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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사실은 블루레이만 모으고 있지는 않은 그의 영화 관련 온갖 것들 수집기
김현수 사진 최성열 2017-03-27

영화 장면을 모티브삼아 만든 레고 블록, 블루레이, 사운드트랙, 아트북 등은 모두 해당 영화의 스타일, 제작 방법 등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확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출시하는 한정판 블루레이는 해외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의 패키지 디자인 콜라보를 통해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출시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멜랑콜리아> 한정판 등은 오래전에 품절되어 중고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가 보여준 1:1 화면비율을 연상케하는 바이닐 커버 사이즈의 굿즈들.

지난 2월 23일 목요일,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 블루레이 디럭스 박스 세트 한정판의 예약주문 오픈날이었다. 스케줄 표를 확인하니 오후 2시에 <로건> 언론 시사회가 예정되어 있다. 러닝타임은 137분인데 예약 오픈시간은 오후 4시. 한정판 굿즈가 동봉되는 제품이라 순식간에 품절될 텐데 어쩌지? 친구한테 대신 주문을 부탁해 볼까? 아니야. 분명히 성공 못할 거야. 그게 신경 쓰여서 영화에 제대로 집중 못할 바엔 차라리 내가 상영 도중에 주문하고 말지. 그런데 영화가 정각에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4시는 분명히 클라이맥스 액션 신이 등장할 타이밍인데 어쩌나? 누가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할지도 모를 이 고민은 나를 하루 종일 괴롭혔다. 결국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리라 결심하고는 상영관에 들어섰다. 최대한 타인을 방해하지 않으려 일부러 통로석에 앉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잠시 후 울버린이 로라를 위해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빛의 속도로 출구 근처로 나가서는 스마트폰 쇼핑앱을 실행시켰다. 장바구니에서부터 결제 완료까지, 그렇게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 영화 또한 자막을 포함해 한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다년간의 한정판 주문 노하우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상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트위터 반응을 살펴보니 <캐롤> 블루레이 공식 홈페이지 서버가 주문 폭주로 잠시 마비된 바람에 구매 실패했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굉장히 가벼워졌다.

나에게는 <캐롤> 블루레이가 있다

<캐롤> 블루레이가 순식간에 품절 사태를 겪은 건 영화 자체의 인기도 컸겠지만 구성품으로 제공되는 영화 굿즈를 원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공식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제작된 금장 핀배지와 양장 포토북, 스틸컷으로 만든 엽서와 카드, 영화에 등장하는 손편지, 각본집에 이르는 세트 구성은 최근 국내 극장가에 불어닥친 굿즈 열풍의 어떤 절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심지어 한정판으로 판매되니 소유욕은 배가될 수밖에. 특히 배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굉장히 높았다.

트위터상에서는 개인이 자체적으로 <캐롤>의 배지를 제작해 판매 하려다가 저작권 문제에 부딪혀 시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실은 나 역시 이 시끄러운 배지 열풍의 주요 고객임을 고백한다. 지난해 <아가씨>의 인기로 수많은 팬들이 자체적으로 창작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한 팬으로부터 숙희와 히데코 배지를 구매했다. 극중 캐릭터의 실루엣으로 디자인한 배지 세트였는데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상자료원에서 <올드보이>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올드데이즈>를 상영하던 날, 가슴에 그 배지를 달고 가서는 박찬욱 감독님께 보여드렸다. 감독님도 하나 갖고 싶다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개인 창작자가 소량 제작한 한정판이었기에 차마 드리지 못했다. 한국영화를 소재로 팬들이 직접 굿즈를 제작해 기념하고 소유하는 현상을 거의 처음 경험하다시피 했다. 아이돌 팬층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행했던 문화이자 놀이로 알고 있었는데 영화계로도 전파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최근 <라라랜드>와 <문라이트>의 동반 인기몰이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역대 오스카 시상식 경쟁 구도 가운데 전혀 다른 계층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두 멜로영화가 격돌한 현상도 재미있었지만 두 영화 모두 소위 말해 굿즈를 제작하기에 최적화된 상품성을 지닌 영화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연출자의 어떤 특정한 세대 감성에 따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국내 영화 굿즈 시장의 열기에 이 영화들이 기름을 들이부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에 활용하기 좋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영화들이 되레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SNS, 특히 인스타그램 세대라 불릴 정도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과 소통하는 세대의 입장에서는 예쁜 한정판 굿즈의 득템은 좋은 자랑거리 중 하나인 셈이다. 우연히 어느 <캐롤> 블루레이 구매자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는데 블루레이에 동봉된 굿즈들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듯 책상을 예쁘게 꾸민 다음 사진을 찍어 올린 모습을 봤다.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우연히 택한 것일 테지만 일정 정도 인스타그램이란 매체 자체의 특성이 반영된 놀이의 결과란 생각도 떨칠 수 없었다. 에코백이나 야광 포스터, 엽서, 마스킹테이프 등의 영화 굿즈가 SNS에 노출되는 모습만 봐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영화를 예쁘게 소유하고 소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간혹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라우더 댄 밤즈>를 보고 쓸쓸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과연 가족이란 뭘까, 며칠을 고민하던 와중에 관련 굿즈로 제작된 휴대폰 케이스 디자인을 보고 놀란 적 있다. 이렇게 예쁜 휴대폰 케이스의 디자인과 엄마의 죽음 이후 가족의 진실과 마주하며 괴로워하는 조나(제시 아이젠버그)의 마음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 영화의 굿즈 디자인이 상품 자체를 위한 상품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다소 불편하기도 했다. 포스터 디자인에 기초해 제작된 것이겠지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메시지보다 특정 포스터가 지닌 팬시함을 상품화한 귀엽고 깜찍한 휴대폰 케이스는 적어도 그 영화보다는 시끄러워 보였다.

