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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만담강호> 만든 오인용의 정지혁·장석조 감독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7-03-23

장석조 감독(왼쪽)과 정지혁 감독.

병역 기피 연예인을 풍자한 <연예인 지옥>(2002), 북한의 지도자를 풍자한 <중년탐정 김정일>(2006) 등 오인용의 작품에 성역은 없다. 창작집단 오인용의 다섯 멤버는 욕과 폭력과 억지가 난무하는 19금 B급 웹애니메이션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했다. 2002년 5명으로 시작한 오인용은 현재 정지혁, 장석조 감독이 따로 또 같이 작업하는 형태로 그 이름을 지켜가고 있다. 주먹이 아닌 말로 싸우는 무림고수들의 ‘드립’ 혈전 <만담강호>를 극장에 걸게 된 오인용의 두 감독을 만났다.

-<만담강호>가 첫 번째 극장 개봉 애니메이션이다.

=정지혁_ 오인용의 이름이 알려지고 한창때 극장판에 열심히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투자받기가 쉽지 않았다. 제작비를 깎고 깎아서 2억원만 해주시면 1년 동안 눈썹 밀고 산에 들어가서 작품을 완성해 오겠다고 했는데도 그 2억원을 주려는 곳이 없더라. 장편 경험, 극장 개봉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를 믿어주지 않았다. <만담강호>의 경우 애초 극장 개봉을 생각하고 준비한 작품은 아니었다. 지난해 웹애니메이션 채널 ‘좀바라TV’에서 <만담강호>를 5분 분량으로 24회 연재했는데 그쪽에서 이걸 다시 편집해 극장 개봉 버전으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2003년에 <만담강호> 1화를 공개했지만 더이상 후속편을 내지 않았다. 그러다 13년 만에 작품이 부활했다.

정지혁_ 지금은 고인이 된 오인용 멤버 씨드락(장동혁)과 함께 1편을 만들었는데, 그림체도 동양화풍으로 어렵게 잡은 데다 제작 자체에 공이 많이 들어가야 해서 힘들어 일찍 손을 뗐다.

=장석조_ 동료가 아닌 팬의 입장에선 <만담강호>가 그렇게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다 좀바라TV 채널 오픈을 준비하던 부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만담강호> 얘기를 꺼냈는데 좋아하시더라. 무술로 대결하지 않고 말로만 싸운다는 설정이 재밌지 않나. 그래서 정지혁 감독한테 제작은 내가 할 테니 기획과 연출만 맡아 달라고 해서 좀바라TV 오픈베타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계원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과 동기 5명이 모여 오인용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은 두분만 남았다.

장석조_ 우리는 20대 후반에 여러 일들을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러닝에 팬티만 입고 반지하방에서 작업만 했다. 그게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 시절엔 늘 좌절의 연속이었다. 동료 씨드락뿐만 아니라 <연예인 지옥>에서 ‘스티붕유’의 목소리를 연기한 친구도 1년 앞서 같은 병인 육종암으로 세상을 떴다.

정지혁_ 현실적인 문제로 각자의 길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이었는데 포털 사이트만큼 방문객이 들었으니까 어떤 때는 서버비를 한달에 1천만원씩 내기도 했다. 개인 작품하면서 동시에 외주 작업을 서너개씩 하는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결혼한 친구도 생기고 아픈 친구도 생기고 현실에 타협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씨드락이 언젠가 그런 얘길 한 적 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했는데 극장에 오인용이란 이름으로 작품 한번 걸어보고 끝내야 되지 않겠냐고. 그래서 이번 극장판이 우리에겐 더욱 뜻깊다.

-<만담강호> 이후의 계획은.

정지혁_ 현재 좀바라TV에서 나는 <오락왕 김봉구>, 장석조 감독은 <명화마을>을 연재 중이다. 당분간은 거기에 충실할 생각이다.

장석조_ 오인용의 팬이 한때는 다음 카페 회원 수로 68만명이었다. 1~2년 꾸준히 연재하면 그 당시 팬의 1/10은 돌아와주지 않을까. <만담강호>가 잘돼서 웹애니메이션의 판이 커지는 데도 일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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