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자런은 풀브라이트상을 세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다. 그녀의 에세이 <랩 걸>은 초록색을 연구하며 살아온 삶을 담고 있다. 그녀는 하와이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며 연구하던 때 이 책을 썼는데,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의 세 챕터로 자신의 삶과 식물의 연대기를 유려하게 엮었다. 과학자로서의 삶을 담고 있지만 그녀의 활동영역은 우리가 눈을 돌리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녹색의 생명체들, 식물이다. 과학이라면 긴장부터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책이다. 인간과 식물이 어떻게 같이 이야기될 수 있느냐고?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자런은 과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발을 들였던 실험실에서 느꼈던 자유를 써내려간다. “내 실험실은 아직 내 안에 있는 어린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그곳은 내가 가장 친한 친구와 노는 곳이다.” 자런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멜로드라마 같은(즉 없지는 않지만 흔치도 않은) 결혼을 했으며, 영혼의 파트너라고 부를 만한 남자 동료와 함께 일하고 있다. 자런은 그런 삶의 순간들을 식물의 성장과 연관지어 교차시킨다. 이 방식은 책을 통해 반복되지만 매번 감탄하게 된다.
식물의 성장 곡선을 설명하는 대목.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 것은 최대 생산성에 이르기 직전에 식물의 질량이 감소하며 S자 곡선을 그린다는 데 있다. 이 질량 감소는 번식을 시작하겠다는 신호라고 한다. 초록 이파리를 많이 거느린 식물은 최대 성장점에 도달하면 일부 영양소를 빼내 꽃과 열매를 만드는 쪽으로 재배치한다. 이 설명이 끝나면 바로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임신은 내가 그때까지 평생 해본 일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임신이 커리어 성장곡선을 어떻게 주춤하게 만들었는지도. 하지만 에필로그의 첫 문장처럼, “식물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
전문 분야에서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으면서 그 안에서 생각하는 법을 익히고, 오랜 시간 익힌 지식을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 구술하며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쓴다. 식물을 연구하고자 함에도 재정적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전쟁을 위한 과학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자런의 문체에 분명한 인장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