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 라르손, 헤닝 만켈, 요 네스뵈 이전에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있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1962년 여름 회사 식당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눈다. 둘은 서로가 스웨덴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함께 소설 작업을 시작한다. 1965년 <로재나>를 시작으로 1975년 마지막 작품 <테러리스트>까지 총 10권이 완성된다. 북유럽 경찰소설의 시초로 여겨지는 이들의 소설은 주인공 경찰의 이름을 따 ‘마르틴 베크’ 시리즈로 통한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세계에서 1천만부가 넘게 팔리며 북유럽 범죄소설 고전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국내에선 처음 정식으로 출간됐다.
<로재나>는 스웨덴의 관광명소 예타운하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체엔 성폭행과 교살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단서는 전무하다. 스웨덴 최고의 수사관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들이 수사에 합류하지만 진전은 없다.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리던 지역 수사관 알베리와 미국의 수사관 카프카가 건넨 전보들이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죽은 여자는 20대 미국인 여성 로재나로 그는 홀로 스웨덴을 여행하던 중이다.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에선 냉전 시대의 헝가리로 무대를 옮겨온다. 동유럽 문제를 주로 다루던 기자 알프 맛손이 어느 날 갑자기 행적을 감춘다. 마르틴 베크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여권에 찍힌 도장을 기준으로 기자의 자취를 밟아나가지만 사건은 실종인지 잠적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는다.
마르틴 베크는 영웅이라기보단 평범한 생활인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택시비가 신경 쓰여 지하철을 갈아타고, 늘 소화불량으로 고생한다. 일에만 빠져 사는 탓에 가족과 관계가 좋지도 못하며 그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항상 현실의 고단함이 잔뜩 묻어난다. 남다른 통찰력이나 지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수사에 대한 끈질긴 의지, 동료들과의 협조를 통해 마르틴 베크는 차근차근 사건의 중심에 다가선다. 그와 함께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밝아져오는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실체를 목격하는 재미가 크다. 출판사 엘릭시르는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할 계획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원조
마르틴 베크는 몸을 곧추세웠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로재나>, 88쪽)
그는 머릿속으로 알프 맛손에 대해 아는 내용을 점검해보았다. 아는 게 많진 않았지만 그외에 더 알아야 할 내용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대단히 지루한 인간’이라고 했던 콜베리의 평가가 떠올랐다. 알프맛손 같은 사람이 왜 사라지려고 할까? 물론 그것은 그가 자의로 자취를 감췄다는 전제에서 하는 이야기다. 여자 때문일까? 그런 이유 때문에 보수가 넉넉한 직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기 일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중략) 그에게는 집도, 일도, 돈도, 친구도 있었다. 그 모두를 자발적으로 버리고 떠나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