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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분노> 가와무라 겐키 프로듀서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7-04-06

<전차남>(2005), <고백>(2010), <악인>(2010), <늑대아이>(2012), <바쿠만>(2015), <너의 이름은.>(2016)의 공통점은? 모두 가와무라 겐키 프로듀서의 손을 거쳐 기획, 제작된 영화라는 점이다. 가와무라 겐키는 도호영화사 입사 이래 뛰어난 안목과 기획력으로 꾸준히 흥행작을 선보여왔다. 주목받는 일본영화의 뒤엔 항상 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는 유명 프로듀서인 그에게 또 다른 얼굴이 있으니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이다. 2012년 발표한 첫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120만부 넘는 판매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가와무라 겐키 프로듀서를 만나 성공한 콘텐츠를 만드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성공한 프로듀서이자 차분한 이야기꾼, 그리고 흥미로운 에세이스트로서의 답변을 전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홍보차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왔었다.

=<너의 이름은.> 프로모션으로 오고 싶었는데 일정 문제로 아쉽게 참석하지 못했다. <분노>로 다시 방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웃음) 책도 쓰고 있어서 한쪽의 프로모션이 잡히면 겸사겸사 다른 쪽의 홍보를 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존경하는 친구인 봉준호 감독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할 수 있어서 더욱 각별했다.

-<너의 이름은.>이 워낙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서 한동안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라는 수식어가따라다닐 것 같은데.

=그전까진 <전차남> <고백> <악인>이 대표작이었는데 이제 애니메이션으로도 수식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 한국에선 영화와 애니메이션 기획을 동시에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저 영화를 만들 뿐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구분하지 않고 별개의 시스템이 필요하지도 않다. 디즈니 출신인 팀 버튼이 실사영화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이젠 경계를 나누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너의 이름은.>은 이후 찰리 카우프먼이 4번이나 봤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J. J. 에이브럼스에게서도 연락을 받았다.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간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보통 장기로 하는 장르나 본인 취향의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인데 기획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의 장르의 끝에서 끝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어렵지 않나.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내가 신인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전차남>, <모테키: 모태솔로 탈출기>(2011)를 기획한 이후 로맨틱 코미디가 전문 분야라고 인식됐다. 그래서 반대로 스릴러에 도전해보고 싶어 <고백> <악인> <분노> 등의 영화가 더 끌린 것 같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실사영화를 10편쯤 찍은 후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였다고 느낄 무렵 애니메이션 기획에 뛰어들어 공부했다. 넘나드는 과정에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난다. 시야가 확장된다고 해야 할까. 새로운 장르에서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다시 하던 장르로 돌아오면 세계가 한층 넓어진 걸 느낄 수 있다.

-2011년에는 우수 영화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후지모토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2권이나 낸 소설가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는 같은 패턴이다. 영화만 하다가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을 찾은 게 소설이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을 쓸 때 절실하게 느낀 게 소설에는 소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제야 영화에서 소리가 얼마나 큰 장점이 되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그 이후엔 소리를 중심으로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너의 이름은.>이다. <분노>에서도 사운드에 특히 공을 들였다.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소리들을 찾아다녔다. 오키나와 기지의 전투기 소리도 그중 하나다.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리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을 음악감독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게 신의 한수였다.

-매체를 넘나들며 창의력을 발휘하는 걸 보니 조만간 영화 연출자로도 이름을 올릴 것 같다.

=아직은 모르겠다. 모험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 확신이 서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다. (웃음) 소설을 쓸 땐 영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써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만약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나만이 찍을 수 있는 영화, 영화 제작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단계부터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로는 어렵겠는걸’ 하는 지점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출발하려 한다. 영화에서만 할 수 있는 표현을 하지 않을 거면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본다. 복잡하게 말했지만 결국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와야 한다.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웃음)

-‘<악인>이 차갑고 애달픈 영화라면 <분노>는 뜨겁고 끓어오르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계절이다. <악인>은 겨울에 관한 영화였기에 그레이 톤으로 갔다. <분노>는 여름이 배경이라 정열적인 영화라고 느꼈다. 두 번째로 <악인>이 무언가를 참고있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라면 <분노>는 참아왔던 사람들이 뭔가를 원하고 표출하는 영화다.

-<분노>의 캐스팅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프로듀서의 역량이라 봐도 될까.

=그렇게 봐주면 감사하다. 와타나베 겐은 <용서받지 못한 자>(2013), 쓰마부키 사토시는 <악인>, 미야자키 아오이는 <늑대아이>, 마쓰야마 겐이치는 <디트로이트 메탈시티>(2008) 등 대부분의 배우가 전작을 함께한 연결고리가 있다. 이들과 다시 작업할 수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핵심은 이상일 감독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성공한 문과 남자가 이과 세계의 선두주자들과 대담을 하는 <문과 출신입니다만>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른바 ‘이과적인 사고’가 좋은 기획력의 비결일까.

=말씀하신 그대로다.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것,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 일부러 뛰어들어가는 게 인생의 모토다. 수학이 싫어서 문과쪽으로 왔는데, 문득 세계를 움직이는 건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이공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도망쳐왔던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는 각오로 2년간 여러 이공계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방향이 다를 뿐 결국엔 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는 거였다. 문학이나 영화가 스토리, 영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을 그들은 수학, 과학으로 표현한다는 차이뿐이다. 결국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자신이 잘 아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다. 한번은 우수한 프로그래머를 만난 적이 있는데 어지간한 영화감독보다 더 예술가적인 기질이 넘쳤다. 그들에게 질 수 없다, 좋은 승부가 되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 (웃음)

-간간이 한국영화계의 강렬한 작품들에 대한 일본영화계의 반응을 듣는다. 반대로 개인적으로는 일본영화의 꾸준함, 단단한 정서들이 부럽다. 한국과 일본의 제작방식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한국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과장과 강렬함이다. 예를 들어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은 매우 강한 에너지의 영화다. 놀라운 건 두 시간 넘는 자극을 한국에선 남녀노소 모두 즐긴다는 점이었다. 봉준호 감독처럼 유머와 잔혹성이 혼재하는 것도 좋다. 내 생각엔 그냥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것 같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일본에선 ‘옆집 풀이 더 푸르러 보인다’고 한다. (웃음) 이제 국내에는 더이상 내가 신인의 자세로 임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최근엔 해외 프로젝트에 관심이 부쩍 가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넷플릭스나 할리우드에서 하시고. (웃음) 서울이나 도쿄를 배경으로 한 작은 규모의 영화였으면 좋겠다. 아직은 시기도, 계획도 없는 희망사항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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