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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건너간다>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7-03-21

<건너간다> 이인휘 지음 / 창비 펴냄

전국 공사판을 떠돌던 아버지와 무당 어머니.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형제 중 막내 박해운의 이야기다. 때는 1950년대 말, 초등학생 해운은 연극으로 춤으로 노래로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넉살 좋은 아이다.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큰형의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해운은 중학교 입학할 나이에 공장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열악한 노동환경, 동료의 구타를 겪어내며 비로소 비정한 사회의 현실을 마주한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셋째형 덕에 학업을 다시 시작한 해운은 야학,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된다. 대학에서 해운은 군사정권의 폭압을 마주하고 삶의 방향을 재정비한다. 졸업 후, 해운은 작은 공장에 입사해 노동운동가의 삶을 시작한다. 구타, 물고문, 테러에도 꿋꿋이 버텨냈고 변화는 아주 느리고 꾸준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1980년대 말, 해운은 글로 노동운동에 기여하겠다고 마음먹는다. 30여년이 흐르고, 작은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해운은 여전히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있다.

박해운의 인생은 곧 작가 이인휘의 삶과 겹친다. 가명이 나오긴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책, 음악, 인물들은 대부분 실존하며 당대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상징과도 같다. 광주민주화운동, 구로동맹파업부터 최근의 민중총궐기와 촛불집회까지, 박해운의 삶과 함께 폭력과 저항의 현대사가 물결치듯 이어진다. 박해운의 삶뿐만 아니라 그의 사람들의 얘기까지 비교적 소상히 담긴다. 시대적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마음 한곳엔 여전히 히피적 삶을 추구하는 중소기업 사장 재범, 노동자 출신 운동가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와야 한다. 끝까지 투쟁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한 운동가 박영진 등등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많은 현대사의 얼굴들이 그려진다. 박해운은 삶의 고비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민중가수 하태산의 노래를 떠올린다. 하태산은 민중가수 정태춘의 분신이다. <우리는> <아, 대한민국> 등 정태춘의 10여곡이 인용되는데 그중 소설을 여닫는 노래는 <92년 장마, 종로에서>다. 소설의 도입부는 가사 속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중략)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 종로의 풍경을 그리며 시작한다. 하지만 소설의 끝에서 다가오는 대목은 조금 다르다.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현대사의 얼굴들

내가 다시 쓰기 시작한 최근 소설의 화두는 ‘폐허’였다. 그건 단순히 폐허라는 절망의 상태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폐허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뼈아픈 각성을 해야만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절박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이 세계의 희망이라는 거대 담론은 제쳐두더라도 내가 품고 살 수 있는 작은 희망을 찾고 싶었다. 폐허를 넘어서 희망을 건져올리듯 소설을 쓰면서 내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다.(78쪽)

사람이 사는 세상은 사람이 만들어간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새로워지지 않는다. 사회 역시 변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새로워지지 않는다. 사회 역시 변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갈 사람들을 만들어낼 수 없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회, 그 모습은 인간에게 달려 있지 않겠는가. 하태산의 노래가 강으로, 장엄한 촛불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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