. (웃음)

나영석_ 전 열중하시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 <꽃보다 청춘> 때 맨몸으로 멤버들을 떠나게 만드는 것처럼 시리즈마다 긴장을 만들어줄 요소들이 필요해요. <윤식당>은 철거가 변수였어요. ‘나영석이 이번에 이런 꼼수를 쓰네’라는 부정적 시선도 없지 않았어요.

나영석_ 그거야말로 사고였어요. 댓글로 누가, ‘짜고 한 거면 나영석이 사흘은 하고 부쉈을 거다’ 하더라고요. 그러면 전·후반으로 나눠 ‘이제 힘내고 다시 하자’ 이런 드라마 만들기가 딱 좋거든요. 그런데 정말 방송 나간 하루도 못할 뻔했어요. 거기 들어간 노력과 비용이 얼만데. 철거를 당할 걸 알고 한달씩이나 꾸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전체 기간이 12일이었는데, 오가는 데 하루 빼고, 집을 부수네 마네 이야기 오가고 공사한 게 이틀이니, 실제 촬영한 건 8일이 안 됐어요. 철거는 가을쯤이라 우리 촬영과는 전혀 상관없었는데, 갑자기 촬영 며칠 전에 철거팀이 들어온 거예요. 중간에 행정적인 게 뭐가 바뀌었나봐요.

윤여정_ 내 친구가 그러더라고. “그거 다 알았지! (웃음)” 난 불고기하고 있었는데, 허물어지면 무슨 수가 있을까 싶더라고. 마침 하루 영업해보니 에어컨도 안 나오는 데에 서서 이게 장난이 아니더라고. <신혼일기>를 연장하고, 우린 집에 가자고 그러겠구나 싶었는데, 어딜 가자고 그러더라고. 가보니 영업을 오래 안 한 슈퍼마켓이야. 거길 개조해서 한다는데 정말 심란하더라고. 그 미술감독 정말 24시간 고생고생 작업했어.

-철거뿐만 아니라 식당 메뉴 개발, 운영, 역할 분담 등 진짜 막 오픈한 식당을 보는 듯한 긴장감이, 이 드라마를 내 일처럼 흥미진진하게 좇아가게 만들어요.

나영석_ 저희가 식당이 있으면 옆이나 근처 공간에 숨어 있거든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까. 그런데 손님이 들어오면 농담이 아니라 가슴이 쿵쾅쿵쾅거려가지고 못 참겠더라고요. 못 보겠어서 선생님 있는 주방으로 가면, 이분도 넋이 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몇번을 손님이 오면 무서워서 딴 데 가 있었어요. 카톡으로, “먹었어? 컴플레인 안 해? 맛있대?” 묻고 “분위기 좋아요” 하면 그제야 안심해요. 돈받고 하니 그 긴장감이 실제로 전달이 되나봐요. 이거 정말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한번은 테이블이 다 찬 적 있는데. 그 시간에 레스토랑 앞 바다에 스노클링 갔었어요.

윤여정_ 아유 못됐다. 나는 감쪽같이 몰랐네.

나영석_ 불안해서 못 보겠더라고요. 30분쯤 갔다오니 열이 식더라고요. 어차피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선생님이 음식 만드는 걸 도와드릴 수도 없고. 긴장은 되고. (웃음)

-식당 멤버뿐만 아니라 이번엔 식당에 온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이 만드는 드라마와 캐릭터가 또 하나의 스토리에 일조하고 있는데요, 사전 카메라 공지 외에 이후에도 인터뷰를 하거나 했나요.

나영석_ 프로그램은 생물이에요. 하면서도 모르고. 찍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가 갔다와서 편집하면서 또 알게 돼요. 아, 우리가 찍은 게 이런 거였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계획을 세워서 그림을 그리고 간다고 생각하는데. 저희도 뭔지 확실히 모르고 시작을 하는 거예요. 저도 아는 이야기까지만 선생님한테 드리는 거고 선생님도 아시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가시는 거죠. 이 프로젝트는 음식을 파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을 받아들이는 외국인들의 반응도 중요하다는 것까지는 있었죠.

윤여정_ 분명히 그런 게 있지. 우리, 뒷담화 좋아하잖아. (웃음) 그들의 반응이 진짜 궁금한거지.

