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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헵타포드의 일괴암적 인식
이종필(물리학자) 2017-02-22

대학생 시절 물리학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들에게 간혹 이런 얘기를 듣곤 했다. “문제를 쉽게 풀려면, 답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답을 먼저 알아야 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문제를 푼다는 것은 답을 알기 위함이다. 답을 모르니까 문제를 푸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를 쉽게 풀려면 답을 먼저 알아야 한다면 이건 주객이 한참 전도된 이야기다.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계속 연구하면서 나는 학부 시절 교수님의 그 이상한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세세하게 계산을 해서 문제를 풀어 답을 얻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물리학자에게 정말로 중요한 능력은 물리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다. 통찰력이 있으면 정답은 아니더라도 정답에 가까운 답을 미리 알 수 있다. 대략적인 답을 알게 되면 그 물리적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물리적 통찰력이 없더라도 답을 아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나중에 교수님이 발표하는 모범답안을 “미리” 보면 된다. 그냥 미래를 볼 수 있으면 된다. 먼 미래에나 풀릴 문제의 해답도 미리 알아낼 수 있다. 노벨상은 따논 당상이다. 로또번호도 미리 알 수 있다. 영화 <컨택트>는 이처럼 답을 알고 문제를 푸는 놀라운 현상에 관한 이야기다. 평범한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 갑자기 지구를 방문한 7개 다리의 외계인 ‘헵타포드’에겐 일상적인 일이다. 3천년이 지난 뒤에 자신들이 지구인의 도움을 받을 것을 ‘미리’ 알고 지구인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지구를 방문한다.

헵타포드의 놀라운 능력은 우리와 다른 시간개념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 시간은 일방적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이해하기로는 시간의 일방성은 우리 우주의 중요하고도 특징적인 성질 중 하나이다. 시간이 한쪽으로만 흐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나열할 수 있고, 그렇게 나열된 사건의 순서가 중요해진다. A라는 사건이 B라는 사건의 앞에 일어났는가 뒤에 일어났는가 하는 선후관계에 따라 A가 B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확실한 선후관계, 이를 우리는 인과율이라고 한다. 적어도 우리 우주에서는 인과율이 잘 지켜지는 것 같다. 현대과학을 떠받치는 저 밑바닥에도 인과율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환원주의 대 일괴암적 인식

헵타포드에게는 시간이 일방적이지 않다. 시작과 끝이 없다.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은 다시 시작이다. 시간에 관한 헵타포드의 이런 초자연적인 인식은 그들의 문자에 극명하게 투영돼 있다. 영어 알파벳은 문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차원적으로 죽 풀어쓴다. 문장에는 명사, 동사 따위의 품사가 있고 위치에 따라 주어가 되기도 하고 목적어가 되기도 한다. 헵타포드의 문자는 전혀 다르다. 기본 구조가 2차원적인 원이다. 원은 시작과 끝이 없다. 사건의 전후관계가 사라진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과율도 필시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면 물리학자들에게 아주 익숙한 현상이 하나 등장한다. 빛이 공기에서 물속으로 들어가면 꺾인다. 공기와 물의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굴절률은 진공에 비해 광속이 줄어드는 정도로 정의된다. 그러니까 공기 속에서의 광속과 물속에서의 광속이 다르기 때문에 빛이 수면에서 꺾인다. 이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에 페르마의 원리가 있다. 페르마의 원리란, 빛의 이동 경로가 최소의 시간이 걸리는 경로라는 원리이다. 어느 경로가 최소의 시간이 걸릴 것인지는 변분법이라는 방법을 쓰면 된다. 빛의 입장에서 보자면, 빛의 알갱이인 광자(光子, photon)가 미리 모든 경로를 탐색하고 경로별 소요시간을 계산한 뒤에 최소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광자는 자신이 출발하기도 전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현대적인 양자역학에서는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광자는 가능한 한 모든 경로를 지나간다. 그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경로가 뉴턴역학적으로 허용되는 경로이다.

헵타포드의 문자도 페르마의 원리와 비슷한 원리로 쓰인다. “최초의 획을 긋기도 전에 문장 전체가 어떤 식으로 구성될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을 소설이나 영화에서 동시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동시성이라는 말도 어쩌면 인간의 시간개념에 기댄 표현인 것 같다. 나는 일괴암성(一塊巖性)이라는 말이 더 적확하지 않을까 싶다. 부분으로 더이상 나눌 수 없는, 그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로서 완전한 실체 말이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을 하나하나 뜯어서 순차적으로 이해한다. 인간이 쓰는 문장을 주어, 서술어, 목적어로 나누어 이해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부분적인 요소로 나누어 전체를 이해하는 방식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환원주의는 특히 세상의 궁극적인 구성요소를 탐구하는 입자물리학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고 또 큰 성과도 거두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원자이고, 원자는 다시 전자와 원자핵으로 나뉘며, 원자핵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고, 이들은 다시 쿼크와 접착자로 구성된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일괴암적인 실체에서는 이런 분석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생물체를 갈가리 찢어 원자 단위까지 쪼개버리면 생명현상은 사라진다. 구성요소가 굉장히 많아지면 각 구성요소의 수준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이를 창발(emergence)이라고 한다.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이 만드는 응원의 파도는 개개의 관중 수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헵타포드의 문자가 이런 식이다. 헵타포드에게는 시간개념도 일괴암적이다. 답을 알고 문제를 푼다는 것은 그 문제를 일괴암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수학도구를 적용해서 차근차근 순서에 따라 해답을 찾아나가는 게 아니다. 답은 문제 속에 있다. 문제의 시작과 함께 답도 거기 존재한다. 실제 많은 입자로 구성된 물리 시스템에 관한 문제를 풀 때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으로 정확하게 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헵타포드식 일괴암적 접근법을 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카이스트 총장까지 지냈던 로버트 로플린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가 구한 “로플린 파동함수”는 방정식을 풀어서 구한 솔루션이 아니라 직관과 통찰을 발휘해 얻은 결과이다. 로플린은 199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문제는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

시간개념이 일괴암적이면 훨씬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구분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루이스(에이미 애덤스)가 결정적인 장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에 대한 일괴암적 파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답을 알고서 문제를 풀었다. 헵타포드의 문자를 연구하면서 시간에 대한 인식이 헵타포드식으로 바뀐 덕분이다. 만약 헵타포드처럼 시간에 대한 일괴암적 인식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이번주 로또번호를 미리 알았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가 바뀌는 것일까? 3천년 뒤 지구인의 도움이 필요했던 헵타포드는 결국 지구인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을까? 루이스가 중국의 섕 장군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루이스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을 ‘자유의지’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만약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에 따라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미래는 바뀔 것이고, 그렇다면 시간에 대한 일괴암적 인식은 무너진다. 반면 시간에 대한 일괴암적 인식이 확고하다면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미래를 바꿀 자유의지도 있을 수 없다. 어느 쪽이 더 좋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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