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 세월호가 올라오고 있다.
이 한 문장을 쓰고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이 소식은, 이 문장은 이루 셀 수 없는 이들이 간절하게 ‘현재형’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지난 3년 우리에게 세월호는 ‘올라와야 한다’는 미래형 당위였다. 너무 많이 외친 나머지, 그토록 호소하고 울부짖었는데도 철면피 같은 권력자의 태도엔 변화가 없던 나머지 우리는 외치면서도 좌절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절규는 이대로 영원히 바다에 묻힐 것만 같다는 불안한 고백이기도 했다. 그날의 참사가 지난해인지 지지난해인지도 몰라 횡설수설하던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왜 내 탓이냐고 그자는 되물었다. 그러나 그가 파면된 지 5시간 만에 해양수산부는 인양 계획을 발표했다. 박근혜의 1474일 천하 중 1060일은 구조를 방기하고 진실을 훼손하며 인양을 방해한 나날이었다. 파면된 지 꼭 두주 만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가라앉은 지 1073일 만이다. 박근혜 일당이 선택한 인양 방식을 바꾼 결과이기도 했다. 기술적인 설명을 넘어 그들이 원한 방식은 ‘이러다 마는 것’이었다. 전방위적이었다. 민정수석 우병우와 비서실장 김기춘은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감사원의 조사결과를 조율했다. 조율이란 이름의 조작이었다. 국회의원 김진태는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 훈계했다. 보수단체를 동원해 유족을 조롱하고 협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진실규명 선언에 참여한 예술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검열하고 배제했다. 그들이 인양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라는 증거는 이제 차고 넘친다.
아해라 했던가. 참사 주범으로 지목되고 순천 어느 풀섶에서 죽어 발견된 청해진 사주 유병언의 호. 내가 현장을 찾아갔을 때, 이른바 과학수사는 증거를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훼손하고 덮는 식이었다. 내미는 증거만 보되, 행여 조작의 증거를 보아선 안된다는 강박이 블랙코미디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풍경의 연속이 지난 3년이었다. 유병언이 아해라면, 박근혜는 방해였다.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이름을 다시금 불러본다. ‘7시간’ 뒤에 숨은 국정원 노트북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철근의 진실을 되물어본다. 이 시간, 세월호가 올라오고 있다. 숨진 내가, 숨진 우리들이 차갑게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