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너무 짧았다. 가야 할 현장도, 만날 영화인도, 배워야 할 것들도 너무 많은 시간이었다. 지난해 11월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5인의 중국 감독들이 한국의 영화산업을 직접 배워볼 수 있는 일주일간의 뜻깊은 기회가 마련됐다. 중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감독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았다.
(왼쪽부터) 칸뤄한, 왕이위, 리지, 네이구 후이메이, 완리양 감독
칸뤄한 감독
칸뤄한 감독은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접한 역사서의 영향으로 시대극에 관심이 많다. 최우수상 수상작인 <만풍>(2015)은 1940년 초 상하이, 작가 바오가 폭발사건에 대한 취조를 받는 도중 일어나는 반전 드라마다. 간결한 형식과 잘 짜인 스토리텔링으로 완성한 시대극.
왕이위 감독
왕이위 감독은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우수상 수상작인 <집으로 헤엄쳐 가기>(2016)는 평범한 10살 소년이 겪는 마음의 동요를 포착한다. 우연히 자신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심리를 소년의 시선으로 정교하게 따라감으로써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리지 감독
리지 감독은 상하이 연극대학 성인교육학원 방송프로듀서 과정을 이수했다. 승무원으로 일하다 연출가로 전향했다.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재로 삼고자 한다. 대외우호협회 특별상을 수상한 <홍잉>(2015)은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장애인 여성 홍잉의 고독을 그린다. 비상업용 전기 삼륜차로 생계를 이어가는 홍잉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질감으로 그려낸다.
네이구 후이메이 감독
네이구 후이메이 감독은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연출을 전공했으며, <대광명>은 탕옌페이 감독과 공동연출했다. 미디어창조 특별상을 수상한 <대광명>(2015)은 미국에서 아들이 오니 당장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 양 선생과 버티는 샤오천의 갈등을 그린 드라마다. 늙은 여인 양 선생의 외로움을, 그녀가 퇴직한 음악 선생이라는 점과 결부해 흥미롭게 전개해나간다.
완리양 감독
완리양 감독은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우수상 수상작인 <악의>(2016)는 어린이 연쇄살인사건의 표적이 된 양녀를 둔 한 경찰의 수사과정을 따라가는 범죄 스릴러다. 시나리오 완성에 1년이 걸렸으며 장르가 가진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수작이다.
-여러분 모두 지난해 11월24일 중국에서 열린 제3회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선했는데, 이번 수상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상금은 어디에 썼나.
=왕이위_ 나는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니 이제 저축을 해야 한다. 받은 상금도 받자마자 저축했다. (웃음)
=칸뤄한_ 영화 만드느라 아버지께 빚을 많이 졌다. 그래서 수상 소감으로 상금을 모두 아버지께 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 약속을 지켰다.
=네이구 후이메이_ 한국과 함께한 영화제인데, 결국 한국에 와서 다 썼다. 쇼핑으로. (웃음)
왕이위_ 단편영화를 만들면 다양한 영화제에 출품한다. 수상해서 상금을 받게 되면 그래도 한 1~2년 동안 생활비가 된다. 지금 내가 임신한 상황이라 달리 돈을 벌기도 힘들다. 상금이 급하게 돈을 버는 부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그게 더 편하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지금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데 곧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번 수상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완리양_ 나 역시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수상 후 아이디어를 선정해서 작품 활동을 지원해주는 단체에 들어갔다. 지금은 시놉시스를 시나리오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다. 알다시피 장편영화를 준비하다보면 시나리오도 써야 하고 사전 준비도 해야 돼 따로 돈을 벌 시간이 없다. 영화제에서 받은 상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일단 마음이 좀 안정되고 덕분에 시나리오 창작에 더 신경을 쓰게 되니 도움이 정말 많이 된다. 청년감독들은 생계를 어떻게 유지할지가 공통의 관심사이고, 그런 걱정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그래서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는 우리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된 행사다.