나영석_ 물론 선이라는 게 있어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일반인과의 접점이 있을 때 저희도 되게 조심스러워요. 처음부터 ‘이 식당은 현재 카메라로 찍고 있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그러면 안 돼요. 들어오는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나올 요량으로 오거나 아예 안 들어오거나 그렇게 되거든요. 카메라가 숨어 있으면 몰래카메라가 되고, 그렇다고 또 카메라 수십대가 나오면 거기서 밥을 어떻게 먹겠어요. 그 선을 잘 타야 해요. 뭔가 찍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고. 설명을 보니 내가 밥먹는 데 불편하지는 않고. 모두가 촬영을 하는 중인 건 인지하고 있지만 먹다보면 까먹을 정도의 세팅을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윤여정_ 그들이 모두 출연자지. 그 출연자가 큰일을 했더라. 찾아서 출연료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특히 하나 먹고 추가로 더 시켜먹은 손님들. (웃음)

나영석_ 정말 장사 안 될 때 찾아온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편집하면서는 번역비가 엄청 많이 들었어요. 이게 어느 나라 말인지 몰라서 한참 애먹고. 북유럽 사람들이 많아서 일단 스웨덴어를 하는 친구를 불러 영어로 번역하고, 다시 또 한국어로 바꾸고 그랬어요.

-‘배우 윤여정’은 주로 홍상수, 임상수, 이재용 감독처럼 한번 했던 분들과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기로 유명해요. 예능계에선 <꽃누나> <삼시세끼> 특별출연 등으로 나영석 PD와 그런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데, 두분은 서로에게 어떤 대상인가요.

나영석_ 선생님은 편애가 있으세요. 선악을 뛰어넘어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요. 그게 좋은 사람일 때도 있고 나쁜 사람일 때도 있지만, 호기심이 있으면 알고 싶어 하시고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세요. 저는 다행히 좋은 쪽에 얻어걸린 거고. (웃음)

윤여정_ 노골적이라고 하지 말고 ‘솔직히 표현하세요’가 낫잖아. 어휘 선택을 잘해야지. (웃음)

나영석_ 처음 알게 된 건 <꽃누나> 때예요. 섭외 전화를 드리는데 어르신이고 대배우이고 하니 전화로 이야기해도 되나, 화내시는 거 아닌가 그런 걱정을 했죠. 그게 벌써 3~4년 됐는데 이후에도 그냥 하릴없이 만나서 수다떨고 밥먹고 그랬거든요.

윤여정_ 그전에 내가 워낙에 <해피 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 팬이었어. 원래는 <1박2일>을 안 보다가 어느 날 팬이 됐는데. 내가 목소리가 안 좋아서 목소리 좋은 사람을 워낙에 좋아해. 반대로 목소리가 나쁜 사람을 내가 싫어해. 근데 거기 다 떠들잖아. 그러다 이승기 나오고 그럴 때 보기 시작했어. 너무 재밌더라고. 저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낼까. 나영석, 이명한, 김대주…. 얼마나 봤으면 그 사람들을 다 알았어. 그래서 내가 최화정한테 고민을 이야기했어. “내가 <1박2일>을 너무 보는 것 같은데, 시간까지 맞춰서 보는데 좀 흉한 거 아니니” 그러니까 “아니야 선생님 나도 웬만한 남자친구 만나는 것보다 물 말아서 김치랑 먹으면서 그거 보는 게 나아” 하더라고. 그랬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지. “내가 팬이에요” 했어, 바로. 그런 건 진심이니까.

나영석_ <꽃누나>는 어쨌든 <꽃할배>의 후속작이었고, 이 ‘식당’ 포맷은 선생님이 첫 주자가 된 거죠.

윤여정_ 사실 나는 누가 뭘 해보자고 한다고 솔깃해하진 않아. 늙었잖아 내가. 내가 강동원도 아니고 예능에는 안 나가, 그런 건 없지. 그런데 취향은 있겠지 내가. 나가고 싶은 데가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취향은 죽을 때까지 남아. 나영석은 내 취향이니까 남아 있지. 그냥 막 나서지 않고, 조용하고. 좋게 말하면 조신하고 차분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의뭉스럽지. (웃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와서 “선생님 힐링하러 한번 가요” 하면 나영석을 내가 좋아하니까 그냥 “어 그래 가자” 하는 거야. 그러다가 늪으로 들어가고. (웃음)

나영석_ 근데 전 거짓말은 안 했어요. 처음에는 진짜 그렇게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선생님, 경치 좋은 데 가셔서… 선생님이 영어도 잘하시는 것도 컸고…. 저희도 회의를 하다보면 계속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생각이 바뀌고 하잖아요. (웃음)

윤여정_ 영어 잘한다는 소리 좀 하지 마. 이번에 문법도 틀렸더라. 그것도 그래 영어도. 음식하고 있으면 밖에서 와서 “저쪽 앞에도 나가보세요. 가서 음식 어땠는지 물어보고 그러세요” 그래. 내가 내 인생을 왜 망쳤는지 알았어. 확실히 알았어.

나영석_ 이보다 더 잘하려면 저는 미국 사람이랑 일해야 해요. (웃음)

나영석.

