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명필름영화학교에서 제작된 <눈발>은 타인의 고통을 방관했었다는 조재민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영화다. 만들어지기까지, 연출자의 고민을 통해 영화가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지해준 이면엔 서정일 명필름영화학교 전임교수가 있었다. “영화를 세상에 보이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학생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는 그는, <눈발>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않아 좋더라. 감독에게 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계속해서 질문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직시하게 했고, 성장통을 구체화하며 시나리오를 10고까지 냈다.” 결과적으로, 감독이 말하고 싶은 바를 오롯이 전달하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서정일 전임교수는 명필름영화학교에서 일종의 학과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학생을 선발하고 커리큘럼을 만들어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학생들이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각 영화들의 기획 및 제작을 명필름과 함께 진행한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동시에 그들이 세상에 내보일 첫 영화들을 이끌어주고 돌보는 역할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가르친다기보다는 안내하며, 한번 더 고민하게 해주는 역할”이라면서, “명필름영화학교는 날 준비가 된 학생들에게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주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파리 3대학에서 영화평론가 자크 오몽에게 영화를 배우며 석사과정을 밟은 서정일 전임교수는 “매일같이 시네마테크를 드나들며 영화를 보곤 했다”는 시네필이다. 중앙대학교 영화과에서 겸임교수를 하다 명필름영화학교 전임교수를 맡은 그는 영화를 꿈꾸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길 고대한다. “영화학교에선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1998) 같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과 목소리를 지닌 작품들 말이다.” 현재 명필름영화학교는 1기 작품 <환절기>를 9월에 개봉할 예정이고, 2기 작품인 <박화영>을 촬영 중이며 <OB들> 프리 프로덕션을 준비하고 있다. 퀴어영화부터 개성 강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진학 비리를 다룬 작품까지 폭넓고 다양한 작품들이 대기 중이다. “기성 영화와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영화, 상업성에 얽매이기보다는 ‘이런 영화는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포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영화엔 보이지 않는 25번째 프레임이 되고 싶다.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자극을 주는 촉매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영화 비디오테이프
“프랑스 유학 시절 열심히 모았던 비디오테이프들이다. 불어로 ‘내 인생의 영화들’이라는 제작사에서 출시된 누벨바그와 필름누아르 영화들로, 창고에 600개가 쌓여 있다. (웃음) 이 비디오테이프들은 시작하기 전, 트뤼포의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공부할 당시 비디오테이프는 멈춰볼 수도 돌려볼 수도 있는, 자기식 영화 보기가 가능한 첫 수단이었다. 학생들에게도 영화를 만들기 전엔 남의 걸 뜯어보는 게 가장 큰 공부가 된다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