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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한국영화 속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 공동 1위 - <마더> 엄마 김혜자
송경원 2017-04-10

01 <마더> 감독 봉준호, 2009 엄마 김혜자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모성은 그 정도로 신화화된 감정이다. 특히 한국영화에서 엄마는 어떤 난감한 상황이나 이야기의 꼬임도 풀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어왔다. 문제는 이 만능키를 너무 손쉽게, 자주 써먹는다는 점에 있다.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모성의 신화는 더욱 두터워진다. 긴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새 이야기 속 어머니는 여성, 사람, 개별 인격체가 아니라 함부로 침범해선 안 될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바로 이 신화를 해체해버린 전무후무한 파괴력의 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부모들은 짐승이 되기 쉬운 것 같다”고 말한다. <마더>는 “자식으로 인해서 미쳤을 때 그게 숭고한 사랑인지 야만적인 광기인지” 묻는다. 그 결과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엄마’라는 기이한 보통명사를, 장르의 무드 속에 단연코 월등히 그려낸”(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가 탄생했다.

모든 균열의 시작에는 배우 김혜자라는 송곳이 있었다. “도무지 조화될 것 같지 않은 두 요소를 충돌시키는 것이 내 적성인 것 같다”는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의 ‘국민엄마’ 이미지 이면이 궁금했다”라며, <마더>가 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영화임을 여러 차례 고백했다. 허허벌판에서 김혜자 배우 혼자 춤을 추는 오프닝은 한국영화사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인상적이다. “아주 거칠게 말한다면 김혜자 선생님을 찍는 영화이고, 그래서 첫 장면부터 김혜자 선생님을 보여 줬다. 중요한 건 춤을 출 때의 표정”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 그대로 <마더>는 김혜자의 얼굴에 철저히 의존하는 영화다. 그리고 배우 김혜자는 한번도 본 적 없고, 재현도 불가능한 표정으로 ‘엄마’라는 단어에 묻은 이물감과 공포를 들춰낸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믿어왔던 것들이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목격한 관객의 마음속에는 한줌 미혹이 피어난다.

<마더>를 꼽은 이들의 반응도 한결같이 신화의 해체와 이를 가능케 한 배우의 역량에 찬사를 보냈다. <마더>는 장르를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불쑥 낯선 것들을 선보인다. “Mother와 Murder 사이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엄마’는 한국적인 어머니의 표상을 증발시키는 동시에 한국영화에서 처음 접했던 캐릭터”(박준경 NEW 영화사업본부 총괄상무이사)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연기를 펼친 국민엄마, 김혜자”(정현주 쇼박스 한국영화1팀 부장)는 자신이 쌓아올린 이미지를 해체하고 역전시킬 줄 아는 보석 같은 배우다. 현장에서 수십번 테이크를 반복해도 “중요한 장면이면 더 찍자”라며 봉준호 감독을 졸랐다는 열정 충만한 프로이기도 하다. 결국 위대한 캐릭터는 좋은 배우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국민엄마 김혜자가 버스 안에서 춤을 추는 마지막 순간, 모성이란 견고한 신화를 쪼갤 돌이킬 수 없는 쐐기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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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세준 스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