-한·중 연계 초청프로그램으로 한국 영화산업 현장을 참관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영화인들을 만나 그들의 노하우를 교육받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액션 연기 전문기관인 서울액션스쿨, 특수효과 전문업체 데몰리션 등을 방문했다.
=리지_ 정두홍 무술감독님 같은 세계적인 대스타감독을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촬영 전에 리허설하고 합을 맞추고 그걸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는 걸 직접 보니 너무 놀랍더라. 액션 연기자들이 정말 리얼하게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서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두홍 감독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하게 되면 현장에서 시간과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 나 역시 액션영화를 찍으면 꼭 이런 방식을 고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좋은 시간이었다.
완리양_ 진짜다. 액션스쿨에서 정두홍 무술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피가 되더라. 과학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고, 액션 장면을 디자인하고 리허설을 거쳐 만들어내고 편집까지 하는 과정을 그 자리에서 지켜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구 후이메이_ 나는 특수효과 업체 데몰리션 방문이 인상적이었다. CG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짜들이 특수효과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 물론 지금은 점점 허구, 가상의 것들이 더 각광받고 개발되고 있지만 극장 관객의 몰입도를 생각한다면 특수효과가 하는 역할은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정도안 대표가 이 분야에서만 40년 동안 일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진짜 프로구나 싶더라. 그 기술을 할리우드로부터 배운 게 아니고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창작했다는 걸 알았을 때 그의 프로의식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도 모든 걸 잘하려고 하기보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완리양_ 일단 나는 삼계탕 먹은 게 인상적이었다. (웃음) 완전 ‘짱’이었다. 처음 한국에 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 정말 잘 왔구나 싶더라. 한국 영화인들과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건 역시 일하는 방식이었다. 난 베이징전영학원에서 4년간 영화 공부를 했는데, 학원 교육이 영화산업 현장과 밀접하게 닿지 못해서 그 부분에 아쉬움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 기술적인 과정들을 많이 알게 됐고, 그걸 보면서 한편의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매력을 더 크게 느꼈다.
왕이위_ 현장에 와보니 한국의 영화 선배님들이 가진 장인정신이 대단하다 싶었다. 학생영화 찍고 단편을 준비하면서 나도 이 정도면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 이들을 만나고 보니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영화에 매진하시더라. 시작할 때는 좋아하는 일이니 몰두할 수 있지만 같은 일을 몇 십년 동안 쭉 해오면 그만큼 지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데몰리션을 방문한 날도 주말이었는데 대표님께서 출근해서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늘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그걸 실행하는 모습이 내가 앞으로 현장에서 일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더라.
완리양_ 감독은 현장에서 제일 위에 있는 톱, 대통령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임무를 완성하는 행동파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액션이라든지 특수효과라든지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같이 합을 맞추면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어떤 한 분야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아니라 영화작업은 공평하게 같이 만들어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더 절실하게 들더라.
칸뤄한_ 한국 영화인들을 지켜보다보니 모두들 방향감이 강한 것 같았다. 뭐랄까, 단체 느낌이 강해 보였다. 액션스쿨의 경우,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6개월간 무료로 이곳에 와서 개인 훈련을 할 수 있게 허용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을 넘어서 진짜 액션 연기자, 무술감독이 되는 과정은 상상 외로 어렵다고 들었다. 직접 컴퓨터로 영상 편집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있어야 하는 일이다. 단순히 취미가 아니라 이걸 업으로 삼고 꾸준히 지속해 나가려고 한다면 그 기준은 상당이 높아지게 된다. 각자 프로로서의 의무감을 갖고 전체 한국영화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중국 배우들은 학생영화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아
-수상 작품들의 소재나 장르가 다양했지만 한결같이 프로덕션 퀄리티가 보장된 데다 경험이 많은 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만풍> <악의> <집으로 헤엄쳐 가기>는 베이징전영학원 졸업작품이기도 한데, 학원의 지원이 잘 이루어지는 편인가.
