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고향집의 화두는 단연‘책가방’이었다. 조카 두명이 올해 나란히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여동생들 미간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형편에 맞게 사주자니 따돌림당할 것 같고, 유행하는 명품 가방을 사주자니 적잖이 부담이 되고. 듣자하니 10만원짜리는 가난뱅이 취급이고, 70만원 이상의 명품 브랜드는 재고가 없을 지경이고, 30만, 40만원짜리는 돼야 간신히 중산층 흉내를 낼 수 있단다. 책가방에, 아이들 옷 브랜드까지 벌써부터 등골 부서지겠다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이른바 신(新)등골 브레이커. 노스페이스, 자전거, 화장품 등 중·고등학교를 휩쓸었던 고가품 유행이 이제는 초등학교에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입학 학용품의 평균 지출 비용이 63만8천원이란다. 14만원짜리 이탈리아제 지우개, 33만원짜리 프랑스제 필통, 28만원짜리 이탈리아제 공책이 70만원짜리 일제 책가방에 담겨 있어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입학식 풍경. 인정욕망 자체가 창백하게 물신화돼버린 어떤 즉물의 세계.
하기야 이미 이 세계는 요람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유모차 브랜드에 따라 계급이 꼼꼼히 눈대중되고, 영어어린이집인지 아파트어린이집인지 또는 국가운영어린이집인지에 따라 존재의 서열이 나뉘는 나라이지 않은가. 최근 유치원생,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휴거’라는 단어는 이 끔찍한 계급사회의 빗장과도 같다. 임대아파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는 뜻이다. 그 아이들과 놀지 말아라, 울타리를 설치하라, 학급을 별도로 편성하라는 부모들의 노골적인 계급의식에 공명된 아이들의 유행어 ‘휴거’. 상류층으로 가는 계단에서 저소득층을 야멸차게 밀쳐버리는 계급사회의 한없이 투명한 속내일 것이다. 어쩌면 노스페이스와 란도셀 책가방은 여기가 황량한 계급사회임을 선언하는 적나라한 슬로건일지도 모른다. 부자들의 과시이자 가난한 이들이 하층계급으로 분리수거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자식이 따돌림당하는 걸 원치 않는 가난한 부모들의 매달림이자 평등에 대한 욕구를 고가의 유행 품목으로 대체하는 허위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계급사회의 규칙은 정해졌고, 이 고가품들은 그저 가상의 게임 아이템에 불과하다. 아이템을 습득한들 현실이 바뀔 리 없다.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의 14.2%를 독점하고, 10%가 무려 48.5%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 계급사회에서 가난의 표식을 지우기 위해 노스페이스와 고가의 책가방에 집착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부자들의 ‘구별짓기’를 맹목적으로 따라한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인간의 인정욕구를 그저 물질로 계량해버리는 물신 세계의 가상 게임에 중독된다는 것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아장아장 학교로 걸어가는 그 뒷등에 끝내 계급사회의 낙인을 벌겋게 찍어놓는 이 축산공장 같은 사회. 설날, 입학 축하한다며 조카들 바라보던 내 얼굴엔 도무지 미소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