며칠 전, 한 멀티플렉스 극장 로비에 마련된 팝업스토어에 들렀다. 얼마 전까지 매대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슈퍼히어로영화 관련 장난감들은 구석으로 밀려나고 귀여운 일러스트 디자인을 앞세워 론칭한 굿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요새 관객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굿즈의 품목이 포스터, 엽서, 노트, 스티커, 배지, 머그컵, 에코백 등으로 한정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마 향초나 성냥갑, 향수, 열쇠고리, 파우치 등은 특이한 제품군에 속하는 굿즈다. 무엇이 요즘 관객으로 하여금 굿즈에 지갑을 열게 만든 것일까. 혹은 어떤 계기로 이런 극장 풍경이 만들어진 것일까. 이제는 정말 영화를 되새기며 즐기는 방법이 휴대폰 케이스 사는 것 말고는 없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기억하는가, <우뢰매> 엽서 세트를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첫 영화 굿즈는 엽서 세트였다. 1986년, 지금은 극장식 카바레로 개조됐다가 망해서 문을 닫은 옛 동네 단관 극장에서 <우뢰매>를 보고 나오던 날, 부모님을 졸라 6~7장 정도 세트로 묶여 있던 엽서 세트를 산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영화 개봉 당일 첫회 상영 관람자에게 티셔츠 같은 상품을 나눠주던 이벤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예를 들면 1987년 <백 투 더 퓨처>를 70mm로 상영하던 대한극장에서 개봉 첫날 선착순 100명에게 기념 티셔츠를증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가 새벽부터 늘어난 인파로 극장 앞이 대혼란에 빠졌다는 전설 같은 해프닝 말이다. 스틸컷이 프린트된 책받침이나 공책, 장난감 등이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종의 굿즈 역할을 했다. 비디오가 사장되고 DVD가 급부상할 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포스터나 엽서를 증정하는 등 굿즈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굿즈였을 뿐이다. 지금은 그저 한낱 영수증에 불과 한 예매 티켓도 한때는 유명 만화가의 일러스트를 그려넣어 일종의 굿즈처럼 수집할 수 있도록 제작하던 시기도 있었다.

한때는 영화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수단이 전멸하다시피 했던 일종의 암흑기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당시 극장가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었던 때만 하더라도 기억나는 관련 굿즈가 거의 없다. 당시 CGV가 10주년 기념으로 ‘광수생각’과 콜라보로 제작한 피겨가 거의 유일한 <괴물>의 굿즈일 것이다. 왜 그때는 <괴물>의 특정 장면을 일러스트로 제작해 티셔츠를 만들어 팔거나 혹은 하이트 맥주와 콜라보를 진행해 한정판 에디션을 만들어 팔 생각을 안 했던 것일까. <왕의 남자> 개봉 당시에는 피겨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지금과 같은 열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고 영화 포스터 한장 얻을 수 있을까 싶어 극장 매표소에 문의하면 귀찮다는 듯 가져가라고 건네주던 때였다. 개봉 당일 포스터 증정 이벤트를 열면 관객수가 증가하는 최근의 현상과는 너무 다른 풍경이었다. 불과 몇년 전의 일이다.