왕이위_ 나는 완리양 감독과 같은 학번이고, 칸뤄한 감독과 네이구 후이메이 감독이 같은 학번이다. 베이징전영학원의 경우 졸업작품을 제작할 때 베이징교육국에서 제작비를 조달해준다. 작품당 2500만원 정도가 지원된다. 만약 단편영화가 영화제에 나가 연출상을 받으면 학교에서도 상금으로 몇 백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네이구 후이메이_ <대광명>에서 주연을 맡은 탕췬은 대만 금마장상에서 조연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배우다. 중국은 경력이 많은 배우들이 학생영화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는 분위기다. 베이징전영학원 출신이 각 분야에 많아서 졸업작품을 찍을 때는 모두 도움을 준다. 나 역시 이 작품을 찍으면서 소정의 개런티를 주긴 했지만 그가 다른 작품을 하면서 받는 일반적인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기자재는 학교에서 다 대여가 되고, 스탭들은 학교 인원으로 꾸리기 때문에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촬영감독의 경우는 베이징전영학원 출신의 대선배님으로, 상업영화에서 이미 활동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전문 영화 인력들이 함께 참여하다보니 작품 프로덕션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리지_ 나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상하이 연극대학 성인교육학원에서 방송프로듀서과를 나왔다. 베이징전영학원의 지원제도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거긴 국가 지원으로 창작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반면 내 경우는 학교의 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고, 졸업작품을 만들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품을 만들려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알음알음 모아서 스탭을 꾸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으니 소프트웨어에 더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나리오를 잘 쓰는 방법밖에 없다 싶어 절박해지게 된다(이번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시아강 감독은 베이징전영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한데, 베이징전영학원의 학생들이 풍족한 지원으로 찍은 영화와 달리 지원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완성한 리지 감독의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줌과 동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편집자)
완리양_ 학교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건 지원을 받아서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졸업하고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 영화를 만들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중국은 인터넷영화가 워낙 발달되어 있어서 웹영화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다. 영화 보는 데 한명당 500원을 내는데, 클릭 수가 많으면 감독의 수익도 높아진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장편을 찍을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아이디어를 선발하는 단체들에 지원하는 거다. 출신 학교나 배경에 상관없이 영화, 광고 등 영상물을 촬영한 경력이 있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유일한 조건은 직접 쓴 장편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또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노미네이트되면 투자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아시아 청년감독들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지원하고 싶다.
리지_ 지금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단계인데,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과연 내가 감독으로서 이 장면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지다. 예를 들어 추격 신을 찍을 때 배경이 중국 동북쪽, 겨울이면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그러면 이 신 자체의 설정을 바꾼다. 또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이 10신이나 있는데, 안전 문제에 확신이 들지 않아 그 장면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시나리오를 창작할 때 이렇게 경제적인 부분이나 안전상의 문제나, 현실적인 것에 비추어 타협해서 신을 재구성한다.
칸뤄한_ <만풍>을 연출한 후 친구들과 회사를 만들어서 인터넷용 웹영화를 이미 한편 찍었다. 원래 60분 중편을 생각하고 찍었는데 편집하다보니 90분가량의 장편이 돼버렸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아이디어를 내고 발전시켰고, 제작비는 모두 각출하는 방식이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후 작업들도 돈을 모아서 찍고 싶다. 시장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이 자리에 여성감독이 두분 계시는데 중국영화 교육기관의 경우 남녀 성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칸뤄한_ 학교를 보자면 연출 분야는 남자가 3, 여자가 1. 3:1 정도다.
네이구 후이메이_ 학교에서는 사실 남녀 비율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운드 전공이라든지, 영화관리(프로듀싱) 전공이면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편이다.