-항상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을 예능의 세계로 영입하고 마치 <인간극장>급으로 거기서 그 사람의 인간적인 부분을 발견하게 하는데요. (웃음) 나 PD의 감식안으로 비호감이 대중적 호감으로 전환된 경우도 많아요. 특히 출연진이 배우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에요.

나영석_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떤 매체나 기사에 나오는 걸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잖아요. (박)보검이가 맨날 미담의 주인공이라고 언론에 나와도 그 사람을 직접 만나봐야 아는 거지 얘가 착하대, 그러니까 하자, 그런 식으로는 못해요. 물론 저는 보검이를 아니까 착한 애라는 걸 알지만요. 구혜선씨에게도 편견은 있었죠. 그런데 (안)재현이랑 <신서유기> 작업을 하면서 너무 괜찮은 아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면서 필터가 한번 벗겨지는 거예요. 마침 결혼 턱을 낸다고 만났는데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쁜 거예요. 배우와 많이 작업을 하는 건 이분들의 삶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예요. 배역으로만 노출이 되지, 자신의 이름으로는 노출되는 일이 많이 없어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희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재료인 거예요. 아무도 만지지 않은 그 사람의 인생을 저희가 갖다 쓸 수 있는 거예요. 정말 큰 거죠. 선생님의 성격이나 그런 것 중에는 몇몇 친한 사람에게는 보여주지만 대중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분명 있으실 텐데. 큰맘먹고 어쨌든 저랑 같이 작업을 해주셨던 거고. 그래서 저는 되게 신중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하려고 해요.

윤여정_ 나보고 호기심 많다고 하지만 이분도 호기심이 굉장히 많아. 프로젝트는 다음이고, 사람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 나영석을 보면, 출연자를 보고 ‘저런 사람이었어?’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있어. 이번에도 서로 취향이 맞아떨어지면 좋은 조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 조합을 잘 맞추는 것이 나영석팀의 핵심이야. 유미랑 나도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했고.

나영석_ 막상 방송에 나오면, 그 사람의 캐릭터라는 건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 전체예요. 지금까지 꽁꽁 숨기고 있었던 것, 굳이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싫었던 것을 감수하고 나온 거죠. 저는 그걸 잘 살리려고 노력하는 거죠. 얼토당토않은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포장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캐스팅할 때 굉장히 고심해요. 우리끼리 이걸 ‘사람을 들이는 일’이라고 하거든요. 다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좋은 점을 잘 살려서 호감가게 보일 수 있는 사람을 들이자 하거든요.

-힐링 열풍을 시작으로, 이제 삶의 방향성이 슬로 라이프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만재도에서 삼시세끼 밥하는 남자(<삼시세끼>), 강원도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사는 신혼부부(<신혼일기>), 그리고 지금의 <윤식당>까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결핍을 충족시켜줄 판타지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해왔는데요.

나영석_ <삼시세끼> <신혼일기>도 했는데, 이번엔 하면서도 걱정스러웠던 게 너무 판타지가 아닌가, 영화에 나올 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그러니까 예능이지. 아니면 다큐멘터리야’ 하고 밀어붙인 거죠. 물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해외에서 저렇게 하는 게 가능하냐, 현실성이 없다고. 그런데 시청자들도 알아요. 저게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이며 이루기 힘든 꿈인지 알지만 한번쯤은 꿈을 꾸시거든요. 섬에 놀러가서 여기서 나도 식당이나 하면서 살면 좋겠다. 이런 것 말이죠. 그걸 우리가 보여주는 것도 예능이니까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진짜 리얼을 해야지, 하지만 실제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판타지예요. 어쨌든 잘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웃음) 예상해서 된 것도 아니고. 이 아이템도 제가 낸 게 아니고 저는 우리팀이 낸 걸 이거 괜찮겠다 하자, 한 거지. 그나저나 그래서 선생님, CF 들어온 거 없어요? OOO영어교실 이런 거? (웃음)

윤여정_ 잘됐으면 됐지. CF 찍고 이런 건 보너스잖아. 그런 보너스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야. 사람들이 “‘윰블리’가 떴어요. CF 막 들어올 거예요” 하더라고. 5살 정도 위아래였으면, ‘뭐야 걔만 떠’ 그랬을 텐데, 나는 정유미만 뜬 데 대해서 진심으로 하나도 분한 것도 없고. 내 나이에 여럿이 뭘 같이 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많이 보면 그거야말로 정말 기쁜 일이고. 유미한테 밥이나 사라고 해서 얻어먹는 거지. (웃음) 사람들이 정유미가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라고 그러잖아. 나는 그런 거 없다고 봐. 걔가 그렇게 수혜를 받았으면 우리 프로그램 전체가 다 수혜를 받은 거지 뭐.

나영석_ 다음 작품은 럭셔리한 귀부인으로 하세요. <윤식당>은 내 모습과 전혀 다르다, 하고 보여줄 수 있는 걸로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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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