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습성이다.” 이 명제에 동의한다면 다음 문장 역시 당신의 마음을 끌 것이다. “진정한 혁명적 순간은 사랑과도 같다.” 공기는 답답하지만 어느 때보다 더 숨을 잘 쉴 수 있게 되는 순간,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는 순간에 생겨나는 균열. <사랑의 급진성>은 사랑, 연대, 혁명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그것들이 어떻게 닮았는지, 사랑과 비슷해 보이는 사회적 형태의 감정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저자 스레츠코 호르바트는 크로아티아의 철학자이자 활동가다. 책 속에는 글짓기에 대한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마오쩌둥은, 혁명은 만찬도 글짓기도 그림 그리기도 아니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뒤엎어버리는 반란과 폭력이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의 말을, 호르바트는 바꿔쓰자고 권유한다. “혁명은 하룻밤의 정사도, 가벼운 연애도 아니다. 그런 일들보다 쉬운 건 없다. 만일 당신이 혁명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당신은 격정적인 정사를 치르고 난 다음날 아침 당신 곁에 누워 있는 낯선 육체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연대 행위는 사랑을 내포하지만, 사랑이 곧 연대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연대와 자선을 먼저 비교해보자. 자선은 일정한 거리감을 포함한다. 연대는 자비로운 행위를 한참 넘어서는 무엇이며, 연대를 실천하기 시작하면 자선 활동이나 자비를 베푸는 일을 자제할지도 모른다. 연대란, 대상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여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이어서다. 사랑의 행위는 그가 처한 불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소수자와의 연대를 통한 사회운동부터,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2011년 세계 곳곳의 대중 시위 등에도 폭넓게 인용되어야 할 말이지만, 어쨌거나 봄은 가을을 향해 가고 있으며 역사적 교착 상태는 어느 때보다도 암울하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을 견디기를 수행 중이다.
<사랑의 급진성>은 이란혁명이 거세한 것을 살피고(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음악에서 사랑까지 모든 것을 억제해야 하며, 베토벤 음반도 암시장에서나 거래된다), 10월 혁명의 순수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금욕주의를 말하고(여성의 나신에도 꿈쩍하지 않는 자신의 순수성을 기꺼이 증명하던 시대에 레닌은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뒤를 따랐다), 혁명이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체 게바라가 어떻게 사랑하듯 혁명했는지를 들려준다(사랑에의 헌신과 혁명- 살인을 포함한- 에의 헌신이 일치했던 그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내내 박탈당해야 했다)는 면에서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주어를 ‘혁명’으로 바꿔 묻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질문은 사랑에 대한 것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