완리양_ 여성이라는 이유로 크게 힘들거나 장벽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자감독이 찍겠다고 하면 다들 나서서 더 많이 도와주는 편이다.
왕이위_ 체력적으로는 아무래도 힘든 점이 있다. 장편 작업 때도 체력적인 면에서 힘든 걸 많이 느낀다. 촬영하다보면 하루 12시간을 정확히 지켜서 촬영이 진행되는 게 아니다. 촬영팀도 남자 비율이 높다. 여성감독으로서 자리를 잘 지키려면 수적으로 우세한 남자감독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현장을 지휘해야 한다.
네이구 후이메이_ 중요한 건 감독으로서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자기 팀을 만드는 것이다. 난 연출이 아니라 촬영을 전공했는데, 촬영 전공의 경우 연출이나 시나리오 전공에 비해 여성 수가 정말 적다. 교수님들 말씀으로는 나를 뽑았을 때, 나중에 졸업하고 상업영화 현장으로 가서 촬영감독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다 같이 하는 작업이니 여성 촬영감독으로 너만의 장점을 잘 살리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 중국 상업영화 시장은 관객의 선택이 중요하다. 이 시나리오가 남성감독에게 가면 더 좋을지, 여성감독에게 가면 더 좋을지 선택해서 감독을 기용한다. 그런 면에서 기회는 언제든 열려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국영화가 좋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영화사, 스탭들과도 교류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다고 들었는데, 영향을 받은 감독들이 있나.
완리양_ 한국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한국영화를 많이 찾아보면서, 한국영화에 대해 더 이해하고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창동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 봉준호 감독의 경우 할리우드 감독이나 다른 상업영화 감독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예술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충족시켜주면서도 관객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다 결합해서 영화를 만든다. 사회현상에 비추어 연출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파고들어갈수록 깊이가 더 생겨서 자꾸 보게 된다.
네이구 후이메이_ 나도 이창동,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런데 두 감독은 남편이 더 좋아한다. 남편도 영화 일을 하고 있다. 내 경우는 <도둑들>(2012)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이 취향에 맞다. 상업영화를 좋아하고 나 역시 그런 영화를 앞으로 만들고 싶다. <도둑들>을 보면, 좋은 시장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 버전으로 만들기에도 적합한 소재다. 최근 보면 tvN 드라마도 이런 영화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국 관객에게도 이들 작품이 가진 소재나 표현방식, 스토리텔링은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내 영화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 아이디어를 많이 얻게 된다.
왕이위_ 특별히 어느 감독이나 작품을 고르기가 힘들다. 한국영화 전체가 다 재밌고 좋은 것 같다. 어느 한 유형을 정해놓고 가지 않고 두루두루 섭렵할 생각이다.
칸뤄한_ 나는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2)를 정말 좋아한다. 그 영화를 보면 다른 많은 영화들이 보인다. <무간도>(2002)의 그림자도 보이는데, 서술하는 방식이 비슷해서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다. 한국영화는 자신 고유의 소재를 개발하는 능력도 크지만 특정한 나라의 영화들을 다시 리뉴얼해서 재촬영하는 방식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리지_ 한국은 시나리오 심사(검열)가 없어서 소재 선택이 자유롭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자유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나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2008) 같은 경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그걸 감추지 않고 영화로 만들지 않나. 영화를 통해서 관객이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으로 현실의 안 좋은 상황을 바꿀 수도 있다. 그게 정말 대단한 지점이라고 본다. 이렇게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점이야말로 한국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한국영화의 기술적인 발전 속도 뿐만 아니라 날 것 같은 생생함이 부럽다. 예를 들면 <추격자>에서 김윤석과 하정우가 좁은 골목에서 쫓고 쫓기며 싸울 때, 그 리얼한 촬영이 정말 깊은 인상을 주었다. 스턴트 연기자 없이 주연배우가 직접 올라가서 했다고 들었는데, 같은 영화인으로서 그런 도전도 존경스럽다.