2013년, 메가박스가 <에반게리온: 큐>를 단독 상영하면서 당시 극장 최초로 팝콘통에 이미지를 프린트해 세트로 판매하는 이벤트를 펼친 적 있다. 그때 SNS를 통해 관객이 1인 팝콘 세트 판매를 요구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애니메이션을 보러 온 많은 1인 관객이 2인 세트가 기본인 팝콘을 사는 데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너의 이름은.> 팝콘 세트 열풍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영화 이미지가 프린트된 팝콘통만 사고 싶은데 거기에 팝콘을 담아주니 일부 관객이 팝콘을 버리고 통만 갖고 돌아가는 모습이 최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극영화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만큼은 개봉 특전 상품이라 부르는 이벤트 증정 굿즈를 받기 위해 해당 배포날 관객이 극장에 몰린 사례가 있었다. 굿즈가 직접 흥행에 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증명되면서 그 관객 수요가 증명된 셈이다. 영화는 아니지만 윤동주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 디자인 한정본이 온라인 출판 시장에서 크게 화제가 된 것도 요즘 극장의 굿즈 열풍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틀 사이즈를 포스터 디자인에 접목한 <마미>와 <단지 세상의 끝> 굿즈는 마치 구매했으니 찍어서 공유하라는 SNS 신의 부름이 느껴질 정도였다. 굿즈의 열풍이 한정판 시장의 활성화와 맞물린 결과이든, 아니면 소위 말하는 오타쿠 문화의 향유층이 주요 시장 고객으로 떠오른 것이든, 혹은 SNS 세대 감성과의 접목이든 지금의 극장 풍경의 변화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영화 굿즈 전문숍 오픈을 기다리며

지난해 여름,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가 개봉했을 때 나는 분주하게 구매 버튼을 눌러야 했다. 오랜만에 시리즈가 새로 시작되는 만큼 오리지널 시리즈를 다시 즐기기 위해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으로 선보인 블루레이를 사야 했고, 당시 제작 비하인드와 일러스트 등이 실린 대형 아트북도 구매해야 했다. 시리즈의 상징인 유령 금지 디자인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주문했고 스코어와 노래가 따로 실린 2장의 사운드트랙도 구매했다. 영화 개봉과 함께 출시된 장난감 레고도 사야 했다. 정말 더이상은 살 게 없구나 싶을 때 스틸컷과 포스터를 직접 인화해 자체 굿즈를 만들어 벽에 붙였다. 누군가는 뭘 또 그렇게까지 사고 또 사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구매 행위를 일종의 놀이처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트북을 사지 않으면 거기에 실린 엑토 원의 초기 디자인 스케치를 볼 수가 없다. 제작진이 유령의 잔해를 표현하기 위해 100리터가량의 면도 크림을 뉴욕 시내 한복판에 들이부은 채로 촬영하던 현장 스틸컷도 볼 수가 없다. 블루레이를 사면 더 생생한 메이킹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영화 한편을 보고 나서 그와 관련한 수많은 또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굿즈들 역시 영화를 일종의 놀이처럼 즐기는 행위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그 놀이의 형태가 구매 자체를 위한 상품성에만 치중해가는 것을 경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물론 예쁜 디자인의 소품만으로 만족한다면 그걸로도 굿즈의 역할은 충분할 테다. 지금의 뜨거운 열기가 좀더 많은 영화들을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또 더 많은 관객이 굿즈를 통해서 영화를 친숙하게 느끼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멋진 영화 굿즈숍이 없다는 거다. 해외의 디즈니 스토어나 일본의 건담숍, 에반게리온 스토어 같은 특정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굿즈숍을 부러워하며 여행길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라이선스 판권 문제 등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을 것 같지만 지금의 열풍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들어가 무슨 변화를 일으킬지 모른다. 과거 시네필의 행동 강령처럼 언급되던 3단계는 굿즈의 시대에 이렇게 바뀔 수 있겠다. 첫째, 영화 굿즈를 산다. 둘째, 굿즈 중에서도 특히 한정판을 골라 산다. 셋째, 그리고 한정판 굿즈를 직접 만든다, 고 말이다. ‘영화를 산다’는 말은 영화처럼 구름 속을 걷는 듯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삶을 영위한다는 말이 아니라 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즐기는 방법의 의미로 읽히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영화를 사고 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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