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는 지난 3월23일 한국 영화산업 상생협력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을 열었다.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는 지난 3월23일 한국 영화산업 상생협력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을 열었다.
한국영화계는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대기업과 중소 제작사 및 협력업체간의 양극화 해소를 통해 영화계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고자 2011년 10월 21일 민·관·노·사 26개 단체와 기업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한국영화 동반성장협의회’(이하 ‘동반협’)를 발족하였다. 2012년 7월 16일에는 한국 영화산업 전 부문에 걸친 동반성장과 공정경쟁 환경 조성에 공동으로 노력하며, 합의 조항들을 신의성실에 따라 이행할 것을 명문화한 ‘이행협약’을 체결하였다. 2013년 4월 10일에는 7개 항목에 17개 조항의 ‘부속합의문’을 맺었다.
약 4년 후인 지난 3월 23일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소장 최현용, 이하 ‘전략센터’)의 제안에 따라 “동반성장 이행협약”(이하 ‘이행협약’) 후속조치 및 영화산업 현안 논의를 위해 ‘한국 영화산업 상생협력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가칭, 이하 ‘라운드 테이블’)이 구성되었다.
라운드 테이블 결성이 영화계의 미래를 위한 고민인지 아니면 소수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지 전략센터의 제안에 대한 사실관계에 바탕을 두고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주요 플레이어는 PGK, 독협, 대기업뿐?
첫째, 전략센터의 제안서에는 “이행협약의 후속조치”라는 ‘진술’이 있다. 위험한 진술이다. 왜냐하면 마치 전략센터가 동반협의 간사 역할을 한 것처럼 그 내용을 승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진술은 옳지 못하다. 자칫 사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반협과 이행협약을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려는 시도이다. 사실, 전략센터는 동반협과 전혀 무관한 조직이다. 이행협약 이후에 전략센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당시 동반협은 영화계의 대다수 단체가 포함된 협의기구였다. 명실상부 영화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의 협의체였다. 그러나 지금 전략센터가 라운드 테이블 설립을 위해 협의 대상으로 둔 영화계 단체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하 ‘PGK’)과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독협’)뿐이다. 나머지는 5개 주요 투자·배급사와 3개의 극장사이다.
이런 제안은 상식과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왜 이들만이 한국 영화산업 현안에 대한 논의 자격을 갖는지 알 수 없다. 전략센터는 제안서에 영화계 “주요 플레이어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전략센터에서 생각하는 주요 플레이어는 PGK, 독협 그리고 대기업뿐인지. 왜 이런 자가당착적 논리를 펴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제작가협회, 감독조합, 작가조합의 창작자 단체와 영화산업노조 등 영화계 이해당사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영화계의 현안 논의”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과연 타당한 것인가?
셋째, 전략센터는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고 성과도 부풀리고 있다. 전략센터는 “이행협약이 많은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부분적인 부율 조정, 디지털 영사기 사용료(VPF) 문제 등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성과가 영화산업의 발전을 견인할 만큼 중요한 성과인가 하는 것은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또한 여러 표준계약서가 장관고시가 되었다고 하는데,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시나리오작가표준계약서’만이 장관고시가 되었다. 다른 표준투자, 상영, 근로계약서는 장관고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나리오표준계약서는 동반협과 아무런 상관없이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왜곡하고 마치 이행협약 혹은 전략센터의 성과로 포장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넷째, 동반협의 정치적 한계이다. 주지하다시피 ‘동반성장’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기조였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으로 영화 정책은 마비되고 초토화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간을 뛰어넘어,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가 박근혜 탄핵과 새 정부의 출범을 곧 앞둔 이 시점에서 다시 논의되고, 라운드 테이블을 이렇게 결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전략센터는 그런 자격과 권리가 있는가.
다섯째, 동반협과 이행협약의 정책적 한계이다. 이명박 정부가 동반성장을 신자유주의 정책의 보완재로서 정책기조를 유지했지만 결국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이었다.
동반협의 주요한 성과로서 이행협약이 체결되었지만, 결과를 살펴보면 그 한계는 더욱 명확하다. 먼저, 지금 현재 그 이행협약조차도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아무런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왜 이런 사실관계는 숨기고 마치 이행협약이 커다란 성과가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음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영화계의 독과점 문제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결국, 동반협의 정책은 대기업 성장전략의 보조재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다시 이 논의가 시작된다는 것은 적어도 영화산업에서는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하듯이, ‘개혁의 시대’에 맞는 영화정책이 입안될 때이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라운드 테이블을 추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칫 영화계를 기만하는 행위는 아닐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아닐까?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곰곰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여섯째, 누구의 이익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인가?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분명한 것이 있다. 영화계 전체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라운드 테이블의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고, 막 구성이 되었기에, 성급한 예측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위에서 설명한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참여하는 PGK와 독협에는 어떤 이익이 될까? 두 단체에 실질적인 이익이 있을까? 현재로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수혜는 없을 것이다. 영화산업의 현재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악화만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라운드 테이블의 성과가 누구의 것인지는 오히려 분명하다. 극장을 소유한 대기업이다.
영화단체를 이익 얻는 ‘숙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일곱째, 왜 지금인가? 국가와 문화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에 향후 문화 정책을 선점하기 위한 욕망일 수도 있다. 여기에 하나의 관점을 더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반독과점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이 영비법 개정안은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극장 소유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반독과점 영비법’이 발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극장 소유 대기업 입장에서 이 라운드 테이블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극장 소유 대기업은 영화계(전략센터, PGK, 독협)의 이름으로 영화 정책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듯 보인다. 또한 이 라운드 테이블의 구성은 영화계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갈 것이다. 대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정책 담론이 쏟아질수록 그리고 영화계의 분열이 심화될수록, 그 이익은 대기업이 가져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여덟째, 지난번에 영화진흥위원회 노조와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의 ‘합의’ 논란과 ‘성명서’ 소동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이 바로 민주적 공론화 과정과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이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라운드 테이블로 인해 또다시 소중한 가치에 심각한 손상이 가해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 몇몇 인사들에 의한 영화 정책 독점과 비민주적 진행 방식, 영화계 분열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전략센터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두 영화단체를 ‘숙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앞으로 많은 영화단체와 영화인들과의 소통과 대화가 필요하다. 민주적 방식의 공론화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