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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할 수 있을까, 서울
한유주(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2017-03-09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밀라노… 와 같은 유명한 도시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나 가방 따위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울이나 유년기를 보냈던 대전이라는 지명을 넣어보고는 했다. 그러면서 궁금해했다. 뉴욕이나 파리 시민들은 자기가 살아가는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내게 대전은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다. 일단은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 힘든 곳이었다. 지난주에는 집주인이 연락을 해왔다. 계약이 만기될 예정이니 보증금과 월세를 올리자는 얘기였다. 짧고도 긴 대화 끝에 집주인은 월세만 올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젊었을 때 고생해봐서 알아. 그런데 내가 보증금을 계속 올리는 게 그쪽도 좋을 거야. 나중에 이사할 때 어떡하려고 그래.”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했다. 서울을 사랑하기란 왜 이렇게 힘든가. 살아가기도 힘든 곳이니 사랑하기란 어불성설인 것일까. 그러면서 나는 집주인의 계산을 헤아렸다. 복비와 기타 수고비용을 생각할 때 새로운 세입자를 받는 것보다는 나를 내보내지 않는 편이 그로서도 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가늠이 완료되었는데도 나는 그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대전에서 자랐던 나는 대학 입학식이 있기 며칠 전 서울로 올라왔다. 그로부터 꼬박 1년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침에 시달려야 했다. 폐결핵을 앓았던 전력도 있고 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폐는 그런대로 깨끗한 편이라며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안다. 공기가 더럽기 때문이다. 대전이라고 해서 딱히 청정한 공기를 자랑하는 건 아니겠으나 서울의 공기는 유독 유해했다. 그리고 해마다 더욱 유해해지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쓴 액체까지 토해내던 날들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기침이 멎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느덧 폐도 적응하기를 선택한 것 같았다. 당시에는 라면만 먹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조미료 때문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라면만 먹기를 선택하자 갑자기 두드러기도 멎었다. 몸은 망가지면서 적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서울이 지긋지긋하다고,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도.

요새는 날마다 의외의 장소에 가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포켓몬 고>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길을 헤매다 남부수도사업소라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이렇게 <포켓몬 고> 지도를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하면서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서울을 보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딱히 서울을 사랑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줄 장소에 간 적은 없다(이태원 인근의 헌책방에 갔다가 ‘한남사랑 부동산’이라는 간판을 보고 실소가 터져나온 적이 있다). 나는 언제쯤 서울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