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무서움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귀신은 나를 보는데, 나는 귀신을 보지 못한다. 거기서 소름이 돋는다.
귀신의 ‘보이지 않는 이미지’는 힘센 자들에겐 군침 도는 매력이기도 했다. 추한 권력일수록 자신을 신비로운 공포로 감싸고 싶어 했다. 물론, 제아무리 귀신일지라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귀신은 ‘귀신도 곡할 노릇’을 사람에게 던진다. 흉내내는 자들은 애당초 ‘보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 게 아니었고, 귀신을 따라할 재간도 없기에 피치 못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 틈으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자들의 그림자를 보아왔다. 뿌리를 찾자면 일제강점기 비밀경찰을 들 수 있다. 줄기를 찾자면 박정희 공포정치의 기둥 중앙정보부를 말할 수 있다. 꽃은 살인마 전두환 시절에 만개했던 국가안전기획부였다. 숱한 독립투사들이 비밀경찰에, 반독재운동가 장준하들이 중정에, 노동운동가 박창수들이 안기부에 의해 살해됐다. 그들은 귀신처럼 들러붙어 사람을 죽이고 노골적인 그림자를 남겼다. 경고였다. ‘우리는 네 곁에 있다. 너를 본다.’
정권이 교체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그들도 탈의실에 들어가 국가정보원이라는 얌전한 옷을 갈아입었다. 허나 육체와 무엇보다 ‘혼’은 비정상 그대로였다. 잠시 움츠렸던 그들에게 이명박근혜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천안함이 동강나고 연평도가 화염에 싸였을 때, 국가전산망이 해킹되고 뜬금없이 북한 미사일이 발사될 때 그들이 행한 본연의 임무는 ‘그저 북한 탓’이었다. 댓글공작단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보수시위대를 지휘해 갈등을 조장하거나, 간첩을 조작하는 데는 빼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세월호에서 발견된 국정원 노트북과 400t의 철근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대통령 박근혜와 전 비서실장 김기춘과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선이 주도했다는 ‘블랙리스트’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K의 리스트’가 따로 있다는 흉흉한 증언도 확인되었다. 급기야 대법원장에 이어 헌법재판관 사찰이라니, 이게 정녕 나라인가.
목요일에 나는 쓴다. 금요일엔 탄핵 여부가 결정돼 있을 것이다. 박근혜로 끝인가.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 국정원을 도려내지 않으면 이명박근혜들은 다시 온다. 우리는 더 많이 죽으며 후회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