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씨가 탄핵되면서 벚꽃대선, 아니 장미전쟁이 현실화되었다. 보수적인 재판관이 포진한 헌재였기에 이를 우려한 사람들도 많았으나 이변은 없었다. 한국 상층부 보수의 멘털리티는 사실 보수라기보다는 기회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유례없는 국민의 열망을 거스를 생각을 감히 하기 어려웠으리라.
19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는 많은 진전이 있었고, 대개의 순진한 사람들은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나도 그랬다. 그 후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그 진전의 대부분이 훼손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뒷걸음질이 너무 심각하다보니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과 중 “잡혀가서 고문당하지는 않는다” 정도만이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다른 것은 어느 하나도 온전히 우리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박근혜씨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무탈하다고 생각했으리라. 민주주의는 작동이 안 되고, 언론은 요리할 수 있으며, 여론은 변덕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믿고 살아왔던 박근혜씨로서는 갑자기 벼락처럼 작동하기 시작한 민주주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늘 그렇게 통치해왔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폭로되고 단죄되고 겨우 돌아온 고향집마저 떠나라 하니 본인으로서는 어이가 없다고 느낄 만하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갑작스러운 탄핵이 아니라, 그 이전에는 작동하지 않았던 민주주의다. 사회는 비로소 조금이나마 정상을 회복한 것이다.
박근혜씨는 어디까지 마음대로 해도 될까 시험하다 국민의 역린을 건드렸고, 참았던 국민들이 쏟아내는 분노의 격랑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 분노는 언론을 움직이고 국회를 휩쓸고 헌법재판소로 범람하여 구체제를 모두 휩쓸고 갔다. 이제 최고권력자마저 그 저열함이 임계값을 넘어서면 법의 이름으로 파면될 수 있다는 선례가 확립되었다. 이것은 ‘고문 금지의 수준’에 머물던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역적 방어선이 획기적으로 전진 배치된 것이다. 이제 어떤 지도자도 탄핵을 실제적 위협으로 인식할 것이고, 권력 남용은 그 선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 박정희씨는 법률은커녕 정치적 방법으로도 쫓아낼 수 없었기에 ‘역사의 이성’은 총이라는 물리력을 매개로 자신의 이념을 드러냈다. 그러나 물리력은 민중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를 애도하고, 그 딸을 애달파하는 마음은 비논리적이지만, 그 정서적 에너지는 정치적 헤게모니로 변환되고 비이성적인 투표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그 딸이 다시 민주주의를 훼손할 때에, 이제는 촛불과 투표와 법률이 총을 대신했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버팀목이 ‘총에서 제도로’ 도약하기까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박정희씨가 피살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 뒤에 온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수부대였다.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과 땀이 필요했는가. 탄핵을 이룬 우리는 이제 역사의 이성을 온전히 환대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길고어리석은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가. 앞으로 50일간 벌어질 장미전쟁이 그 밑그림을 결정하게 된다.
(개인 사정으로 칼럼을 중단합니다. 1년 넘게 여러분에게 말을 걸 수 있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